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戰爭函

停戰60周年 끝나지않은 戰爭 (戰場의追憶)

bsk5865 2013. 7. 26. 14:54

보낸사람 : 演好마을 운영자 13.07.26 11:47

 

停戰60周年 끝나지않은 戰爭(戰場의追憶)|자유게시판
호랑이박 | http://cafe.daum.net/enka6300/D7cf/29526 

 

停戰60周年 끝나지않은 戰爭 (戰場의追憶)

 

52년부터는 사실 휴전을앞두고 한치의땅이라도 더많이 차지하기 위해서, 서로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높은고지(高地) 차지해야만 적의 후방을 감제(瞰制)할수 있기에상호 고지쟁탈전(高地爭奪戰))이    더욱 격화(激化)되면서 처절(悽絶)한 전투가 이어젓다. 어느날 저녁 해질무렵 적진 언덕에 포신이긴   T34 Tank 여러대가 나타나더니    탱크포로 우리측 공용화기진지(共用火器陳地)에 무차별 포격을 가해   오지안느가!.

 

주저항선에서 적의 탱크를 본것은 처음이였다. 주간엔 아군이 "제공권" (制公權)을    장악(掌握)하고있어 적은 탱크나 대포등의 이동이 제약을 받으나, 밤이되면 우리 항공관측에서 자유로워지니 적들은 언제나 야간에만 공격을 해왓고, 앞서도 언급 하였드시, 적이 한번 포를 쏘기시작하면 마치 포탄을 퍼붓는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중공군들의 공격이 개시된 다는 징조인 것이다.

 

우리 중대와 소대, 소대와 분대간의 유선망은 모두다 끊겨져 버려 명령 전달체계가   완전이 마비 되고   만다. 나는 소대장 (이문교 소위)의 작전명령을 각분대에 전달기  위해 소대본부를 나서는순간 포탄이   교통호안에 떨어져 흙속에 묻혀서 잠시 정신을 잃었었다. 이내 정신이 돌아와 몸을 움직여보니 다행히 아무런 부상이 없었다.

 

명령을 모두전달하고 소대장에게 복명(復命)했다. 이때 나의 몰골이야말로 마치 물에 빠진 생쥐같이    전신이 땀에 흠뻑젖어 있었다. 그무렵 우리 중대부관 (부중대장)     ()중위와 사병1명도 적의 고포탄 (高砲彈)이 벙커 바로입구에 떨어저 애석(哀惜하게도 전사하였지.

 

O 그날 우리중대 전방에 있던 연대 전술요충지(戰術要衝地) 전초대대 (前哨大隊) 250고지가 함락되면서, 탈출해 나오는 장병들 속에서 어느병사의 울부짖음, ‘소대장님 실탄! ‘소대장님 실탄! 전투중 실탄을 모두소모한 병사가 처절(悽絶)하게 울부짖던  목소리가 지금도 내귓가를 맴돈다.

 

적은 우리 전초고지를 탈취한 여세를 몰아, 꽹가리와 북 피리를 불어대며 인해전술  (人海戰術), 우리  중대와 좌측중대 전면 능선으로 돌진해 올라왓다! 그때 미군이   할수 있는것은 항공기로, 전투중인 상공에 조명탄(照明彈)을 떨어뜨려 주는데, 조명탄이 공중에 달려있는 동안엔 대낮같이 밝아 큰 도움이 되었다.

 

주저항선을 지키던 우리들 처음에는 교통호 안에서 사격을 했지만 그 울부짖는 전우(戰友)의 외침에    흥분했다. 교통호안에서 능선을 오르는적을 사격하는것은 답답해 나는 M2칼빈총을 들고 그대로 교통호위에 뛰어올라 사격을 계속하니 카빈총 윗덮개가 타며 연기가 나지안는가! 교통호에 다시내려와 급한  김에 소변으로 불을끄고 다시쏘고 쏴댓다. 적은 결국 아군의 필사적인 방어전에 걸려 퇴각하고 전투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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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250고지에 파견되었던 우리포병 관측장교(觀測將校)가 적에 포로(捕虜) 됨으로서, 우리측 후방    포병부대의 위치가 그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고하며.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적은 그들의 장거리포로  우리 포병진지를 집중공격하여 많은 피해를    당햇다고한다. 그 전투에서 그리도 처절하게 울부짖던      그 병사분 지금쯤 어드메서 어이 지내고들 계실지!

 

60년이된 지금도 그옛날 소대장이셧던 이문교(李文敎)소위님과 동료 이용구. 김종기.  라도준. 이름은 다  잊었지만 소대선임하사 향도 분대장 그리고 인사계를 비롯한 행정요원들 왜 이다지도 그립고 보고싶은지! 죽기전에 한번쯤 만나날 기회가 있으려는지! 눈에 아롱거리며, 모든분들 건강하게 장수하시길 빌어 마지않는다.

 

537월달에 들어서면서 불원간 휴전이된다는 소문이 들렸으나 말단졸병 신분 으로  정확 정보는 알수  없었고 당일인 그날 오후에서야 상부로부터 10 정각 휴전이 되니 그때까지 전방에있는 적진을  향해 개인 기본휴대량 전투실탄만 남기고 모두    쏴버리라고 명령이 내렸다.

 

나는 그때 칼빈 소총을 가지고 있었는데 연발로 놓고 갈겨댔다. 가지고 있던 수류탄도 모두 날렸어!    그리고도 직성(直星)이 풀리지 않아 않아 옆에 있는 LMG 화기진지에 가서 기관총을 한참 쏘다 보니    총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러면 뜨거운 총열을   잡을수있는 특수장갑인 "방열장갑"(防熱掌匣)을끼고 총열을 바꿔가며 계속 쏘고 또   쐈다.

 

전방의 중공군도 역시 우리측으로 많은 총포탄을 날려왔다. 쌍방의 총포탄이 교차하는 장면은 참으로 장관(壯觀) 였고, 또한 피아간 쏘아대는 총소리며 포탄의 작렬(炸裂) 하는 소리는 천지를  진동 시켰지!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인접 부대에서   어느 병사가 10 바로 10분전쯤 대변을 보기위해 초소밖으로 나갔다가 적포탄에 희생되었다고 들었는데 참으로 안타깝고 운이없는 병사였어..

 

10 정각이되자 방간 총성은 멎었으며 정막감(寂莫感)이랴! 여하간 그날밤은 처음으로 신발과 것옷도 벗고 편히 잠을 잘수있었다. 아침이 되었는데 여느때같으면 고지몇백m 아래에있는 취사장   까지 밥을가지러가려면 그무더위에 방탄(防彈) 조끼며 철모를쓰고 가야했지만 그날아침에는 작업복차림으로 철모도 쓰지 않으니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더군!.

 

그날의 날씨는 참으로 쾌청(快淸)하였어. 당시 적과 아군간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기에 상대방의 무기며 복장 까지도 식별할 있는 거리였으니까. 매일같이 땅굴 속에서   먹어야만 했던 밥도 그날은 참호위에 판초우의를 깔고 분대원 전원이 둘러앉아 한가로히 먹을 수가 있었다.

 

어제 저녁 10 이전엔 감히 상상도 없는 노출 (露出)행동이지! 그리고 bunker  위에서 런링 차림으로 서서 어제의 적인 그들에게 그들은 우리에게 아무 일도 없었던것 같이 손을 흔들며 그저 야~ ~~~! 하고 소리 지르던 그때의 심경(心境)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이제 전쟁은 정말 끝난 것인가? 그렇다면 “실지회복과 북진통일” (失地回復과 北進統一) 의 꿈은 어디에! 어리둥절 하면서도 북에 가족을 두고온 나로서는 이제 고향은    다 갓구나! 하는 절망감(絶望感) 무엇이라고 표현 하랴! 다만 죽지않고 살아 남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만감(萬感)이 교차하는 심경이였지! 그때 나의상사(上司)그 전우   (戰友)들 이제 모두 늙은이가되어 어디서 어떻게들 살고 있으려는지!?  전우들 과의   아련한 추억! 그들이 보고싶으며 눈에 아롱거린다.

 

 

& 끝으로 정전 60주년을 맞이하여 참전(參戰)하였던 한사람으로서 한탄 (恨歎)과 아쉬움이라면, 당시 휴전협정은 우리의 국력이 미약하여 전쟁 당사국인 한국의 의도가 않인, 강대국들의 이해(利害)와 정략(政略)에 의해 이루어 졌다는 점과,

 

특히 아군의 기동전(機動戰)에 유리한 개활지(開豁地) 서부전선의 진격로 (進擊路) 인, 바로 판문점을   방패막(防牌幕)으로 이용하려는 그들의 전략적 ((戰略的)인 계략(計略))에 말려들어 1951.10.25일, 휴전회담장이 설정되어, 서부 지역 진격이 차단(遮斷) 됨으로서, 오늘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은 우리  민족의 비극(悲劇)을 상징 (象徵)하고 있지않는가?

 

또한 “개성공단”이 남북간의 첨예(尖銳)한 정치협상장이 되고있는 현실은 너무나 안타가우며, 동해안  통일전망대에서 보면 손에잡힐듯 바라다보이는 금강산!  그 명산    (名山)이 어이하여 김일성 왕조(王祖)의 외화(外貨)벌이 수단의 장(場)으로 만들어 주게 되었는지?! 하는 어리석은 생각마저 해보면서 전쟁 기간중 별로 내세울 공훈(功勳)도 없는 나의 “전장의 추억”(戰場의追憶), 이글이 6.25 전쟁에 대해 잘 모르는 젊은 세대들에게 전쟁의 비극(悲劇)과 참상(慘狀)을 일깨우고, 우리 국민들의 안보의식 (安保意識)이 고양(高揚)되기를 바란다.

 

나는 2002년도 처음 미국방문(觀光)시 워신턴에 있는 한국전 참전공원 전시물 비석  (碑石)에 “자유는    결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Freedom is not free)라고 새겨저있는 글을보았으며, 노 장군이신   백선엽장군께서도 “한치의땅도 거저 얻어진것은 없다”라고 말씀하신바와 같이 지금의 대한민국 영토를지켜낸 한국전참전 유공자들의 노고를 다시금 일깨우기위한 강한 Message 를 남기고 싶은 바램을      갖이며 이글을 맺는다.          필자의 한국전참전 수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