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戰爭函

6.25戰爭 慘狀 記錄寫眞 資料

bsk5865 2011. 1. 25. 21:30

  2011년 1월 25일 화요일, 18시 54분 41초 +0900

 

 

 
★ 6.25전쟁 참상 기록사진 자료 ★
** 6.25南侵 60周年을 맞이하여 **

 

우리 민족은 유구한 역사를 통해 치른 전란 중에서 6.25전쟁으로 인해 가장 처참하고 엄청난 전쟁피해를 입었습니다.

6.25전쟁은 미친 개새끼 김정일의 애비 김일성 미친 개놈이 일으킨 남침 전쟁입니다.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에는 6.25전쟁이 북괴의 남침이 아니고 대한민국이 북침한 침략전쟁이라고 우기는 개새끼들이 우굴거리고 있습니다.

이자들이 하늘처럼 떠받들고 있는 김정일 수령님의 품안으로 이자들을 빨리 보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1950. 9. 30. 전화(戰禍)로 폐허가 된 대전역.


▲ 1950. 11. 24. 불타버역 앞 세브란스 병원


▲ 1950. 10. 7. 불타고 있는 김포 비행장.


▲ 1950. 10. 18. 전화에 그을린 중앙청.


▲ 1950. 10. 18. "국하재(國破山河在)",
멀리 북악산과 중앙청 돔이 보인다.


▲ 1950. 9. 20. 왜관, 낙동강 철교 복구 공사.


▲ 1950. 10. 12. 미조리호 군함에서 청진항을 향해 함포사격을 가하고 있다.


▲ 1950. 10. 20. 400여  낙하산부대가 평양부근에 투하되고 있다.


▲ 1950. 12. 18. 북한군에게 뿌린 귀순 권유 전단.


▲ 1950. 11. 2. 적십자사에서 피난민에게 구호물자를 나눠주고 있다.


▲ 1950. 10. 13. 경기도 파주, 참혹하게 학살된 시신들.


▲ 1950. 11. 1. 서울 중금의 문화관광부 자리,
주민들이 폐허더미에서 땔감이나 돈이 될만한 물건을 찾고 있다.


▲ 1950. 11. 2. 원산의 한 성당,
폐허가 된 성당 내부를 신도들이 청소하고 있다.


▲ 1950. 11. 6. 북한의 어느 농촌, 탈곡한 볏단을 달구지에 싣고 있다.


▲ 1950. 11. 6. 북한의 어느전란 중에도 추수를 하고 있다.
바람개비로 알곡을 가리는 농부들.


▲ 1950. 11. 19. 북한의 한 지하 무기 공장 내부.


▲ 1950. 11. 20. 국경지대, 미군들이 소달구지로 보급품을 운반하고 있다.


▲ 1950. 11. 18. 미군 폭격으로 파괴된 흥남 비료공장.


▲ 1950. 11. 18. 미군 폭격으로 파괴된 흥남 송전소.


▲ 1950. 11. 23. 함경도 갑산, 미군 폭격으로 성한 집이 드물다.


▲ 1950. 11. 1. 황해도 평산에 진격하는 유엔군을
두 여인이 전신주 뒤로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 1950. 12. 4. 평양을 떠나 대동강을 건너 후퇴하는 국군.


▲ 1950. 12. 6. 황해도 사리원,
남행하는 피난열차에 피난민들이 몰려들고 있다.


▲ 1950. 12. 8. 경기도 금촌, 38선을 넘어 후퇴하는 유엔군 차량들.


▲ 1950. 12. 9. 끊어진 한강철교.


▲ 1950. 12. 10. 포화에 불타는 마을.


▲ 1950. 12. 12. 한강 부교를 통하여 후퇴하는 차량들.


▲ 1950. 12. 12. 피난민들이 한강을 나룻배로 건너고 있다 .


▲ 1950. 12. 12. 유엔군들이 인천항을 통해 장비들을 후송시키고 있다.


▲ 1950. 12. 12. 유엔군들이 후퇴하면서
다리를 폭파시키고자 폭약을 장치하고 있다.


▲ 1950. 12. 3. 평양, 남행 피난민 행렬 속의 한 소녀.


▲ 1950. 12. 10. 중공군의 참전으로 강추위 속에 후퇴 행렬.
한 병사가 너무 추운 날씨로 모포를 뒤집어쓰고 있다.


▲ 1950. 12. 12. 흥남부두, LST 함정에 가득 탄 군인과 피난민들.
미처 함정에 오르지 못한 피난민들이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
대부분의 피난민들은 원자탄이 투하된다는 말에 피난 행렬에 나섰다고 한다.
몇 날의 피난 길이 50년이 더 지났다.


▲ 1950. 12. 14. 서울역, 남행 피난민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 1950. 12. 16. 흥남, 국군과 유엔군들이 후퇴하고자
부두에서 수송선을 기다리고 있다.


▲ 1950. 12. 27. 흥남, 얕은 수심으로 수송선이 해안에 닿을 수 없자
유엔군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LST로 가고 있다.


▲ 1950. 12. 24. 흥남, 유엔군들이 철수 후 부두를 폭파시키고 있다.


▲ 1950. 12. 19. 묵호, 흥남에서 철수한 장비를 묵호(동해)항에 내리고 있다.


▲ 1950. 12. 28. 서울, 피난민들이 강추위 속에
한강 얼음을 깨트리며 나룻배로 남하하고 있다.


▲ 1950. 10. 11. 서울 교외, 부서진 북한군 전차 위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 1950. 11. 1. 전란으로 폐허가 된 서울.


▲ 1950. 12. 28. 끊어진 한강 철교, 오른쪽은 임시로 만든 부교.


▲ 1951. 1. 3. 한강 철교 부근의 언 강을 피난민들이 걸어서 건너고 있다.


▲ 1951. 3. 16. 서울 중구의 수도극장(현 스카라 극장) 일대.


▲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중앙청 광화문 세종로 일대.


▲ 1951. 3. 16.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왕십리 일대,
멀리 고려대학교 건물이 보인다.


▲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서울역 일대.


▲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중앙청, 경복궁, 수송동, 팔판동 일대.


▲ 1951. 3. 19. 구호 양곡을 먼저 탄 소년과 양곡을 타기 위해 줄을 선 주민들.


▲ 1950. 10. 12. 원산. 학살된 시신들.


▲ 1950. 12. 11. 고단한 피난길.


▲ 1950. 12. 16. 폭격에 엿가락처럼 휘어진 철교.


▲ 1950. 12. 17. 보급품을 실은 화물 열차가 폭격에 불타고 있다.


▲ 1950. 12. 18. 대구. 훈련소에서 교육을 마친 신병들이
전선으로 가고자 대구역전 광장에 집결해 있다.


▲ 1950. 12. 18. 전방으로 떠나는 신병들.


▲ 1950. 12. 18. 대구역. "총알을 요리조리 잘 피해서 어예든동 살아오이라."
'어무이 걱정 꽉 붙들어 매이소. 어무이 아들 아잉기요.
내는 꼭 살아돌아올 깁니다."


▲ 1950. 12. 21. 경북 왜관. 낙동강 철교 어귀에 부서진 북한군 소련제 탱크.


▲ 1951. 1. 20. 아버지와 아들의 피난길, 다른 가족은 전란에 모두 죽었다.


▲ 1950. 6. 18. 6.25 한국전쟁 발발 일주일 전 의정부 북방 38 접경에서
미 국무장관 덜레스(가운데) 일행이 38선 너머 북쪽을 살피고 있다.
(덜레스 오른쪽 신성모 국방장관).


▲ 1950. 6. 18. 미 국무장관 덜레스 일행이 38 접경 지대를 살피고 있다.


▲ 1950. 7. 한미 수뇌부들이 환담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병옥 내무장관, 신성모 국방장관, 무초 주한 미대사,
임병직 외무장관, 워커 주한 미군 사령관).


▲ 1950. 7. 26. 맥아더 장군이 전선을 시찰하는 중,
종군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 워커 장군.


▲ 1950. 8. 15. 이승만 대통령과 신성모 국방장관이 8.15 경축식을 끝낸 후
임시 국회의사당인 문화극장을 떠나고 있다.
신 국방장관은 “아침은 서울에서 먹고, 점심은 평양에서…” 라고
상대의 전력도 모른 채 큰 소리쳤으나 6.25 발발 후
서울시민은 팽개치고 몰래 서울을 빠져나갔다.


▲ 1950. 8. 18. 백선엽 장군(가운데)이 미군과 함께 작전을 세우고 있다.


▲ 1950. 9. 16. 구포 신병 훈련소에서 훈시하는 이승만 대통령.


▲ 1951. 2. 7. 전선을 시찰하는 맥아더 장군.


▲ 1951. 2. 15. 대한민국 해상 이동방송선(HLKT)을 방문한 장면 총리 일행.


▲ 1951. 9. 콜트 미 8군 부사령관의 이임식장
(왼쪽부터 허정, 콜트. 무초 주한 미대사).


▲ 1950. 8. 25. 부산 근교의 임시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이 심문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 1950. 8. 28. 유엔군에게 잡힌 북한측 포로.


▲ 1950. 9. 27.부산, 북한 측의 포로들을 임시 포로수용소로 데려가고 있다.


▲ 1950. 9. 29. 생포된 북한 측 포로들.


▲ 1950. 10. 영동, 생포한 북한 측 유격대원들.


▲ 1950. 11. 15. 영흥, 유엔군들이 생포한 유격대원들.


▲ 1951. 1. 16, 부산, 북한 측 여자포로들.


▲ 1951. 2. 26. 포로들이 임시 수용소로 실려와서 내리고 있다.


▲ 1951. 2. 26. 부산, 근교의 임시 포로수용소 전경.


▲ 1950. 3. 9. 유엔군들이 포로들에게 DDT를 살포하고 있다.


▲ 1950. 3. 7. 미군이 중공군 포로의 소지품을 검사하고 있다.


▲ 1951. 5. 10. 미군들이 중공군 포로들에게 DDT를 살포하고 있다.


▲ 1951. 3. 10. 투항한 중공군.


▲ 1951. 5. 7. 거제포로수용소 전경.


▲ 1951. 5. 29. 화천, 중공군 포로들.


▲ 1951. 5. 29. 13세인 중공군 소년병.


▲ 1951. 6. 26.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이 예배를 보고 있다.


▲ 1953. 7. 27. 유엔군 측에서 송환되는 포로들에게 알리는 지시문.


▲ 1953. 10. 11. 북한측 포로가 자기 의사를
분명히 밝히면서 북으로 돌아가고 있다.


▲ 1954. 2. 16. 귀환을 거부하는 북한 측 포로를
북측 대표들이 설득하고 있다.


▲ 1951. 4. 3. 강대국이 그어놓은 원한의 38선.
이 38선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살아왔던가.


▲ 1951. 1. 26. 미 전투기들이 북한군 진지에 폭탄을 떨어뜨리고 있다.


▲ 1951. 7. 15. 미 전투기들이 원산 상공을 날고 있다.


▲ 1951. 10. 18. 미 전투기가 북한지역에 폭탄을 떨어뜨리고 있다.


▲ 1951, 2. 23. 미 수송기에서 낙하산을 이용하여
보급품을 떨어뜨리고 있다.


▲ 1951. 3. 5. 한강 북쪽 북한군 진지에 폭격을 가하고 있다.


▲ 1951. 4. 2. 미 정찰기가 적진을 살피고 있다.


▲ 1950. 7. 10. 조치원 부근. 미군 트럭이
북한군 폭격기가 떨어뜨린 폭탄에 불타고 있다.


▲ 1950. 7. 16. 금강교 폭파 장면.


▲ 1950. 7. 21. 불타고 있는 대전 시가지.

 
** 6.25의 노래 **
 
1.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짖밟아 오던 날을
맨 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울분에 떤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례)

2.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불의의 역도들을 멧도적 오랑케를
하늘의 힘을 빌어 모조리 쳐부수어 흘려온 값진 피의 원한을 씻으리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3.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정의는 이기는 것 이기고야 마는 것
자유를 위하여서 싸우고 또 싸워서 다시는 이런 날이 오지 않게하리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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