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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東馥(이동복) 선생이 연재하고 있는 李承晩(이승만)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日記(일기)를 읽다가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했다.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전선에서 韓民族(한만족)의 운명을 건 처절한 육탄전을 전개하고 있을 때, 부산으로 피란 온 국회는 긴급한 사안도 아닌데, 국방장관과 내무장관 해임 건의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李 대통령이 한탄을 담아 임진왜란 때 宣祖(선조)가 남긴 시조를 붓글씨로 쓰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나는 링컨이 1950년대에 한국 대통령이었더라도 李 대통령보다 잘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에피소드가 하나의 傍證(방증)이 될 수 있겠다. 李 대통령은 戰時(전시)임에도 국회 문을 닫지 않았고 언론검열을 하지 않았으며 역사상 최대규모의 선거를 했다. 한국인들에게 민주주의의 장점뿐 아니라 단점까지 가르쳐주려고 했던 것 같다.
*1950년 9월6일 프란체스카 日記 중 일부
오후 2시 국무회의가 열렸다. 대통령은 장택상, 황성수, 임영신 등 세 의원을 유엔 대표로 임명했다. 외무장관이 그들과 함께 갈 예정이다. 국회에서 내무장관과 국방장관 해임건의안이 가결되었다. 내무장관은 국회의원을 구속했기 때문이고 국방장관은 김석원 사단장 해임이 이유라고 했다. 우리는 마음이 언짢았다. 적이 코앞에 와있는데도 험만 잡으려드니 말이다. 이러한 정치상황이 다급해진 전황과 맞물려 대통령을 몹시 괴롭혔다.
이날 밤 대통령이 붓과 벼루를 가져오라고 했다. 대통령은 천천히, 그리고 오래도록 먹을 갈았다. 나는 하얀 화선지 앞에 단정하게 앉아서 붓을 든 대통령의 모습이 무척 좋았다. 동양에서만 볼 수 있는 한 폭의 그림만 같았다. 대통령은 붓에 먹물을 듬뿍 찍어서 자신의 깊은 상념들을 화선지 위에 옮겼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선조대왕(宣祖大王)이 왜병에 쫓겨서 신의주(新義州)에 피신했을 때 읊은 시구(詩句)였다.
통곡관산월(痛哭關山月) 상심압수풍(傷心鴨水風)
군신금일후(君臣今日後) 인후각서동(忍後各西東)
[변방에 뜬 달 보고 통곡하니/압록강 바람은 가슴을 에이네/임금과 신하가 치욕을 당했건만/차마 오늘 이후에도 동서 당파 싸움을 계속할 것인가]
대통령은 쓰기를 마친 뒤 영어로 나에게 번역해 주었다. 나는 대통령의 이 글씨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가 뒤에 목각(木刻)으로 새겨서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대통령은 신익희(申翼熙) 국회의장에게 밖에선 공산군이 쳐들어오고 안에서는 국회가 공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 주된 원인의 하나는 신 의장이 국무총리 자리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신 의장이 대통령에게 자신을 국무총리로 임명해 달라고 다시 요구했다. 대통령은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거절했다. 대통령은 총리 자리는 가급적이면 북한출신 인사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조만식 씨가 아직 생존해 있는지 의심스럽지만, 살아만 있다면, 국무총리 자리는 그 분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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