回顧輯草案 108

目 次

目 次 머 릿 말........................................................................................................... 1, 還故鄕(환고향)의 斷想(단상)..................................................................... * 전원마을에 眩惑(현혹)된 痛恨(통한).................................................... *고향이 사라졌다........................................................................................ *禦侮公派譜(어모공파보)와 仲兄(중..

回顧輯草案 2021.12.19

청송(靑松)에 다녀와서

청송(靑松)에 다녀와서 북의 핵개발이 우리에게 위협이 되고 있어도, "코로나19"가 해를 넘기먼서 우리의 일상을 괴롭혀도, 정부의 실정으로 부동산 파동이 일어도, ....이런 것들과는 상관 없이 선량한 시민이 열심히 일하고 주말을 가족과 즐기려는 인파(人波)는 평화롭고 활기찬 민주사회의 참모습이었다. 세계선진국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우리의 긍지(矜持)요, 잘 사는 나라로 치부되고 있는것도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임에 틀림 없다. 이러한 긍정적(肯定的)인 현실 속에서 지난 2021,10,30, 주말을 이용해 막내 가족을 따라 국립공원 주왕산(周王山)을 자랑하는 청송(靑松)에 다녀 왔다. 국토의 도로망 정비가 세계수준이란 말을 들었는데 과연 새 도로개설로 근거리(近距離) 로 단축되어 대구_청송 3시간 이상..

回顧輯草案 2021.11.03

막내 내외에게 노구(老軀)를 의탁(依托)하고

막내 내외에게 노구(老軀)를 의탁(依托)하고 내 인생 말년에 대구에 같이 남은건 막내 식구 뿐이다. 급하면 먼저 기별할 곳도 막내 내외 뿐이다. 늙어서 자식들과 같이 산다는 것은 옛날엔 당연시(當然視)했지만 지금 이것을 누리고 사는 늙은이는 아마 하늘이 주신 복(福)이리라..... 누구나 늙어보면 자식의 그늘이 그리워진다. 더구나 최고령(92세)에 이르러서야 늘 앞날 의 불안을 안고 하루 하루를 넘긴다. 맏딸이 2015년 12월에 서울로 떠난 이후 막내가 그 짐?을 맡아서 많은 수고를 했고 고마 왔다. 지금도....앞으로도....쭉..... 날이 세면 기다리는 것은 자식들의 안부 전화다. 그 전화를 받은 날은 안사람의 표정이 밝아지고 그러한 광경을 바라보는 나 또한 즐겁다. 무엇 보다도 지금 가장 중요한..

回顧輯草案 2021.11.03

손자(孫子)들의 결혼식(1,2)

손자(孫子)들의 결혼식(1,) 2021년은 우리 가족의 경사가 겹친 행운의 해가 되었고 이를 같이 누리게 된 이 늙은이도 생애의 큰 복이 아닐 수 없었다. 2021, 4, 3, 서울에서 손자 찬제(贊堤)의 결혼식이 있었댜. 당초에는 노구(老軀)의 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모임엔 불참키로 작정했으나 가족 들의 권유가 진지하게 이어지고 임박해서는 구체적 일정까지 알려 왔기에 마음을 바꾸 었다. 1박하고 돌아오고 더 욕심 부리지 말자고............ 그렇지만 내심으로는 92살에 손부를 맞는 인생력정(人生歷程)의 순간을 보고 싶고 , "일산"으로 이사한 맏딸에게도 가 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욕심이었다 결혼식 전날 막내딸과 동행으로 모든것 의지하면서 상경했고 종착역에 애비가 나와 있어서 합류했다. 이어 석..

回顧輯草案 2021.11.02

2016 연시(年始)를 함께

2016 연시(年始)를 함께 2016년은 막내의 식구들과 함께 시작했다. 지난 연말(年末) 부터 안사람이 허리에 무리를 가해 외쪽 다리에 통증이 와 보행이 어려워 졌다. 한방 양방 다 다녀 봤지만 효과가 없어서 망서리고 있던중 지인(知人)들의 권유로 공항 (空港)앞 정형외과에 호출택시를 이용 다니면서 우울한 세모를 보내고 있었다. 그 위에 나도 좌골 신경통이 와 기동(起動)때 시큰거려 불편한 심기였다. 이날도 치료차 정형외과에 있었는데 거기까지 김서방 부자가 찾아 와서 치료가 끝나기를 기다려 주었다. 치료가 끝나고 동승하여 점심 예약 식당까지 직행 했고 잠시 나머지 시구와 합류 해물요리 전문점인 "속초식당"에 마주 앉았다. 해물탕과 대구탕으로 온 식구가 취향대로 나누어 식사 하면서 즐거운 한때를 보냈었다..

回顧輯草案 2021.11.02

첫 해외(海外) 나들이

첫 해외(海外) 나들이 막내 내외와는 처음 해외여행을 함께 했던 추억이 있다. 비행기도 처음이고.... 산골에 살던 사람이 도시로 나왔고 세상 넓은줄 이미 알았으나 그 위에 범인(凡人)이 해외로 나가 본다는 것은 꿈도 못꾼 시대를 살아 왔었다. 나라 경제가 성장하고 살림살이에 여유가 생긴 덕택으로 해외여행 길도 열리고 관광여행 알선 업체도 생겼다. 이렇게 열린 좋은 세상에 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 살아 가고 있다는 것만도 큰 축복이다. 해외여행에서 돌아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부러운듯 들어 오다가 나도 생애 첫 해외 나들이의 꿈이 자식들의 주선으로 이루어 졌었다. 민첩하지도 못한 터에 외국 문물을 접해 본 경험도 없어 좀 두려운 생각도 있던중 그 안내를 위해 막내 내외가 동반키로 했으니 얼마나 마음 든든하고..

回顧輯草案 2021.11.01

공학박사(工學博士)

공학박사(工學博士) 지극히 활동적이고 개방적인 성향에다 강한 추진력을 겸비한 김서방의 활동영역은 대학교의 교수 외에도 건축설계를 비롯 학문적 혹은 기술영역에 긍(亘)하여 간여하는 곳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그 만큼 얻어지는 성과도 있기에 항상 바쁘다. 바쁘다는 것은 일이 많다는 뜻이고 볼일 없는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다. 외부 활동에 에너지를 전소(全燒)하고 지친 직장인들은 피로회복의 뜻으로 집에선 편안 하게 쉬기를 원하는 것이 보편적인 모습이다. 그렇지만 김서방은 한때 직장과 학위를 따기 위한 만학......양자의 조화를 이어 가면서 학자의 반렬에 오르기 위한 각고(刻苦)의 세월을 보냈었다. 그것도 여가를 이용해 외국을 드나들면서 시간, 경비를 최대한으로 아끼며 혼신(渾身)의 노력이 이어진 긴 고난의..

回顧輯草案 2021.11.01

7, 조상을 기리며

7, 조상을 기리며 #, 영모비문(永慕碑文) #, 족보(族譜)경신보(庚申譜 1980)편보(編譜)때 겪은일 #, 우리집 세계요약(世系要約).......병풍용(屛風用) #, 판관공파보(判官公派譜)편찬에 참여 #, 13세(世)지무(枝茂)이하 세계와 묘비개수(墓碑改竪) #, 13世 지무(枝茂) 비문(碑文) #, 14世 혁(焃) 비문 #, 15世 세기(世基) 비문 #, 16世 문식(文植) 비문 #, 17世 눌(訥) 비문 #, 18世 사덕(師德) 비문

回顧輯草案 2021.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