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說野談函

전설의 싸움꾼 "시라소니

bsk5865 2013. 5. 20. 15:14

보낸사람 : 노을05 운영자 13.05.20 11:55

 

전설의 싸움꾼 "시라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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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싸움꾼 "시라소니" - 아래 영상은 드라마 '야인시대' 에서 캡쳐 -


  '시라소니'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진 李聖淳은 우리나라 주먹 1위로 공인받고 있다. 아니, 동양 제일의 주먹으로 치는 사람도 많다. 2위부터 5위까지야 사람들에 따라서 순위가 달라지겠지만 아마 주먹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주저없이 시라소니를 첫 손에 꼽을 것이다. 신의주가 고향인 이 불세출의 주먹은 한 마디로 싸움을 위해 태어났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많은 신화를 이뤄낸 사나이다.
  그의 주먹경력은 크게 세단계로 나뉠 수 있는데 13세가 되던 해 싸움에 본격적으로 눈을 뜨기 시작한 시점부터 약관 20세에 이북 최고의 주먹 박두성을 평양으로 날아 가 일거에 때려 눕힌 후 이북 최고의 주먹으로 인정받기까지가 그의 싸움경력 중 초기라 할 수 있겠다. 이 당시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13세 이후부터 20살이 되기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두세번 정도 신의주와 인근지역을 돌아다니며 싸움을 거르지 않았다고 한다.
  싸움경력이 싸움꾼의 요소 중 가장 첫손에 꼽히는걸로 봐서 그 당시 그는 이때가 수련기였다고 볼 수 있겠다. 그 후 중국으로 날아 가 대륙을 평정하던 시절을 중기로 볼 수 있는데, 20살부터 시작 해 30살 무렵까지 말 그대로 날고 긴다는 일급주먹들만 때려 잡아 그의 성과를 높였다.
  이 당시 중국에는 이북에서 손 꼽히는 주먹들도 대거 진출했는데 시라소니 만큼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 했다. 대개 한곳에 정착 해 그 지역으로 들어오는 주먹들만 상대하며 세월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시라소니는 대륙 전역을 떠 돌며 이름있는 주먹들을 직접 찾아 가 때려 눕혔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하겠다. 이 시기야말로 시라소니를 이야기 할 때 그의 주먹인생 중 최고 전성기라 말 할 수 있겠다. 중기를 거쳐 고꾸라 형무소에 복역 중 일본의 주먹들도 차례로 제압 한 후 그는 월남을 하는데 당시 서울에는 다들 알다시피 이정재, 이화룡, 김두한등 소문난 주먹들이 존재했었다.
  그러나 대륙에서의 무용담에 말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허풍까지 씌워 져 시라소니는 월남하자마자 신화적인 존재로 주먹들 사이에서 오르내린다. 그에 걸맞게 그는 월남하자마자 맨발대장과 마사이찌 고영묵을 때려눕히며 화끈한 신고식을 펼친다.
  결국 너무나 유명한 동대문의 린치사건으로 인해 (아래 동영상 참조) 불구 직전까지 가지 만 그 후 장면박사의 요짐보(경호원)로 활동하다 주먹계에서 영원히 손을 씻었다.
  시라소니에 대한 평가는 주먹계에서 더욱 높이 쳐 주었는데 유지광은 그의 저서에서 역대최고의 싸움꾼으로 그를 거론했으며 만화가 방학기씨는 그의 책에서 싸움을 예술로 승화시킨 사나이라고 평가했었다. 주먹꾼은 아니지만 주먹역사에서 빼 놓을수 없는 연예계의 대통령 임화수는 그의 열렬한 팬이었다. 극장 조라치 시절 지나가다 우연히 그의 신기에 가까운 싸움실력을 본 그는 이후 출근도 하지 않은 채 매일 시라소니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고 하고 동대문파의 원로격인 김사범은 그를 가리 켜 조선의 주먹을 뛰어넘어 동양 최고의 주먹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