追憶映像函 두고온 山河 / 大同江邊 平壤城 乙密臺 bsk5865 2014. 1. 7. 15:11 보낸사람 : 노을05 운영자 14.01.07 10:01 두고온 山河 / 大同江邊 平壤城 乙密臺 大同江邊 平壤城 乙密臺 등 送 人(송 인) --임을 보내며-- 鄭知常(정지상)( ? ~1135) 雨歇長堤草色多 送君南浦動悲歌 우헐장제초색다 송군남포동비가 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 대동강수하시진 별루년년첨록파 비 갠 긴 강뚝에 풀잎 짙어가는데 남포에서 임을 보내니 슬픈 노래가 나오네 대동강 물은 언제나 다 마르나 해마다 이별의 눈물이 푸른 물결에 보태질 텐데 漢詩도 鄭知常도 잘 모르는 사람도 대개 이 詩는 알 만큼 잘 알려저 있는 시다 눈물이 보태저 대동강이 마를 수 없다니 이렇게 가슴 아픈 이별을 노래하게 만든 사랑하는 그 님은 누구 였을가- 만 하 - 대동강변 평양성 내성 북문 칠성문 평양성 내성 동장대(연관정) 평양성 내성 북장대(을밀대) 최승대. 평양성은 고구려 때 지었으며, 내성. 중성. 외성. 북성으로 4개로 나누었으며 내성 - 궁성으로 을밀대에서 남산재까지 중성 - 중앙관청으로 안산에서 대동강까지 외성 - 주민이 거주 북성 - 내성의 보위성으로 사원등이 있으며 모란봉과 전금문 일대로써 산성과 평지성의 잇점을 종합하여 성을 쌓았다고 합니다. 100년전의 평양성 ▲ 평양 대동문(大同門) 조선 중기에 지어진 평양성의 동문. 전체 높이 19m, 석축 높이 6.5m인 2층 누각이다. 축대는 화강석으로 정교하게 쌓았고 복판에 무지개문을 내서 사람들이 출입하도록 했다. 대동강 건너 남쪽으로 이어졌다. ▲ 평양 칠성문(七星門) 평양 모란봉(牧丹峯)에 있는 성문. 전형적인 고구려성으로 현재의 문루는 조선 숙종대에 개수한 것이다. 을밀대(乙密臺) 쪽에서 등성이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오는 성벽과 만수대에서 북쪽으로 뻗은 성벽을 어긋나게쌓고, 그 두 성벽 사이에 가로 세워 성문을 세웠다. ▲ 평양 현무문(玄武門) 평양 금수산(錦繡山)의 성문. 모란봉과 을밀대 사이에 있다. 역시 고구려 때 축조되어 조선 숙종대에 중건됐다. 성문 축대는 다듬은 돌로 선과 면을 갖추어 정연하게 쌓았다. 칠성문과 함께 고구려 성곽건축의 특징을 보여준다.▲ 평양 부벽루(浮碧樓) 산 위의 사람들은 대성산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른쪽에 언뜻 모란대가 보이고 왼쪽 성벽을 따라가면 을밀대로 이어지는 위치다. 오른쪽 대동강가에 있는 누각이 부벽루다.▲ 평양 모란봉(牧丹峯) 대동강 주변의 절경을 담은 사진이다. 왼쪽 봉우리가 모란봉이고 부근은 금수산이다. 오른쪽 섬은 능라도(綾羅島) 이며 산 중턱에 부벽루가 보인다. 그 아래 문은 전금문(轉錦門), 누각은 득월루(得月樓)다. 머리에 짐을 인 아낙들이 지나는 곳은 청류벽 (淸流壁)이다. 사방이 틔어 있다 해서 사허정(四虛亭)이라고도 부른다. 고구려 때 세운 것을 조선 숙종대에 다시 세웠다. 고구려 축성술을 엿볼 수 있는 축대의 높이는 11m에 달한다. ▲ 평양 득월루 대동강변에 보이는 누각이 득월루, 아래의 문이 전금문이다. 오른쪽 길을 따라 가면 기린굴(麒麟窟)이 나오고 계속 올라가면 을밀대에 닿는다. ▲ 평양 을밀대(乙密臺) 모란봉 중턱에 노을05 http://cafe.daum.net/nowool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