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낸사람: 엔카 컴나라 운영자 12.09.21 08:21
강감찬장군과 빈 밥그릇
▒ 고려시대의 명장 ▒ 강감찬 장군은 살아서는 귀주대첩의 신화를 세운 명장으로, 죽어서는 오랜 세월 민중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 생애 강감찬은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강궁진(姜弓珍)의 아들로 금주에서 고려 제3대 정종 948년 11월 19일에 태어났다. 지금의 서울특별시 관악구의 낙성대가 그의 출생지이다. 시호는 인헌(仁憲)이고, 본관은 금주(衿州) 또는 진주, 어릴적 이름은 은천(殷川)이다. 성종 때인 983년 갑과에 장원 급제하고 예부시랑이 되었고, 거란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을 때 서북면행영도통사로 상원수(上元帥)가 되어 흥화진(興化鎭)에서 적을 무찔렀으며 달아나는 적을 귀주 에서 크게 격파하였다. 묘는 충청북도 청원군 옥산면 국사리에 있다.
※ 업적
1010년(현종) 거란의 성종이 40만 대군으로 침입하자, 하공진(河拱辰)으로 하여금 적을 설득하여 물러가게 하였다. 그 뒤 한림학사, 승지, 중추원사(中樞院使), 이부상서, 서경유수, 내사시랑평장사를 역임하였다.
1018년 거란의 소배압(蕭排押)이 10만 대군으로 침입해 오자 이듬해 서북면행영도통사로 상원수(上元帥)가 되어 군사 20만 8000명을 이끌고 흥화진(興化鎭)에서 적을 무찔렀다. 그 위에 쫓겨가는 적을 귀주에서 크게 격파하였다. 이 전투가 바로 그 유명한 귀주대첩(龜州大捷)이다.
그 이듬해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났다가 1030년 왕에게 청하여 성을 쌓고 문하시중이 되었으며, 이듬해 특진검교태사시중 천수군개국후(天水郡開國侯)에 봉해졌다. 현종 묘정(廟庭)에 배향, 수태사 겸 중서령에 추증되었다. 저서에《낙도교거집(樂道郊居集)》《구선집(求善集)》등이 있다.
[출처 : 사랑밭 새벽편지] 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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