過去資料函

無我亭....智異山

bsk5865 2010. 8. 22. 09:02

  2010년 8월 21일 토요일, 12시 06분 09초 +0900

 

無我亭(주인이 없는 집)

 

"무소유를 인식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베품을 실천한 삶"

이러한 삶이 있기에 오탁악세(五濁惡世)에도 세상이

제대로 굴러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끝까지 읽어 보세요..

심상진(스마일) 보냄




지리산에 가면 누구나 주인이 될 수 있는 집이 있다.

하룻밤은 물론 닷새까지는 침식이 무료로 제공된다.

더 묵고 싶다면 닷새가 지나 아랫마을에 내려가 하루를 보내고

다시 찾으면 그만이다. 그것도 진정 필요한 이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방편이다. 주인은 있으되 주인 행세를 하지 않는다.

밥해주고 이부자리 챙겨주고 술이나 차를 따라주니 자신을 스스로

남자기생이라 부른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단 말인가. 사람들은

으레 의아해할 수밖에 없다. 청학동 박단골 상투머리에 자리잡은,

 그야말로 모두가 주인인 ‘주인없는 집’ 무아정(無我亭)이다.

절 같은 한옥 건물 두 채엔 6개의 방이 있어 비좁게는 40명까지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다. 마루에 앉으니 겹겹으로 중첩된

지리산 자락의 골골들이 사열을 받듯 도열해 있다. 지리산과 결혼했다는

짧은 승려 머리의 50대 후반 주인은 저녁이 되자 밥을 안치고 반찬을

만드느라 바쁘다. 무아정을 찾은 한 여성이 도우려 하지만 한사코 뿌리치

며 편안히 쉬라고 말한다. 밥을 짓는 사이 방문객들은 이방 저방을

둘러본다. 가지런하고 깨끗하게 정돈된 품이 도저히 남성의 손길이라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빨아서 차곡차곡 개켜놓은 타월과 황토와 감물을

들인 면 이부자리는 어느 특급호텔 못지않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방 한쪽에

놓여진 발재봉틀로 그것들을 손수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방바닥은

무명천을 바르고 콩댐을 해 어린 시절 고향 안방에 누운 기분이다.

밥이 다됐다는 소리에 방문객들은 통나무로 만든 밥상이자 찻상에

빙 둘러앉았다. 구수한 된장과 산나물들로 그득하다. 누군가가 가져온

삼겹살을 구워 싸먹으니 금세 게눈 감추
듯한다. 소주 한 잔씩이 돌아가고

 술기운이 오르자, 무아정 주인이 산에서 나는 각종 열매와 약초로 담근

술을 내놓는다.





 
질문이 쏟아졌다. 왜 이런 곳에 혼자 사느냐, 돈을 받지 왜 그러냐… 등.

세상사람들의 눈높이론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게다.

아무 말 없이 빙그레 웃던 그가 음악 하나를 틀어준다. 무아정에 인연

따라 왔거든 무거운 마음의 짐일랑 내려놓고 가라 한다. 대금산조에

실린 장사익의 노래가 흘러 나온다.

“모래알 같이 많은 사람/ 하필이면 왜 당신이었나?/ 미워서도 아니고/

좋아서도 아니다/ 너무나 벅찬/ 당신이기에 말없이/ 돌아서서 조용히

가련다/ 별같이 많은 사람/ 하필이면 왜 당신이었나?/ 잘생겨서 아니고/

못나서도 아니다/ 너무나 높이 뜬/ 당신이기에 고개 숙여/ 걸으며 두

눈을 감는다.”

그가 덩실덩실 어깨춤을 춘다. 객들도 한데 어우러진다. 금방 방 안이

춤판으로 변했다. 내가 없으니(無我) 모두가 하나가 됐다. 이내 열띤 토론

이 벌어지는가 했더니, 누군가가 소리 한가락을 뽑아댄다. 대금과 장구가

장단을 맞춘다. 그는 다만 지극정성으로 ‘사람들 마음의 발’을 닦을 뿐이다.

그가 바라는 것은 단 한가지. 그저 좋은 마음들을 듬뿍 담아 가지고 각자

처소에 돌아가 그 마음을 나누기만 하면 된다. 극진히 대접받은 자만

남을 대접할 수 있는 법.

방문객이 없을 땐 그는 빨고 닦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무아정 호텔’의 청소부이자 관리원이 된다. 한 사람이라도 오면

그는 바로 일을 멈추고 서비스 맨으로 돌아간다. 행여 일을 하고 있으면

불편해할까 봐서다. 덕분에 쉰다는 생각에 오는 손님이 반갑다.

인연 따라 알고 찾아온 이들을 정성 다해 모시는 일이 그에게는

삶의 존재 이유다. 이세상 태어나 남에게 뭔가 해줄 수 있다는

자체가 축복이자 행복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는 베트남전 총탄 흔적을 몸에 지닌 상이용사다.

한땐 금융기관에 근무하기도 했다. 생사를 넘나들었고 돈도 벌어본 셈이다.

나이 마흔을 넘기면서 많은 것을 가지려는 욕망이 부질없어 보였다.

세상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가지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

무엇이 제대로 살아가는 삶인가 고민했다. 직장 생활 중에도 주말엔

늘 산행을 즐겼던 그는 어느 해 이곳 무아정 터를 알게 된다.

매년 12월 말이면 열차를 타고 지리산에 내려와 새해를 맞으며 인생

후반기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궁리했다. 지리산 골짜기를 다비장으로

삼는다는 각오로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무아정을 지었다. 이제 지리산

생활 9년째를 넘겼다.





모르는 사람들의 방문을 받는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에겐 피곤한 일이다.

그도 예외는 아닐 듯싶은데, 사람을 느끼면 기를 받아 힘이 솟는단다.

사람 오는 것이 피곤했다면 분명 그는 벌써 무아정을 떠나버렸을 것이다.

침식 준비만 해도 일해주는 사람 두세 명이 족히 있어도 간단한 일이

아니기에 그렇다. 그에게서 삶의 도(道)는 사람들을 통해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황토물과 감물을 들인 면이불 9채를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가끔 누군가가 과음으로 이불에 술을 토해도 그는 덕분에 이불 한번 더

빨아보는 기쁨이 있다고 말한다. 뺨을 때려도 밥해줄 수 있는 마음,

미안해 하지 않게 마음을 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그에겐 모두가

도의 세계다. 사람 속에 사람을 느끼는 것, 같이 어울리면서 똑같은

마음을 느낄 때도 그것은 도다. 성경과 불경의 가르침이 따로 없다.

무아정에 크리스마스 땐 대형 트리가 장식되고 부처님 오신 날에는

연등이 내걸린다.

여름철 방문객이 많을 땐 방을 내주고 그는 이불 하나 달랑 가지고

나와 텐트를 치고 잔다. 행복찾기는 당구의 스리쿠션과 같은 것.

나의 행복 나의 천당만 따지기보다 그는 차라리 사람들의 기생이기를

원한다. 무아정에서 사람들이 무언가 느끼고 가면 마음의 변화가 생기고,

작지만 그러면서 세상은 변화된다는 얘기다.

방 안과 건물 주변엔 주판 풍로 숯불다리미 등 1960∼70년대 흔히 보았던

 생활용품들이 정돈되어 있다. 과거의 물건들이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안을

 주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매개체로 더할 나위 없기 때문이다.

과거(역사)는 현재와 미래의 거울이듯이.



지금까지 무아정을 찾은 사람은 4000명이 넘는다. 그렇다고 쌀독이

바닥난 적은 없다. 신기하게 쌀이 떨어질 만하면 다시 채워졌다.

생활비는 상이군인 연금이면 족하다. 국가만 잘되면 돈 끊길 일이 없으니

무아정에 국기를 게양해 놓은 연유다. 100만원도 안 되는 돈이지만

국민세금으로 충당되는 것이니 나누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다.

결국 무아정 방문자들은 자신들이 낸 세금을 되돌려받는 것이니 굳이

미안해 할 필요가 없단다. 무아정이 종종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학생이나

사관생도들의 단골 교육장이 되는 사연이다. 신부 수녀 목사 스님 등

종교인은 물론 예술인들도 단골이 많다.

무아정은 집을 비워도 문을 잠그는 법이 없다. 누구나 주인이 되어

밥을 해먹고 자고 가면 그만이다. 수석 등 손이 탈 만한 물건들도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누군가 가져가면 그만이다. 욕심을 불러일으키는 물건

은 아예 관심을 보이는 이들에게 그자리에서 줘버린다. 무아정은 그런

과정을 통해 물욕에서 자유로워지는 법을 가르친다.

주변에선 무아정을 돕겠다고 번번이 나서지만 좌절되고 만다.

무아정 주인은 그때마다 성철 스님의 경구 하나를 내뱉는다.

자기를 속이지 않는것(不欺自心)이 그를 도와주는 일이라고.

무아정에서 이뤄지는 모든 일은 결국 그가 그를 위한 공양 의식이다.

자신이 언론에 공개되는 것을 극구 사양하는 근본 이유이기도 하다.

단순한 호의와 호기심이 무아정을 변질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이른 시간 무아정을 나서는데 그가 말을 던진다.

이제 별장 하나 장만하고 든든한 관리인도 뒀으니 마음이 곤궁할 땐

언제라도 내려오라고. 별장 구입자금으로 마련한 돈이 있다면 좋은

곳에 기부하란다. 시뻘건 일출이 지리산 자락을 불사르고 있다.

무아정도 함께 불탄다. 내가 없는 무아의 세계다.


-옮겨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