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낸사람: 演好마을 운영자 13.02.24 17:41
절영지회(絶纓之會)
초(楚) 장왕(莊王)은
불같은 성격에 심중에는 원대한 웅략을 감추고 있는 사람으로,
필(邲)의 전투 당시 몸소 선두에서 북채를 잡고 진(晉)나라 군을
사정없이 몰아쳐 춘추시대 미증유의 대승을 거두고 춘추시대
세 번째 패자가 되었다.
그런데 그는 무섭게 몰아치다가도 정점에서 멈출 줄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장왕에게는 호색한, 쾌남아, 열혈남,
도가적 군주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이런 장왕의 성격을 아주 잘 보여주는 일화에는 유래한
고사성어가 있다.
바로 절영지회(絶纓之會)‘와 ‘육단견양(肉袒牽羊)’이다.
과연 장왕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보여주었을까?
절영지회(絶纓之會) : 갓끈을 끊은 연회.
왕과 신하들이 질펀한 잔치를 벌이던 날, 날이 어두워지고
술이 한참 올랐을 때 갑자기 촛불이 꺼졌다. 그때 초왕을
모시던 미인이 황급히 왕의 옷깃을 당기고 속삭인다.
"방금 촛불이 꺼졌을 때 어떤 자가 첩의 옷을 끌어당겨
수작을 걸더이다. 제가 그자의 갓끈을 끊어버렸으니
불을 켜거든 갓끈이 끊어진 자를 잡아내소서.”
왕은 미인의 말을 곰곰이 듣더니 돌연 좌중에 명령을 내렸다.
“오늘 과인과 술을 마시는데, 갓끈이 끊어지지 않은 이는
제대로 즐기지 않은 것으로 알겠소.”
이리하여 백 명이 넘는 신하들이 갓끈을 다 끊었다. 그리고
불을 켜고 그들은 다시 술을 먹기 시작했다. 그날 밤 이 일을
안 사람은 왕과 미인, 그리고 미인을 희롱한 사나이밖에 없었다.
술자리는 좌중이 곯아 떨어질 때까지 이어졌다. 이것이 갓끈을
끊고 놀았다는 이야기, 곧 절영지회(絶纓之會)라는 고사다.
3년이 지나서 진(晉)과 싸움이 벌어졌다. 그때 어떤 용사 하나가
앞장서서 용전하는데, 적과 다섯 번 싸워서 모두 격퇴시켰다.
이리하여 결국 싸움에서 이겼다.
장왕이 이 용사를 가상하게 여겨 물었다.
“과인이 덕이 부족하여 그대처럼 뛰어난 이를 아직 알아보지
못했다. 그대는 어떻게 죽음도 무서워하지 않고 용맹하게 싸웠는가?”
그러자 그 용사가 대답했다.
“신은 오래전에 죽어야 할 몸이었습니다. 예전에 술에 취해 실례를
범했을 때, 왕께서는 몰래 참고 저를 죽이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감히
그 은덕을 감추고 끝내 왕께 보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항상 간뇌를 땅에 흩뿌리고, 목의 피로 적을 적실 날을 기다렸습니다.
신은 그날 밤 갓끈을 뜯긴 자이옵니다.”
이 고사는 한나라 때 유향이 여러 문서들을 찾아 정리한 것이다.
약 2600년 전의 이 고사를 증명할 길은 없지만 이 고사는 장왕의 개성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장왕은 흔히 말하는 통 큰 지도자의 원형이었다.
필의 싸움에서 선봉은 바로 장왕의 친위병인데 친위병들 속에는 갓끈을
끊겼다가 용서받은 고사의 장수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든 것이다.
강하면서도 포학하지 않은 사람[堅彊而不暴]’이 있을까?
공자가 가난하면서도 비굴하지 않은 것보다는 부유하면서도
예를 아는 것이 어렵다고 했듯이, 사람의 본성이란 약하면서
유순하기는 쉬워도 강하면서 포학하지 않기는 어렵다.
그래서 순자는 그런 이를 군자라고 불렀다.
춘추전국시대의 세 번째 주인공은 바로 이런 사람이였다.
육단견양(肉袒牽羊)은 기회가되면 또 올리겠다
조수미 - 내마음은 호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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