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電別保函

[송호근의 퍼스펙티브] 수소탄 태풍 앞 '빈손' 한국은 왜 이리 차분한가

bsk5865 2017. 9. 14. 06:44



  • 6차 핵실험으로 핵 공포 현실화
    미국은 북 도발에 전쟁 준비 나서
    중국·러시아·일본도 대응 채비
    태풍의 눈 한국은 오히려 차분
    북은 사력 다해 수소탄 만드는데
    빈손 한국 정부는 갈팡질팡
    내년 원자력 연구예산 대폭 삭감
    핵무기 원천 기술 없어질 위기

    ━ 누구도 원치 않는 전쟁

    북한은 핵보유국이 됐다. 이제 핵전쟁 위협을 안고 살아야 한다. 딱하게 됐다. 후손들에게 정말 면목이 없다. 정확한 상황 판단이 필요하다. 핵원자로 전문가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군사전략가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과 심층 인터뷰를 했다. 그림은 주 교수가 제공했다. 두 분의 견해를 토대로 진단과 처방을 모색했다.


    계산되지 않는 위험

    한반도에 핵전쟁이 일어날까? 한반도 지축을 뒤흔든 북한 풍계리 6차 핵실험은 강대국의 무력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2017년 9월 3일로 지난 시대의 세력 균형은 무용지물이 됐다. 가공할 공포가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른다. 공포심이 선제타격으로 발현되면 곧 전쟁이다. 100년 전 제1차 세계대전은 ‘누구도 원치 않은 전쟁’이었다. 서로 눈치를 보다가 두려워서 공격했다. 경쾌한 걸음으로 참전했던 유럽인 1000만 명이 죽었다(김정섭, 『낙엽이 지기 전에』).


    한반도 전쟁은 누구도 원치 않는다. 그런데 강대국들은 계산되지 않는 위험 앞에서 극단적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상황과 맞닥뜨렸다. 김정은을 통제할 사람은 본인도 잘 모르는 자신뿐이다. 4대 강국 지도자들은 지난 세기 그 어느 때보다 독선적 성격의 소유자다.

    히로시마 원폭 10배 이상의 수소폭탄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한국 정부의 대응은 느리고 부정확했다. 북한 핵실험 위력은 5차보다 5~6배 이상 강해졌고, 지진관측소에 측정된 지진파가 규모 5.7 정도라고 했다. 일본은 북한 핵실험 3일 뒤 수정치를 발표했다.

    위력은 5차 실험의 13배, 지진 강도는 규모 6.1로 몇십 배 커졌다는 것이다. 원폭이 아니라 수소폭탄이고 TNT 폭약 기준 160kt, 히로시마 원폭의 10배 위력을 가졌다고 최종 확인했다. 중국 지진관측소에서는 규모 6.3 지진파가 잡혔다. 무엇이 옳은가? 북한이 터트린 저 가공할 무기의 실체를 알아야 정확히 대응할 것 아닌가.


    포괄적핵실험금지기구(CTBTO)는 지진파 규모를 6.1로 최종 평가했다. 미국원자력학회 펠로인 주한규 서울대 교수가 지진파 규모 5.7~6.3을 생성해 낸 핵무기의 위력을 추정했다. 지진파 규모 5.7은 TNT 폭약으로 50kt, 6.3은 200kt에 해당한다(그림 1). 한국의 지진관측소는 풍계리 핵실험 장소로부터 15도 각도 내부에 위치해 있기에 전방위적 측정이 어렵다.


    지진관측소가 만주 전역에 분산된 중국이 측정한 수치, 6.3이 더 실체에 가까울 것이라고 했다(그림 2). 원자폭탄(atomic bomb)의 한계치가 20kt이라고 보면 지진파 규모 6.3을 일으킨 그 핵실험은 200kt 위력의 수소폭탄(hydrogen bomb)이라는 게 주 교수의 결론이다.


    북한은 이제 수소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명실공히 핵보유국이 됐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1990년대 초반 이후 한국이 강온전략을 오락가락하는 동안 북한은 꾸준히 이걸 노렸고 급기야 성공했다. 그 수소폭탄이 서울 상공에서 터지면 어떻게 될까.


    피해 범위는 그림과 같다. 반경 2㎞ 내에서는 거의 사망(초록색), 반경 6㎞ 내에선 3도 화상에 신경세포 괴사(노란색)·치명상 60만 명·총 사상자 250만 명에 달한다.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시나리오다. 공포를 부추길 필요는 없지만 정확히 알아야 대책이 나온다.

    전술핵을 다시?
    김정은이 마구잡이로 쏴 올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과 거기에 탑재될 핵탄두가 일으킨 미국의 공포심리는 허리케인급이다. 9·11 사태의 충격은 에피소드다. 미국 본토가 핵미사일 공격에 그대로 노출됐다. 핵탄두로 뉴욕을 공격하는 평양발 포스터도 나왔다.

    미국 군사기지가 밀집한 괌에 시험 발사한다고 했으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격분할 만하다. 미국은 모든 가용한 군사력 자산을 동원하는 실질적 전쟁 준비 단계로 돌입했다. 중국·러시아·일본도 군사력의 일자진(一字陣)을 펴고 있다. 한반도가 태풍의 눈이다.


    그럼에도 몽롱한 나라는 정작 한국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절박한 심정이지만 상대가 북한인지 미국인지 헷갈렸다. 전쟁 발발 여부를 좌우할 한국의 목소리는 사실 모기 소리만 한 게 현실이다. 이상희 전 장관은 북한의 괌 공격 위협을 떠올렸다.


    ‘한·미 상호방위조약 당사자로서 괌 공격은 한국을 공격하는 것과 동일한 도발행위로 간주한다’고 결연히 말했어야 옳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합참의장과 전략본부장을 지낸 군사전문가다. ‘전쟁 불가론’과 ‘한·미 동맹 책임론’ 중 어느 것이 국익에 부합하는가? 어느 쪽이 상황 통제에 효력이 있는가?


    이 전 장관은 북한의 6차 핵실험은 92년 합의한 ‘남북한 비핵화 공동선언’을 최종 폐기 처분한 도발이라고 결론지었다. 공동선언은 ‘①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사용을 하지 아니하며 ②핵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사용한다’고 명시했다. 이에 따라 미군의 전술핵이 한반도에서 철수했다. 그럼 다시 불러와야 하는가? 트럼프 대통령이 전술핵 재배치를 들고 나온 맥락이다.


     보수 야당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맞받았다. ‘핵에는 핵으로!’ 전술핵 재배치는 강대국의 반발과 세계적 비난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 국민은 재무장론과 대화론 사이에서 헷갈린다. 그럼 손 놓고 있어야 할까? 탈핵·탈원전이 우리의 길인가?


    탈원전의 충격

    북한의 핵 위협을 정말 심각하게 고려했다면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그리 성급하게 선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탈원전이 향후 60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된다고는 했지만 원전 기술은 핵무기 원천 기술을 쌓는 영역이다. 주 교수는 한국의 원전 기술이 세계 최고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왜 이 시점에서 손을 놓으라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원전마피아? 다른 분야도 관련 업계 소수집단이 그러하다. 핵무장을 전제하지 않고도 핵 기술 연구는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학자와 연구자들은 오직 ‘공익’을 위해 일했다고 억울해했다. 그런데 왜 원자핵공학자들을 이익집단 내지 안전위해집단으로 매도하는지 따져 물었다.


    핵무기 개발에는 순도 높은 핵물질을 확보하는 게 필수적이다. 사용후 핵연료의 고온 전기분해 과정인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은 핵물질 추출과 관련된 기술이다. 다만 순도 높은 핵물질 추출은 규제가 많아 현재는 고속중성자원자로에서 평화적 이용만이 가능하다.


    그런데 내년 정부 재정에 파이로프로세싱과 고속중성자원자로 연구예산이 대폭 삭감됐다. 미래 대비 원자력 연구도 하지 말라는 얘기인가? 주 교수는 허망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관련 기관의 채용계획도 중단됐다. 전국 원자핵공학도가 갈 곳이 없어졌다. 유학 인력도 외국에 눌러앉는다. 북한은 사력을 다해 수소폭탄 제조에 성공했다. 수소폭탄 개발 충격에도 우리의 정부 방침은 탈원전이다. 사리에 맞는가? 새로운 변수 앞에 재논의가 필요하다.


    레드라인 공방

    냉정히 인정하자. 북한은 이미 핵무장국가다. 핵탄두의 소형화·경량화·다종화가 가능해졌다. 이런 마당에 레드라인 월선(越線) 여부를 따지는 한국 정부의 공방전은 좀 한가롭게 보인다. 대통령은 ‘레드라인을 넘지 않게’ 대비책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국민을 안심시키려는 듯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는 “레드라인을 아직 넘지 않았다”고 했다.


    그 기준이 뭘까? 월선을 기다리는가? 적어도 냉정한 정부라면 레드라인과 상관없이 어떤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 그러나 핵 앞에 궁하다. 딱하게 됐다. 공포로 가득한 국민을 대신해 물어보고 싶다. 군사적 압박? 무력 전개? 글쎄 핵을 쥐고 있는 김정은은 그런 것들을 다 비웃지 않을까. 한국 정부의 몫은 기상천외한 다른 발상에 있을지 모른다. 김정은이 대적하는 상대는 미국이다. 코리아패싱(Korea passing)은 이미 핵무장의 본질이고 한국 정부가 공언한 ‘운전대론’에는 운전할 차가 없다.


    빈손 한국

    청와대 관계자들과 여당 지도부는 대화론(對話論)의 유혹을 벗지 못한다. 대화론은 철 지난 유행가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대화가 이뤄졌다고 치자. 이상희 전 장관은 전략가답게 대화 테이블의 일그러진 상황을 예견했다.


    꾸준히 북한을 설득해 대화 테이블로 유도한들 북한이 할 말은 명백하다는 것. ‘미국에 전해라, 우리를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라’는 메시지. 미국과 일대일 핵군축회담이라면 몰라도, 핵도 없고 정권마다 논조가 바뀌고 레토릭을 남발하는 남한과는 대화 자체가 시간 낭비임을 북한은 알고 있다. 남한 정부의 관계자들은 정무적 판단에만 몰입한다는 사실도 이미 간파했다.


     복잡한 사안은 덮고 위험한 것은 숨기고 정권에 덜 해로운 쪽으로 기우는 단기전술가·임기응변가들이다. 깊고 넓은 안목으로 핵무장에 대처할 냉철한 전략가·이론가들은 길게는 2~3년 일하다가 모조리 퇴장한다. 그 결과가 핵무장 북한 앞에 ‘빈손 한국’이다. 영화 ‘덩케르크’에서 한 영국 시민이 해변에 널브러진 20만 청년을 보며 탄식한다. ‘독일은 군사에, 영국은 민생에 몰입한 결과가 이거다’. 그렇다고 군사로 몰려가야 할까?

    그래도 희망은 있다

    무기의 본질은 ‘전쟁 억제’다. 핵무기를 사용하는 순간 자기도 죽는다. 김정은도 핵무기의 두 얼굴 중 ‘죽음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틈새가 있다. 우리가 할 일을 찾아야 한다. 이상희 전 장관은 “우리에게도 핵무기가 있다”고 실낱같은 희망을 피력했다.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 예를 들면 인민 봉기와 소외된 권력집단의 쿠데타, 불만세력의 김정은 암살 같은 것 말이다. 체제 붕괴를 가장 두려워한다면 한국은 북한의 아픈 점을 들춰내고 확대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비용도 적게 든다. 가성비가 최고다. 이상희 전 장관은 세 가지 전쟁을 열거했다. 대북


    심리전, 정보전, 경제전.

    핵무장이 심화될수록 북한 인민 심리전을 확대해 소규모 봉기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방법은 여럿이다. 정보전과 더불어 실행하면 기대 이상의 효력을 거둘 수 있다. 경제전은 유엔 안보리와 미국이 결의한 세컨더리 보이콧과 궤를 같이한다. 한국이 앞장서는 적극성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당장의 실효를 기대하기 어렵지만 김정은을 좌불안석으로 만드는 핵무기다. 꾸준히 실행하면서 기다려야 한다. 국론 분열은 독약이다.


    공포를 부추기는 담론은 자제해야 하지만 정확한 상황 판단은 필수적이다. ‘북한은 초근목피로 연명해도 핵은 놓지 않는다’는 명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핵무장 북한’과 ‘빈손 한국’이란 극한적 대조가 몰고 올 열패감과 공포심을 이겨 낼 새로운 자신감의 원천은 무엇인가. 한국의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그래도 대화’와 ‘그렇다면 재무장’ 간 격돌의 수렁에 빠져들수록 북한은 핵 종교의 위력을 즐길 것이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서울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