歌の背景函

隅田川慕情-島津亜矢///伊勢商人が築き上げた325年の伝統「ちくま味噌

bsk5865 2013. 9. 10. 08:55

보낸사람 : 소담 엔카 운영자 13.09.10 06:26

 

隅田川慕情-島津亜矢///伊勢商人が築き上げた325年の伝統「ちくま味噌」(D)|★....演歌 게시판

黃圭源 |  http://cafe.daum.net/enkamom/KTiH/4033 


隅田川慕情-島津亜矢


隅田川慕情-島津亜矢

作詞 ばやしみえこ 作曲 ばやし和彦  編曲 池多孝春


遠いみちのり 夫婦の旅は
夢を求めて 越えていく
泣いて一生 笑って一生
ひとつに結ぶ 波と波
ふたりで渡る 隅田川


お前ひとりを 泣かせはしない
二人でひとつの この道は
出逢った時の 運命だよ
波にゆられて ゆらゆらと
ふたりで渡る 隅田川


岸につければ 苦労も忘れ
やっと来たんだ 倖せが
心と心 抱きしめて
愛を包んだ 屋形船
ふたりで渡る 隅田川


伊勢商人が築き上げた325年の伝統「ちくま味噌」

325年의 伝統을 가진 된장 製造 • 都賣業 老鋪인 株式会社‘ちくま味噌’를 紹介합니다. 이 会社는 東京地下鉄 半蔵門線(はんぞうもんせん)을 타고 都心에서 約 10分,隅田川를 가로지르는 永代橋(えいたいばし)의 바로 近處에 있습니다.


味噌は天与の食物、味噌業もまた天職

ちくま味噌社는 17世紀 中半에 伊勢国乳熊郷(いせいくにちくまごう: 現在의 三重県松阪市의 一部)에서 江戸로 進出한 伊勢商人이 만든 가게였습니다. 過去 伊勢国(いせいくに)라 불렸던 三重県 은 実業界에서 成功한 사람을 많이 輩出해 ‘伊勢商人’의 発祥地로서 有名 합니다.

伊勢国에서 産業資本을 蓄積해 온 竹口(たけぐち)家門은 江戸에 資本을 投資하는 첫 발판으로 日本橋(現・中央区内)에서 漆器가게를 運營했는데 뒤이어 1688年에 竹口作兵衛松方(たけぐちさくべえよししも)氏가 隅田川 江邊의 永代橋 近方에서 雑穀商을 基盤으로 된장을 製造하기 始作한 것이 된장 事業의 始初가 되었습니다. 이 된장가게는 故鄕의 地名을 따서 商品名을 ‘ちくま味噌’로,商号를 ‘乳熊屋’라고 定했습니다. 그 後 伊勢商人의 가장 큰 長点인 合理的인 思考를 通해 米穀商을 基盤으로 한 된장 醸造業뿐만 아니라 伊勢国에서 해왔던 海運業,換錢商 等의 事業도 江戸로 가져와 事業을 多角化했습니다. 이들 大部分은 江戸時代 末부터 明治時代 初의‘明治維新’이라 불리는 政治的 政治的 動乱과 그 後의 大地震, 第二次世界大戦으로 因한 被害 等으로 因해 中斷되었지만 生活과 密接한 된장 事業만은 살아남았습니다.

現在 ちくま味噌社는 江戸時代부터 伝해 내려오는 商品을 비롯해 多樣한 된장을 製造•販売하고 있습니다.‘味噌は潤いと活力をもたらす天与の食物である(된장은 마음의 윤 택함과 활력을 가져오는 하늘이 준 식품이다). この仕事に携わることもまた天職である(이 일에 종사하는 것 또한 하늘이 내린 일이 다.)’라는 経営方針을 創業 以來 固守하고 습니다. 現在의 経営者인 竹口作兵衛(たけぐちさくべえ)氏는 17代째입니다.


歴史に刻まれる数々のエピソード

創業325年이 된 老舗에 걸맞게 ちくま味噌社에는 歴史에 새겨질 듯한 逸話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例를 들면 永代橋 바로 隣近에〈赤穂義士休息の地〉라는 碑石이 있습니다. 그 碑文의 內用은 다음과 같습니다. 乳熊屋의 初代 作兵衛는 風流를 즐겨 俳句를 가까이했는데 赤穂義士 47名 中 한 名이자 詩人으로도 有名했던 大高源吾(おおたかげんご) 는 俳句의 벗이었다. 1703年 1月 末 主君의 復讐에 成功한 赤穂義士들이 돌아가는 途中에 永代橋의 近處까지 왔을 때 作兵衛가 一行을 가게로 불러들여 술과 食事를 待接하며 그들의 成功을 축했다. 이것은 運 좋게 그날 增築하고 있던 社屋의 上樑式의 날과 偶然히 一致했던 德分에 實現된 일이었는데 大高源吾는 그 일을 가게 마룻대에 記錄했고 또 가게의 看板을 써서 남겼다. 이것이 크게 所聞이 나서 乳熊屋는 江戸名所 中 한 곳이 되었다.

그 밖에 오늘날 ちくま味噌가 繁昌하는 데 주춧돌이 되었던 선조의 興味로운 逸話를 列擧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作成者 黃圭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