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曲 名演奏]- 푸치니, 라 보엠 ****
[名曲 名演奏]
푸치니, 라 보엠
Puccini, La Boheme
특성: 프랑스 작가 앙리 뮈ㅐ르제의 소설 [보헤미안 삶의 정경]을 각색
정보: 이탈리아 토리노 왕립극장에서 1896년 초연
해마다 크리스마스 무렵에 단골로 공연되는 오페라가 있습니다. 바로 크리스마스 이브에 시작되는 사랑 이야기를 그린 푸치니의 [라 보엠]이죠. 브로드웨이 뮤지컬 [렌트]로 각색되기도 한 이 작품은 예술과 가난한 삶 속에서 온갖 기쁨과 고통을 경험하며 성장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파리 뒷골목 가난한 사람들의 일상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묘사한 프랑스 작가 앙리 뮈르제(Henry Murger, 1822-1861)의 소설 [보헤미안 삶의 정경]을 토대로 한 오페라죠. |
1. 로돌포의 아리아 - Che gelida manina 그대의 찬 손 / Luciano Pavarotti
2. 미미의 아리아 - Si. Mi chiamano Mimi 내 이름은 미미 / Mirella Freni
3. 로돌포와 미미의 이중창 - O soave fanciulla' 오, 사랑스런 그대
/ Mimi (Renata Scotto) Rodolfo (Luciano Pavarotti)
4. 무제타의 왈츠 - Quando me’n'vo 내가 혼자 거리를 걸어가면
/ Rolando Villazon, Alexia Voulgaridou, Elena De la Merced, Markus Marquardt, Ludovic Tezier;
‘이탈리아 최후의 벨칸토 작곡가’이자 ‘베르디의 후계자’라는 평을 받은 자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는 4대째 오르가니스트인 집안에서 태어나 아버지에게 다섯 살 때 오르간 연주를 배웠습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열 살 때부터 산 마리노 성당 소년합창단원으로 활동했는데요, 교육열이 남다른 어머니의 노력으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장학금을 얻어 밀라노 음악원에 입학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폰키엘리에게 작곡을 배우며 마스카니, 레온카발로 등의 친구들과 함께 보헤미안처럼 가난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았고, 굶주림의 고통을 알게 된 이때의 체험 덕분에 오페라 [라 보엠]을 더욱 생생하고 사실적인 작품으로 만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푸치니는 작곡경연대회에 첫 오페라 [레 빌리]를 제출해 상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오페라 작곡을 시작했고, [마농 레스코]가 대 성공을 거두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요. 본능적인 무대 감각으로 관객을 만족시켰던 작곡가였습니다.
크리스마스 오페라, ‘기쁜 우리 젊은 날’
1막이 시작되는 곳은 가난한 예술가와 날품 파는 젊은이들이 모여 사는 1830년대 파리의 라탱(Latin) 지구. 낡은 아파트의 꼭대기 층에서 시인 로돌포는 화가 마르첼로와 함께 추위에 떨며 농담을 나누다가, 자기가 쓴 드라마 원고를 난로에 넣고 불을 피웁니다. 때는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이들의 친구인 철학자 콜리네가 들어오고, 뒤이어 음악가 쇼나르가 아르바이트 해 번 돈으로 먹을 것을 잔뜩 사들고 오지요. 네 친구가 신나게 먹고 마시는 중에 집주인 베누아 영감이 밀린 월세를 받으러 옵니다. 이들은 베누아를 추켜세워 바람피운 경험을 털어놓게 만든 뒤 ‘부도덕한 인간’이라며 쫓아내 버리고는, 다 함께 카페 ‘모뮈스 Momus’로 갑니다. | |
푸치니의 서정적인 선율 속에 펼쳐지는 로돌포와 미미의 사랑.
친구들을 먼저 내보내고 잠시 혼자 방에 남아 원고를 마치려던 로돌포에게 이웃에 사는 미미라는 처녀가 찾아옵니다. 촛불이 꺼져 불을 얻으러 온 것이었지요. 자기 방으로 돌아가려던 미미는 열쇠를 잃어버렸고, 바람 때문에 촛불까지 다시 꺼져버립니다. 로돌포는 어둠 속에서 미미의 손을 잡으며 ‘그대의 찬 손’을 노래합니다. 미미도 이에 답하며 ‘내 이름은 미미’라는 노래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아래층에서 친구들이 재촉하자 두 사람은 사랑의 이중창 ‘오, 사랑스런 그대’를 함께 부르며 거리로 내려가죠. 운명적인 상대방을 만나 마법처럼 한 순간에 사랑이 이루어지는 환상적인 장면 같지만, 사실은 가진 것이 없어 잃을 것도 없기 때문에 따지거나 계산하지 않고 바로 사랑을 시작하는 사회 계층을 그려낸 장면입니다.
2막은 카페 앞 광장입니다.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려는 인파로 광장이 가득합니다. 네 친구와 미미가 식사를 하고 있는데 바람둥이로 유명한 미녀 무제타가 알친도로라는 돈 많은 노인을 애인으로 거느리고 카페에 들어섭니다. 무제타의 예전 애인이었던 마르첼로는 애써 그녀를 외면하려 하지만, 무제타는 마르첼로의 관심을 끌려고 요염한 태도로 ‘내가 혼자 거리를 걸어가면'을 부릅니다. 마르첼로와 무제타는 여기서 서로에 대한 열정이 그대로임을 확인하지요. 발이 아프다며 구두를 고쳐오라고 알친도로를 내보낸 뒤 무제타는 네 친구들의 계산서를 모두 알친도로 테이블에 떠넘기고는, 이들과 함께 카페를 떠납니다.
3막은 두 달 후 이른 새벽에 시작됩니다. 파리 시의 관문인 앙페르 문으로 시외에서 온 날품팔이꾼들이 몰려들어옵니다. 무제타와 마르첼로는 이곳 술집에 방을 얻어 함께 살고 있는데, 병색이 짙은 미미가 마르첼로를 만나러 옵니다. 미미는 로돌포의 질투와 변심으로 헤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하소연합니다. 마르첼로는 술집에 찾아와 잠들어있는 로돌포를 깨우겠다며 안으로 들어가고 미미는 바깥 구석에 몸을 숨기지요. 로돌포는 미미가 바람기가 있어 헤어져야겠다고 말하지만, 마르첼로는 ‘맘에 없는 소리’라고 일축합니다. 그러자 로돌포는 진실을 밝힙니다. 사실은 자기와 함께 살아서 미미의 폐결핵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데, 자신은 난방비도 벌지 못하고 있어 너무나 괴롭다는 얘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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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결국 미미를 죽일 것이라는 로돌포의 회한에 찬 말을 듣고, 미미는 흐느끼다가 기침발작을 일으킵니다. 로돌포와 미미는 조용히 이별의 노래를 부르는데, 무제타가 다른 남자와 장난치는 것을 본 마르첼로는 질투심에 타올라 무제타와 욕설을 주고 받으며 한바탕 싸움을 벌이다가 결국 헤어집니다.
4막은 다시 처음처럼 로돌포의 다락방입니다. 미미와 헤어진 로돌포는 글을 쓰고 있고, 역시 무제타와 헤어진 마르첼로는 그림을 그립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애인을 거리에서 보았다고 말하며 그리움에 잠겨 이중창을 부르지요(‘미미는 영영 돌아오지 않아’). 쇼나르와 콜리네가 들어와 네 친구가 함께 소란을 피우며 놀고 있을 때 무제타가 달려 들어와 병이 위중해진 미미를 데려왔다고 말합니다. 로돌포가 미미를 부축해 침대에 뉘이지요. 무제타는 장신구를 팔아 의사의 왕진비와 약값을 마련하려고, 그리고 미미가 늘 갖고 싶어하던 토시를 사다 주려고 마르첼로와 함께 나갑니다. 콜리네도 낡은 외투에게 작별인사를 건넨 뒤(‘외투의 노래’) 외투를 팔러 쇼나르와 함께 방을 떠나지요. 둘만 남게 되자 미미는 로돌포와 처음 만났던 날을 기쁘게 회상합니다. 이때 다시 듣게 되는 1막의 멜로디는 관객에게 눈시울을 적시게 하죠. 무제타가 들어와 토시를 건네주고, 마르첼로는 의사를 불렀으니 곧 올 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잠이 드는 듯했던 미미는 조용히 숨을 거두고 맙니다. 친구들보다 늦게 미미의 죽음을 알아차린 로돌포는 미미를 부르며 서럽게 웁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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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에서 숨을 거둔 미미를 안고 오열하는 로돌포. | |
시대를 역행한 센티멘털리즘의 인기
푸치니의 [라 보엠]은 베리스모 시대의 낭만주의 오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오페라가 토리노 왕립극장에서 초연된 1896년은 이탈리아 베리스모(verismo) 오페라의 시대(1890-1910년까지 대략 20년 간)였죠. 실제 현실과 다를 바 없는 적나라한 현실을 오페라 무대 위에 펼쳐 보이려 했던 베리스모 오페라의 음악은 현실을 미화하지 않고 격정, 절망, 분노 등의 감정을 날 것 그대로 표현했습니다.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나 레온카발로 [팔리아치]가 베리스모 오페라의 대표작이죠. 그러나 푸치니는 동시대 작곡가이면서도 구시대의 유려하고 센티멘털한 낭만주의적 멜로디로 청중을 매혹했습니다.
원작 [보헤미안 삶의 정경]은 상당히 객관적이고 사실주의적인 작품입니다. 원작의 에필로그에서 남자들은 헤어진 또는 세상을 떠난 여자들을 잊고 사회적 성공을 거둔 뒤 자신들의 가난했던 젊은 날을 추억하죠. 레온카발로가 이 소재로 먼저 [라 보엠]의 작곡을 시작했으나, 작곡이 1년 늦어지는 바람에 푸치니에게 뒤지고 말았습니다. 1897년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에서 초연한 레온카발로의 작품은 푸치니보다 원작에 충실했고 음악적인 면에서도 더 현대적이고 드라마틱하다며 평론가들에게 큰 찬사를 받았지만, 푸치니 같은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가 부족해 관객들에게 차츰 인기를 잃어 갔습니다.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 테너 라몬 바르가스가 열연을 펼친 200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공연 실황은 19세기 파리의 다락방을 사실주의적으로 재현한 제피렐리 프로덕션의 연장입니다. 제피렐리의 이 낡은 [라 보엠] 무대는 수십 년간 관객의 사랑을 받아왔는데요, 다른 많은 오페라 작품에서는 획기적인 신연출들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라 보엠] 만큼은 이 구식 연출이 여전히 대세입니다. 오페라 속 미미는 사랑하다가 병들어 죽기 때문에 그저 순진무구한 청순가련형의 여주인공으로 인식 되지만, 그것은 자신의 이상형에 여주인공을 맞춘 푸치니의 시도였습니다. 사실 뮈르제의 원작 캐릭터를 참고한다면 미미는 상당히 적극적이고 도발적이며 세상 경험이 있는 여주인공으로 창조되어야 합니다. 로돌포와 헤어진 뒤 추운 스튜디오에서 누드모델로 일하는 등 생계를 위해 갖은 고생을 하며, 돈 있는 남자들을 상대로 매춘을 하기도 하니까요. 최근의 연출은 이런 점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 글 이용숙 / 음악평론가, 전문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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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