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낸사람: 노을05 운영자 11.12.06 13:15
盧泰愚 정부의 5大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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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괴의 도발이 한번도 없었다. |
이승현(회원) |
최근 노태우 전 대통령이 건강악화로 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물태우라는 별명과 함께 국민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전직 대통령이지만 이 자리를 빌려 노태우 정권의 업적에 대해 몇가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국민들에게 각인 된 노태우의 유행어는 무엇이 있을까? <보통사람> 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이다. 유교문화권의 한국사회에서 제왕적 대통령에서 최초로 낮은 자세의 대통령을 지향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의 완성판인 6공화국 출범과 함께 보통사람임을 강조한 노태우는 국민들 속에서는 <물태우>라는 별명으로 많이 불렸다. 국민들에게는 유약한 모습을 보였지만 내치와 외치에서는 강경한 정책을 마음껏 구사한 허허실실 권법의 고수였다. 그동안 잊혀지고, 저평가 되었던 노태우의 무공 실력을 한번 살펴보자.
1. 대한민국 역대 정권 사상 최초로 북한의 무력 도발이 없었다.
우리는 김대중과 노무현을 거치면서 김정일에게 막대한 자원을 상납한 대가로 평화를 구걸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역사는 연평해전과 서해교전, 핵실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등 그 어느 때보다 북한의 무력 도발이 강했다. 하지만 노태우 정권 시절의 북한군 도발이라고 해 봐야 1992년 5월 22일 DMZ를 넘어오던 무장공비 3명을 국군이 전원 사살시킨 승전보만 있을 뿐이다.
2.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한반도 내에서 한국이 주권을 쥐게 되었다.
김대중의 망국적 6.15 회담으로 인해 한반도에는 6.15 합의가 전부인줄 알고 있다. (그 아류작 노무현의 남북정상회담은 언급할 가치도 없다.) 1991년 12월 13일 서울에서 합의 된 ‘남북기본합의서’에서는 서로를 인정하며 평화통일의 길을 열어 놓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했던 한반도에서의 핵 폐기에 대해 한국은 <핵포기 정책 선언 (1991년 11월)>, <한국 배치 미군 핵무기 완전철수 선언(1991년 12월)>,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 발표 (1992년 1월)> 등 최선의 노력을 경주 하였으나 북한은 199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함으로써 남북기본합의서는 효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 후 김대중은 북핵 문제에 대해 “북한은 핵을 개발한 능력도 의사도 없다. 북한이 핵을 만들면 내가 책임지겠다”며 국민을 속인 후 6.15 회담을 하였고, 노무현은 북핵에 대해 “우리를 겨냥하는 것이 아니다” 라며 반역적 거짓 선동을 하였다. 핵무기를 가슴에 품은 채 평화를 논의할 수 있을까?
3. 북방외교를 통해 외교적으로 북한을 고립시켰다.
노태우 정권은 88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시작으로 공산진영 국가들과 하나 둘씩 수교를 맺음으로서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더욱 고립시켰다.
동구권 국가들이 차례로 북한에 등을 돌리고 한국과 외교 관계를 맺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지배국이었던 소련마저도 대한민국과 수교를 맺게 되었다.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고립이 될 수 없었던 북한은 1991년 9월 17일 <남북한유엔동시가입> 승인이 확정 되었다. 이는 한반도 문제가 더 이상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엔국들간의 공동 책임이자 북한을 유엔의 심판대로 이끌어 내게 되었다.
4. 범죄와의 전쟁 선포
김대중은 한민족 최대의 범죄자인 김정일과 입맞춤을 하였고, 노무현은 국정운영 보다는 조중동과의 싸움질에 집중 하였다. 그 뿐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내 한복판에 범법자들이 깽판치고, 난리쳐도 대통령의 권한을 청와대 뒷산 언덕에서 소매치기 당하였다. 이러한 대통령들에 비하면 1990년 10월 13일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조폭 762명을 구속시키며 국내에서 활동하던 조폭들을 사실상 와해시킨 것은 물태우라는 별명에 어울리지 않는 대통령의 당연한 의무를 수행한 것이다. MB가 노태우의 1/10만 닮았었어도 불법폭력시위를 남발하는 전문시위꾼들은 미국으로 원정 시위 갔을 때처럼 삼보일배나 하면서 경찰의 보호 아래 평화적 시위 문화를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5. 민주주의의 완성
2011년 현재 한국의 좌익들은 아직도 민주주의를 외친다.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었던가? 헌법에 명시 되어 있고, 민주주의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있어서 6공화국 탄생과 함께 민주주의를 노태우 정권에 들어서서 완성이 되었다는 사실은 왜곡시킨다. 그러다 보니 김정일은 주체성이 있는 군주요, 이명박은 독재자라는 거짓말도 나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완성 된 대한민국은 그 다음으로 공화주의와 법치주의를 향해 매진해야 하는데 아직도 민주당, 민노당등 종북 수구세력들은 민주주의만 외치고 있는 실정이다. 노태우는 직선제로 국민이 선출하였으며, 6공화국을 출범시키며 오늘날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노태우 정권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서 언론사 등록이 자유화 되었고, 언론사간의 자유경쟁이 도입 되었다. 한겨레신문사도 1988년 노태우 정권 시절에 무사히 창간할 수 있었다. 노태우 정권의 언론정책은 훗날 자유가 방종이 되어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언론사와 언론인들을 정부가 효율적으로 단속하지 못하는 부작용도 뒤 따르게 되었다. 노태우 정권은 공도 많고, 탈도 많은 정권이었지만 한국사에 있어서 굵직한 한 획을 장식하기도 하였다. 물태우라는 별명답지 않게 국익을 위해서는 강경노선을 펼치기도 하였고, 남북한 간 최고로 평화로운 시기를 구축하기도 하였다. 지금은 산소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는 노태우. 우리는 그 시절을 다시 재조명할 필요가 있으며, 노태우의 공과 과에 대해 역사에 바르게 기록하여 후손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 |
[ 2011-12-03, 20: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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