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明博 정부시절 국무총리를 지낸 정운찬(鄭雲燦) 서울대 명예교수가 주한미군의 사드(THAAD)배치에 대해 “누구를 보호하고 무엇을 방어하겠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박근혜 정부는 이번 결정으로 나라를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만들었다”며 정부와 국방부를 함께 비난했다.
鄭 교수는 25일 ‘중아일보’ 기고문(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결정해야 한다)에서 “군사전문가들의 견해와 국방부 장관의 발언을 들어봐도 사드가 한국에 꼭 배치돼야 할 이유는 알 수 없다...(중략) 왜 박근혜 정부는 허겁지겁 사드 배치를 결정했는가. 국방부는 북한이 노동 미사일의 사거리를 줄여 수도권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라며 이 같이 말했다.
“사드 배치는 평화 공존의 길을 막아 버릴 것(?)”
鄭 교수는 칼럼에서 주한미군이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게 된 결정적 원인 제공자인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문제에 대해서는 일체 비판하지 않으면서 “경제 협력의 틀 안에서 남한이 가진 유무형의 자본과 북한이 가진 인적-물적 자원을 생산적으로 결합한다면 남북이 동반성장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서 국가의 死活이 걸린 안보사안을 경제사안으로 파악했다.
그는 이어 “사드 배치는 평화 공존의 길을 막아 버릴 것”이라며 아래와 같이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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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중앙일보> 캡쳐 |
《중국이 다양한 방식으로 경제제재를 가해 오면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맞닥뜨릴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한·미·일과 북·중·러가 대립하는 동북아시아 신냉전이 우리 경제의 앞길을 원천 봉쇄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북방의 문을 걸어 잠그면 제2의 경제 도약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전략적 사고의 부재(不在)를 지적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국내에서 左派세력이 주장하는 전형적인 ‘중국의 대한(對韓) 경제제재론’에 근거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출처가 국내 언론이고, 이를 중국 언론이 퍼 나르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의 한국 경제제재는 사실상 불가능
한국과 중국은 제조업의 생산과 관련해서는 분업 체제를 갖추고 있어, 중국이 한국에 대해 경제 제재를 가할 경우 큰 피해를 보게 되는 쪽은 중국이지 한국이 아니다. 중국의 한국에 대한 ‘대규모 경제 보복 조치’는 사실상 실행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흥미로운(?) 점은 鄭 교수의 칼럼을 실은 ‘중앙일보’가 같은 날 <사드 문제로 중국이 경제보복을 못하는 3가지 이유>라는 제목(필자: 유주열)의 기사를 게재했다는 점이다.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한중간에는 과거에 없었던 한중 FTA(자유무역협정)가 체결되어 두 나라가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어 있다. FTA 발효 이후 한국의 對中 직접투자가 급증하여 작년에 이어 금년(58억불 예상)에도 일본을 제칠 것으로 보고 있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영향으로 세계경제가 어려운 가운데 무역으로 경제를 성장시킨 중국으로서는 남중국해에 대한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PCA) 판결에 따라 미국과 일본 등 서방 국가와 사이가 틀어진 마당에 한국과 같은 무역과 투자에 있어 최선의 파트너를 쉽게 버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본다.
일부 비관세장벽을 우려하는 업체도 있지만 비관세 장벽은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분야도 많다. 중국 경제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여 우리 기업은 ‘차이나 플라스 원’(언젠가 중국에서 물러날 때를 대비 중국 이외의 베트남 라오스 등 투자처를 물색) 정책으로 이미 동남아시아로 공장을 이전하였고 중국에 남아 있는 산업은 중국으로서 불가결한 핵심 산업뿐이다.
특히 한중간에는 서플라이 체인(부품 공급망)이 되어 있어 한국의 설비 중간재 등 부품을 수입하지 않는다면 중국 기업은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기가 어렵다.
韓中경제는 2인3각 경기의 선수들처럼 한 사람이 무너지면 다른 사람도 따라서 무너지게 되어 있는 상호 의존구조이다. 흔히들 농담반 진담반으로 중국은 불의(不義)는 참아도 불이익(不利)은 못 참는다는 말이 있다. 중국도 韓中 양국의 경제 협력이 서로의 이익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쉽게 경제보복으로 판을 깨지 않으리라고 본다.》
‘사드’ 배치, 국회 동의나 국민투표 필요 없는 사안
鄭 교수는 “작금의 우리나라 현실을 보면서 청나라와 일본 사이에서 휘둘리다 결국 조선 땅에 청일전쟁이라는 싸움판을 제공했던 임오군란(壬午軍亂)을 연상하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라며 “스스로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도 못하는 민족이 짊어져야 했던 비참한 역사가 그리 먼 이야기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 부분은 鄭 교수 본인이 언급한 것처럼 ‘지나친 비약’이다. 대한민국과 舊韓末의 조선을 동일시하고 있는 것 자체가 오류이다.
주한미군이 한국에 배치하는 무기체계는 韓美상호방위조약(제4조, 한국 영토에 미국의 육해공군을 배치할 권리를 부여)에 따라 이뤄지는 것으로, 국회의 동의를 받거나 국민투표를 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정 교수가 말하는 것처럼 “대한민국 국민의 주권” 운운할 사항이 아니다.
韓美상호방위조약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 韓美 양국이 합의해 결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국회 동의나 국민투표를 원한다면 韓美 방위조약 제4조를 개정하면 된다.
임오군란이 청일전쟁을 불렀다는 언급은 사실과 맞지 않다. 동학농민운동 진압 과정에서 兩國이 한국에 출병한 것이다. 유명한 학자일지라도 특정사안과 관련된 학습이 부족하면 ‘역사적 비유’를 하면서도 잘못된 교훈을 도출하게 된다. ‘역사적 비유’는 때때로 지나치게 과대평가되거나 과도하게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역사적 비유’를 통해 객관적 교훈을 도출하고 싶다면 학자 자신이 보고 있는 역사가 올바른 사관(史觀)인지부터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자극적 변설(辯舌)과 문장으로 대중(大衆)을 기만하는 선동가를 흔히 ‘데마고그(demagogue)’라 한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자체 핵무장과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를 몹시 못마땅해 하며 ‘무방비 상태의 한국’으로 남아 있기를 원하는 듯하다. 이제는 우리 사회의 ‘데마고그’를 박멸(撲滅)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데마고그’를 경계하고 단속하지 않으면 국가가 도탄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김필재(조갑제닷컴) spooner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