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낸사람: 演好마을 운영자 13.04.09 18:30
기생 매창(梅窓) 이야기
매창(梅窓, 1573~1610)은
조선 중기 전북 부안의 기생이었다.
시를 잘 짓는다
하여 시기(詩妓)라고 불렸다.
매창이 그의 정인(情人)
촌은(村隱) 유희경(劉希慶, 1545~1636)과 주고받은 연시(戀詩)는
오늘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1532년 부안에 내려왔다가
매창을 처음 만난 유희경. 유희경은 그러나 2년 뒤 다시 한양으로
올라가면서 매창과 이별하게 되었다.
그 때 매창의 나이는
방년 21세. 유희경은 매창의 가슴에 깊은 정을 남겼다.
그 정은 매창의 시심으로 피어났다.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秋風落葉)에저도 나를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부안읍내 성황산 서림공원 입구에 있는 매창의 '이화우' 시비
흔히 ‘이화우’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이 시는 매창의 여러 시
가운데 유일한 한글시조다.
매창은
봄날 흩날리는 배꽃을 보고 이를 ‘이화우(梨花雨)’
라고 표현했다.
하늘이 준 재주가 아니고서야
나올 수 없는 표현이 아닐까. 아마 비슷한 시기에 씌어진 듯한
한시 한 편이 더 있다.
東風一夜雨(동풍일야우) 하룻밤 봄바람에 비가 오더니
柳與梅爭春(유여매쟁춘) 버들과 매화가 봄을 다투네
對此最難堪(대차최난감) 이 좋은 시절에 차마 못할 건
樽前惜別人(준전석별인) 잔 잡고 정든 님과 이별하는 일
매창이
이러할 진대 그립기는 유희경도 마찬가지였다.
몸은
한양에 머물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늘 매창이 살고 있는
부안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娘家在浪州(낭가재낭주)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我家住京口(아가주경구) 나의 집은 서울에 있어
相思不相見(상사불상견) 그리움 사무쳐도 서로 못 보니
腸斷梧桐雨(장단오동우) 오동잎에 비 뿌릴 제 애가 탄다오
유희경의 '매창을 생각하며' 시비
매창이
‘이화우(梨花雨)’라니 유희경은
‘오동우(梧桐雨)’란다.
두 사람이
이별할 때 계절은 봄이었는데, 그 새 계절은 여름을
지나 가을로 바뀌었다.
두 사람은
두 계절 동안을 보지 못하고 지낸 셈이다.
그럭저럭
세월은 다시 수 년이 흘렀다.
유희경은 유희경대로,
매창은 매창대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게 되었다.
이런 경우
씻기 어려운 정한(情恨)을 안게 되는 쪽은
대개 여성이다.
특히 당시 매창은
‘노류장화(路柳墻花)’랄 수 있는 기생 신분이었다.
마음에
이어 몸마저 상한 매창이 남긴 단장시 한 편을
소개하면,
相思都在不言裡(상사도재불언리) 말은 못했어도 너무나 그리워
一夜心懷鬢半絲(일야심회빈반사) 하룻밤 맘고생에 귀밑머리 희었어요
欲知是妾相思苦(욕지시첩상사고) 소첩의 맘고생 알고 싶으시다면
須試金環減舊圍(수시금환감구위) 헐거워진 이 금가락지 좀 보시구려
한양(서울)과 부안.
서해안고속도로 개통으로 이젠 두어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이 거리를 놓고
마치 서로가 지구 반대편에라도 있는 듯하다.
핸폰과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
두 사람의 사랑얘기는 마치 수 천년 전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얘기로 들린다.
문명의 발달로
편리는 해졌지만, 깊은 정(情), 가슴에 품은 한(恨)은
이제 그 어디서 만날 꺼나....
최 유나-바람이 전하는 말
演好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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