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온 재종질녀(再從姪女)
찾아온 재종질녀(再從姪女)
지금은 없어진 종서집을 향해 왼쪽은 언덕이었고 그 언덕바지에 종서의
작은 할아버지 (승우 아버지)가 살고 계셨다. 지금은 깎아 밭이 됐지만......
우리는 서동아제라고 불렀는데 나에게는 재종숙(再從叔)이 되는 어른이다.
그 서동아제 딸중에 하나는 안정 고모댁에 가 있고, 하나는 서울 어느집에
가사를 도운다고 들어간 일이 있었다.
둘이 같이 고모댁에 있다가 헤어져 하나는 서울로 갔는지는 확실이 모르지만
......이것이 시골에서 와전(訛傳)됐는지 나쁜쪽으로 소문이 돌아서 어른들이
걱정하시는 것을 듣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가서 찾아 오도록 어른들이 의론해서
결정했었다.
그때 서동아제는 각기병으로 보행이 어려워 고생하고 있었다. 서울 가실 마땅한
어른이 없이 일이 풀릴 기미가 안 보였었다. 그렇게 되자 아버지가 가시겠다고
나선 것이다.
가실 여비를 비롯한 준비와 데리고 오기 까지의 지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으나
가셔서 찾아 데리고 돌아 오셨다.
아버지와 서동아제는 재종(再從)간이기에 재종질녀를 서울 가셔 찾아 온 것이다.
혼자 서울 가셨는지 소개한 사람 데리고 가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집안 일에도 내
일 처럼 늘 앞장 서시었던 어른이셨다.
지금 우리 들이 사는 모습과는 전연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 제종질녀를 알기 쉽게
말하면 7촌조카다. 박씨 집안 어른들은 모두 내 일 같이 생각하고 걱정도 기쁨도 같
이 나누며 큰 울타리 속에서 서로 의지하고 살아 오셨다.
영주서 이곳에 이주한지 8대(代)가 내려 왔지만 그 위로 5대(代)까지는 대(代)를
이었을 뿐이고, 아버지 고조부 대(代)의 3형제분 이후에 차츰 자손이 늘어나기
시작 집성촌(集成村)을 이룬 것이다.
까딝으로 자손이 귀한 집안의 아픔을 껶었기에 이렇게 남다른 사랑으로 뭉쳐
살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