遠き山に日は落ちて-ともしび大合唱 作詞 堀内敬三 作曲 アントニン・ドヴォルザーク
一 遠き山に 日は落ちて 星は空を ちりばめる きょうのわざを なし終えて 心軽く 安らえば 風は涼し この夕べ いざや 楽しき まどいせん まどいせん
二 やみに燃えし かがり火は 炎今は 沈まりて 眠れ安く いこえよと さそうごとく 消えゆけば 深き森に 包まれて いざや 楽しき 夢を見ん 夢を見ん
Goin' Home-Rryn Tertel 作詞:W. A. Fisher
Goin' home, goin' home, I'm a-goin' home, Quiet like some still day, I'm jes' goin' home. It's not far, jes' close by, Through an open door, Work all done, care laid by, Gwine to fear no more. Mother's there 'spectin' me, Father's waitin' too, Lot's o' folk gathered there, All the friends I knew. Home, home, I'm goin' home. Nothin' lost, all's gain. No more stumblin' on the way, No more longin' for the day, Gwine to roam no more. Mornin' star lights the way, Res'less dreams all done, all done, Shadow's gone, break o' day, Real life's jes' begun. Dere's no break, ain't no end, Jes' a-livin' on, Wide awake with a smile, Goin' on and on. Goin' home, goin' home, I'm jes goin' home, It's not far, Jes' close by, Through an open door, I'm jes' goin' home.
歌の背景
“遠き山に日は落ちて”는 체코•보헤미아 出生의 作曲家 <도볼자쿠> 의 “交響曲第9番ホ 短調作品95” 第二楽章의 멜로디에 歌詞을 붙인 노래입니다.
이 作品은 <도볼자쿠>의 最後의 交響曲으로 “新世界より”라는 타이틀이 달려 있는데 第二楽章“ラルゴの主題”는 荘厳한 코랄(詠唱)風의 序奏에서 始作되어 잉글리쉬 호른(English horn)에 依한 郷愁에 찬 演奏로 옮겨집니다 이 멜로디 가 “遠き山に日は落ちて”또는“家路”로서 알려져 있는 部分입니다.
플루트와 오보에로 依한 中間 部에서 緊迫感이 強한 第一楽章의 第一主題가 더해지는 클라이맥스로 옮겨가고 最後에 다시 “遠き山に日は落ちて”의 멜로디로 편안하게 흘러갑니다.
<도볼자쿠>는 1892年에 美國에 招待되어 95年까지 4年間을 뉴욕의 国民音楽院의 院長으로 滯留하였습니다 그 期間에 만든 것이 “交響曲第9番―新世界より”로 以外에 “弦楽四重奏曲第12番 ―アメリカ”나“チェロ協奏曲ロ短調”等도 作曲하였습니다.
<도볼자쿠>의 大槪의 評伝에는 이것을 美國에서의 作品으로 다음과 같은 趣旨의 説明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도볼자쿠>는 美國에서 黒人이나 인디언의 音楽을 처음으로 듣고 強한 感銘을 받아 타고난 東欧的인 音楽感性과 西欧古典音楽의 教養에 依해 美國 東欧 西欧의 3種類의 音楽을 融合하여 새로운 音楽으로 昇華시켰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説明에서는 “交響曲第9番”全体의 成立이나 特徴은 알 수 있습니다만 第二楽章에 왜 저와 같은 素朴하고 편안함이 가득한 멜로디를 넣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추어 생각으로는 相當히 独断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다음과 같은 것도 생각 할 수가 있겠네요
美國은 1776年에 建国한 以後 猛烈한 氣勢로 나라 만들기를 進行 시켰습니다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西로 西로 나가고 東部에 남은 사람들은 次例로 새로운 産業을 일으켰습니다
그 에너지의 基底에 있었던 것은 “強いこと・大きいこと・勝つこと”를 3個의 기둥으로 삼는 美國 独自의 男性的 価値観이었습니다 뛰어나다는 것은 強한 것 큰 것으로 이기지 않으면 意味가 없고 진(負け) 것에는 아무 価値도 없다 라는 것이 支配的인 思考였습니다.
<도볼자쿠>가 美國에 왔을 때 에디슨은 레코드 電球 活動写真 等을 発明하고 새로운 鉄道나 道路가 建設되어 自動車가 달리고 飛行機가 날고 大都市에서는 高層빌딩이 次例次例 올라가 제너럴•일렉트릭社 等 後에 世界企業이 되는 会社가 여러 個가 設立되었습니다.
<도볼자쿠>는 이런 눈부신 物質文明의 進展과 그것을 만들어내는 活力에 感嘆하고 그것을 自己가 태어나 자란 旧世界=유럽에 伝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 까요 그것이 “新世界より”라는 타이틀 에 連結된 것이지요.
그러나 유럽의 繊細함에 洗練된 文化風土의 안에서 人間形成을 해온 그가 美國의 勇猛스런 活力이나 男性的인 価値観을 아무 抵抗感도 없이 受容하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感嘆할 外에 精神的으로 지쳐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데요 젊은 氣分이라면 그런 것에 適応되었을 것입니다만 美國에 왔을 때 그는 이미 52歳였습니다.
1893年의 여름 休暇 때 <도볼자쿠>는 아이오와州에 外出했습니다. 第二楽章의大部分은 그때 씌어졌다고 하는데 아이오와州는 보헤미아에서 移民 온 사람의 많아 그는 많은 同郷人을 만났을 것으로 同郷의 사람들이 維持해온 生活習慣 말씨 사람들의 交際 方法 그리고 어쩌면 飮食物에 依해서도 그의 精神的 疲勞가 풀렸다는 생각도 드네요.
作成者 黃圭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