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共和6期函

[스크랩] KIST 硏友會 박정희 기념관 건립 추진(2015)

bsk5865 2015. 7. 21. 09:05


KIST 硏友會 박정희 기념관 건립 추진(2015)





 


▶초대 소장이었던 고(故) 최형섭 전 과학기술처 장관은 전국


30여 곳을 둘러본 뒤 대통령에게 서울 홍릉 임업시험장을 연구소


부지 1순위로 보고했다. 농림부는 펄쩍 뛰었다.



박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농림부 장관을 데리고 홍릉으로 가


"임업시험장도 중요하지만 과학기술연구소는 더 중요하다.


38만평을 모두 연구소에 내줘라"고 했다.


KIST에 첫 예산 10억원을 배정할 때도 경제기획원이 예산을


깎으려 하자 "원하는 만큼 다 주라"며 KIST 손을 들어줬다







한국을 세계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만든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이다


그런데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아래 시진처럼 수백억원을 들여 자기들 세웠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기념관이 없어서


박정희대통령이 세운 KIST출신 과학자 들이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을 세우기 위해


23일 건립 사업단을 발족한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데


야당의원이 박정희 영웅시한다고 힐난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며 ..국민이 이런국회의원 성토해야겠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임명을 받은


초대 김병희 이사장지금 97세인데도


매일 매년365일 인트넷 원고를 보내고


365일 1년 원고를 제본하여 매년초에 발송하고 있다



금년 초에는 96옹 논설집을 보내왔고


2015년 초에는 97옹 논설집이 오리라 기대하며


국민이 본을 보도록 권합니다



아래 대통령기념관들 사진과


박정희 대통령과 KIST 관계를 첨부 합니다









박정희 와 KIST




 





 

▶KIST 설립 후 박 대통령은 한달에 한 두번씩 꼭 연구소를 찾았다.

연구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연구동 신축 현장 인부들에게 금일봉을 돌렸다.


해외에서 뽑아온 박사들에겐 집과 대통령 자신의 몇배 봉급을 제공하고

당시 국내엔 없던 의료보험까지 미국 회사와 계약해 들게 해줬다.

각계에서 반발과 진정이 쏟아졌지만 박 대통령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과학계엔 "조선시대 장영실 뒤에 세종이 있었고

KIST 뒤엔 박정희가 있다" 말이 퍼졌다.

KIST 퇴직 동문 모임 '연우회'가 오는 23일 박 대통령 기념관 건립 사업단을 발족한다.

KIST 안에 부지 2100㎡를 확보해 330㎡ 규모 기념관과 해외 석학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를 짓는다.

건립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100억원 모금 운동도 벌일 것이라고 한다.

▶"과학기술 발전은 국가 지도자의 관심을 먹고 자란다".

개발도상국의 과학기술 발전사를 연구한 미국 스티븐 데디에 박사의 말이다.


박정희라는 지도자의 관심을 먹고 자란

KIST는 40여년 동안 생명공학연구소·전자통신연구원 등 20개 가까운 전문연구소를 분가 독립시켰고

4000여명의 석·박사급 과학 인재를 키워냈다.

박원훈 연우회장은 "기념관이 완공되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정확히 인식한 지도자가

국가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산 교육 현장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 말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박정희 와 KIST

1965년 한국이 베트남전 파병을 결정하자 미국은 감사의 표시로

1000만달러를 원조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밀가루 한 포대가 아쉽던 때였다.

정부 내엔 "부족한 식량을 수입하는 데 원조자금을 우선 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박정희대통령의 생각은 달랐다.

미국의 1000만달러와 우리 정부 출연금 1000만달러를 합쳐

대한민국 공업 발전에 기여할 종합연구소를 세우자는 거였다.

그렇게 해서 이듬해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탄생했다.

대통령기념관
#대통령기념관-有口無言


▲ 거제 김영삼 전 대통령 기록 전시관


▲ 광주 김대중 전 대통령 컨벤션 센타


▲ 동교동 김대중 전 대통령 도서관


노무현 전 대통령 기념관은 현재 추진중
▲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봉화산 봉수대 아래 봉하마을 소재)


▲ 대한민국 초대 이승만 건국대통령 기념관

(이화장 : 이승만 대통령이 거처하던 집)

▲ 이승만 건국 대통령의 초라한 서제와 낡은 타자기

 


▲ 상암동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 예정지

"나는 [朴正熙]란 이름 석자로 족하다"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은 號도, 명예 博士도 거부했던
그는 권력을 빙자한 군림(君臨)을 증오한 이였다.
朴正熙 정부의 청와대 대변인과 문공부 장관을 지낸 金聖鎭씨에
따르면故 朴 전(前) 大統領은 號가 없었다고 한다.
고령 朴씨 문중에서 호를 지어 올린 적이 있는데,
이 보고를 받은 朴大統領은 "朴正熙란 이름 석자로 충분하다"고
당시 대변인에게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朴 大統領은 號를 쓴 적이 없다.
한 보좌관이 모 외국 대학에서 명예 博士 학위를 주기로 했다는
보고를 하니 朴大統領은 " 博士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거절했다고 한다.
朴 大統領은 18년간 재임했으나, 그 흔한 명예 博士 학위가
하나도 없다.朴 大統領은 私信을 쓸 때는 절대로
'大統領 朴正熙' 라고 하지 않았다.
'朴正熙 拜'라고만 했다. 朴 大統領은
자신의 생일에 대해서도 무심했다.
그의 생일은 호적에 잘못 적힌 대로 알려져 한동안 생일이
아닌 날에 장관들이 축하 인사를 하기도 했다.
그는 한동안 이를 굳이 고치려 하지 않았다.
號, 명예 博士, 생일, 직함 등에 신경을 별로 쓰지 않았던
朴大統領은권위적인 것들을 싫어했다.
그렇지만 그가 지도한 체제는 권위주의 체제로 불린다.
그는 특히 권력을 빙자한 군림을 증오했다.
그는 허례 허식도 싫어했다.
항상 淸貧한 마음자세를 죽을 때까지 유지한 분이었다.
그가 죽을 때 '허름한 시계를 차고, 벗겨진 넥타이 핀을 꽂고,
해진 혁대를두르고 있었던 것'
그래서 屍身을 검안한 군의관이 "꿈에도 각하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인간 朴正熙의 자연스런 眞面目이었다.
號도, 명예 博士도 거부했던 그는 권력을 빙자한 군림(君臨)을
증오한 이였다. [ 趙甲濟 ]



출처 : -氣山 心海 -
글쓴이 : 德 林 [큰 숲]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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