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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문현동 금도굴사건 폭로

bsk5865 2018. 6. 5. 22:26
보낸사람  청송암 김기호 <kkho3838@hanmail.net> 보낸날짜 : 18.06.05 13:00

부산 문현동 금도굴사건 폭로]

[부산 문현동 금도굴

작성자 정영 작성일18-06-04 00:37 조회626회 댓글3건

본문

[부산 문현동 금도굴사건 폭로]

아래 글은 방송 진행자와 증언자의 인터뷰를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O방송일 및 출연자

출처 : 태평TV 유튜브방송

방송일 : 2018.06.01(금)

진행자 : 김일선 교수

증언자 : 정충제


O事件의 發端과 展開

1.사건 개요

누가 :  정충제

언제 :   2002년03월02일

어디서 :  부산 문현동

무엇을 :  지하에 있는 일제시대 일본군 어뢰공장

어떻게 :  수직구(지름 60cm 깊이 12m)를 뚫어 어뢰공장과 지상을 연결하는

작업을 진행

하였다발견했으나 사기꾼으로 몰려 징역 44개월 만기 출소


2.발단-정충제가 듣게 된 소문

박정희대통령의 이발사로 일했던 분이 부산 7부두 문현동에 있는

야산에서 굴을 파고 있다.

지하에 있는 일제시대 일본군의 어뢰공장을 발굴하기 위해 착혈중이라는 것이다.


3.전개

호기심에 정충제씨는 박정희대통령의 이발사였던 박수웅씨를 만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책을 펴내면 엄청난 반향이 있을 것으로 보고 인연을 맺게 되었다.

당시 박수웅씨는 자금부족으로 착혈작업을 중지한 상태여서 안타까움에

주변에 이야기해 보았으나 대부분 황당하게 여겨 직접 자금을 투자하게 된다.

이후 경기도 안양의 굴착전문기업인 나노테크이엔지와 사단법인

일제피해자보상연합회의 계약을 주선하여 작업을 진행한 결과

지하의 어뢰공장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었다


.(방송을 보면 당시 나노테크이엔지에서 제출한 3D탐사결과도면에

어뢰공장의 형태와 대규모의 금속물질이 표시되어 있음)

발견 후 노무현정부의 사법부는 어이없게도 어뢰공장발견을 부정하면서

정충제씨를 구속시키고 도굴단은 어뢰공장에 은닉되어 있던 금괴를 탈취한다.

그 과정에 도굴범죄단(두목 백준흠 1958년생)과

노무현의 밀약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O노무현세력의 범죄 은폐


1.도굴범죄단 두목 백준흠과 노무현의 관계

백준흠은 정충제씨를 사기꾼으로 몰아 징역을 살게 했다.

물론 백준흠 혼자 벌일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정충제씨는 심중에 백준흠과 노무현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음을

짐작만 하던 차에 우연히 지인으로부터 중요한 정보를 입수하게 된다.

2001년도에 열기구협회라는 단체에서 태평양횡단행사를 한 적이 있는데

  이 행사의 추진위원장은 노무현,

총괄본부장은 백준흠으로 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노무현과 백준흠이 20년이상을 알고 지낸 열기구동호인이라는

  사실을 정충제씨는 알아 내었다.


2.문재인의 반응

문재인은 문현동 금도굴사건에 대한 진상을 이야기하면 정신병자로 몰아

  덮어버리고 있다.

정충제씨는 문재인과 공개토론을 해 보자는 입장이다.

본인이 모든 증거를 가지고 있고 거짓이면 광화문에서 사형당해도 된다고

  일갈하고 있다.


지난 2016년01월03일 문재인의 부산 사상구 지역구사무실에 정충제씨의

네째 동생인 정성제씨가 신나와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리다 입건된 일이

 있었는데 정신병자로 취급되면서 세간에서 잊혀진 바가 있다.

이 일은 인터넷으로 기사 검색이 가능하다.

정충제씨의 억울한 사연을 들으니 왜 그랬는지 의문이 해소된다.


O잘못된 상황 전개

어뢰공장발견 당시 금괴가 든 자루를 발굴하게 된다.

정충제씨가 발굴과 관련해 일을 시키고 심부름을 하던 '김성태'라는 자가

금괴를 찾게 된 이후 태도가 돌변하였다.

관청에 알리지 말고 야금 야금 몰래 꺼내자는 것이었다.

정충제씨는 단호히 거부했다.


소득이 있으면 세금을 내야한다는 것이 정충제씨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발굴관계자중 정충제씨를 제외한 9명이 김성태와 같은 생각을 했다.

그들은 형님은 그간 고생했으니 좋은 차 타고 여행이나 다니시라,

이익의 50%를 드리겠다는 달콤한 말을 했다.


그런데 상황은 엉뚱하게 전개되었다.

정충제씨는 그 도굴단이 청와대와 줄이 닿으리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이 때 그들의 뒤를 봐준 이가 노무현이었다.


O당시 재판 상황

재판 당시 그 도굴단의 살인청부를 받은 나연철이라는 인물이 나타나

김성태를 비롯한 몇몇이 금괴가 산더미처럼 있는데 정충제가 장애물이니

제거해 주면 해운대에 있는 90평짜리 아파트를 사주고 평생 돈 걱정 안하게

해주겠다고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는 증언도 있었다.

이런 증언에도 불구하고 정충제씨를 사기로 재판한 재판관들 썩을대로 썩었다.

정충제씨는 원래 36개월을 언도받았으나 너무 억울한 나머지

그 도굴단의 두목인 백준흠을 검사앞에서 폭행하는 바람에 44개월을 살고

나온 것이었다.


당시 법관은 박종훈 서울대졸업 진주출신

당시 검사는 서범준 고려대졸업 대구출신

이 사건을 조종한 검사는 김강준으로서 조희팔에게 뇌물을 받아

  현재(2018년06월) 7년형을 살고 있는 중이다.

서범준은 당시 초짜 검사로서 고참인 김강준과 수시로 상의하였다.

구속 한달전 서범준은 정충제씨에게 제안을 했다.


국가가 개인간 이권다툼에 개입하는 것은 부적절하므로 형사건은

무승부로 종결하고 민사건으로 넘기자는 것이었다.

탈세모의에 살인청부까지 한 사건을 민사로 넘기자니 어이없는 일이었다.

이에 정충제씨는 서범준에게 니가 검사냐라며 호통을 치기도 했다.

흑백을 가려 죄를 분명히 밝힐 것을 기대했는데 적당히 이익만 취하고

  덮어버리려는 검찰의 행태가 한심스러운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민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당시 정충제씨의 사건 조사 관할이 부산지검 동부지청이었다.

정충제씨가 검찰에서 조사를 받던 당시 부산지검 동부지청에

정충제씨의 고향후배가 근무를 하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후배가 여기 왠일인가 물어보길래

금도굴사건때문에 왔다고 하니 형님이 주인공이냐고 놀라더라는 것이다.


왜 그러랴고 물어보니 노무현이 동부지청에 전화해서

그 도굴단이라고 하는 사람들 손대지마라고 했다고

 여기 동부지청 직원들이 대부분 그 사건을 알고 있다고 전했다.

예전에 노무현이 젊은 검사들과의 대화라는 것을 한적이 있다.


그 때 김영종이라는 검사가 대통령당선자는 부산지검 동부지청장에게

 무슨 목적으로 전화를 걸었는지 물어 보았다.

적잖이 당황하다가 노무현은 '이쯤되면 막 하자는 거지요.'라고 뱉었다.

  왜 전화했는지 설명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노무현이 뭔가 억울한 것이 있나 보다라고 착각하고 있을 것이다.

정충제씨는 최근에 김영종검사를 만나 보았다고 한다.

안양지청장을 끝으로 현재 변호사로 지내고 있단다.

자신이 정충제라고 하니 김영종변호사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


O노무현의 죽음

정충제씨는 자신의 억울한 사건을 정리한 책 '실화 황금백합작전'에서

노무현을 문재인이 타살하였다고 기술했다.


금괴이익금중 노무현의 몫을 문재인이 탈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쯤되면 문재인은 정충제씨를 고소하든 자수하든

어떤 조치가 있어야 할텐데 아무 반응이 없다.


O문재인의 정체에 대해 인터넷에 폭로했던 정충제씨의 변

고향 후배출신인 모 정치인이 정충제씨에게 '형님 밤에 가급적이면

  돌아다니지 마세요.'라고 하더란다.


이유인 즉 위해를 가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정충제씨는 중국으로 피신하여 18개월을 머물렀다.

박근혜대통령당선 이후 귀국했다고 한다.

문재인의 정체를 밝히려는 목적으로 정충제씨는 중국에 피신중

 인터넷으로 폭로하는 활동을 하였다.


반응이 신통치 않아 시사저널의 안모기자를 통해 국회의원 회관의

문재인 사무실에 폭로자료를 전달했다.

그 역시 문재인측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금도굴사건에 깊이 연루된 것을 더욱 확신하게 할 뿐이었다.


O소책자 '노무현의 청와대가 문현동 금도굴에 관련된 24가지 이유' 배포

이것은 정충제씨가 지난 2017년 보궐대선 석달 가량 이전 대구에 있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3000부를 인쇄해 여의도에 무작위로 배포한 것이다.


기자, 정당원 가리지 않고 배포했으니 정충제씨는

 이 인쇄물이 문재인에게 포착되었을 거로 보고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실명이므로 어떤 반응을 기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여야 불문하고 조용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 정충제씨는 자유한국당내 의원들도 문현동 금도굴사건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확증할 수 있었다.

정충제씨는 청문회를 통해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이 조사받고

자신의 억울함이 해소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O어뢰공장 발굴과 함께 알게된 뜻밖의 비극적 사실


1.어뢰공장의 1000여개 유골 1-정충제가 알게된 계기

정충제씨가 사기꾼으로 몰려 1심재판을 받던 당시 정충제씨의 변호사가

증인 심문을 하던 중에 알게된 사실이다.


발굴과 관련해 정충제씨의 심부름을 하던 김성태라는 자가 있다.

이자에게 변호사가 "정충제가 사기쳤으면(지하에 어뢰공장은 없는 것인데)

2002년05월28일경 밤중에 당신들은 발굴현장에서 돼지머리 등

제사상을 준비하고 여러 명의 무당을 불러 고사를 지낸 이유가 뭔가?"라고

심문하자 이에 김성태는 정충제씨가 전혀 모르던 사실을 답했다.

김성태 왈, "일제시대 때 희생된 수많은 조선청년들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고사를 지냈다."


다시 변호사가 "그 이유밖에 없는가?"라고 묻자

김성태 왈, "우리의 사업이 잘 진행될 수 있기를 기원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쩌고 저쩌고......"

그날 재판 후 구치소로 돌아온 정충제씨는 어뢰공장에서 징용자들의 유골이

발견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2.어뢰공장의 1000여개 유골 2-정충제와 일제징용자들의 만남

이후 재판에서 정충제씨가 제출한 증거는 판사들에 의해 모조리 묵살당하고

  44개월징역을 마치고 출소한 어느날 잠결에 가위에 눌려 잠을 깨

TV를 켰는데 일제피해자유족회, 태평양전쟁희생 등의 자막이 지나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정충제씨는 서울 종로3가에 있는 태평양전쟁생존자협회라는

단체를 알게 되어 찾아가게 된다.

대부분 80대의 노인들이 모여 있었고 일제 때

징용이나 징병의 당사자들이었다.

거기서 대구출신의 '선태수'라는 협회장을 만나 부산 문현동 어뢰공장

  이야기를 꺼내었다.


그분은 이야기를 듣자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친구가 그곳에 징용되었었고

  서너달전에 죽었다고 서러워 했다.

그 친구는 '진동식(1920년생)'이라는 분으로서 발파기술자였고

태평양전쟁당시 부산 문현동 어뢰공장 건설현장에서 화약발파작업을 했었다.

진동식씨는 부산 문현동 어뢰공장 현장에 있다가

1943년 큐슈 사세보로 파견가게 된다.


1945년 해방이후 귀향배편이 없어 1년을 기다리다 고향으로 오게 되었다.

당시 진동식씨는 발파 중 돌파편에 오른쪽 눈을 잃고 애꾸가 되어 있었다.


3.어뢰공장의 1000여개 유골 3-진동식의 추적

진동식씨 고향에서 일본해군 진해부에 징용되었던 분들중

진동식씨의 지인이 2명이었다.

귀향했을 때 그 두분의 가족들이 행방을 물어보는 것이었다.

진동식씨는 중간(1943년도)에 큐슈로 전출되는 바람에

그 둘의 생사를 모르는 지경이었다.


전쟁중이라도 미군과 일본이 한반도에서 전투한 바는 없으므로

그 둘의 행방이 궁금하기는 진동식씨도 매 한가지였다.

수소문해 보니 대구, 경북지역의 징용자 1000여명이 부산 문현동 어뢰공장

건설에 투입되었는데 그들의 행방이 묘연하고 행방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참으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진동식씨는 시간날 때마다 부산에 내려가 배회하며 찾았으나

지형지물이 달라져 어뢰공장의 위치를 특정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평생 미스테리로 가슴에 응어리져 있었고 정충제씨가

태평양전쟁생존자협회를 찾기 서너달전에 돌아가셨다.


4.어뢰공장의 1000여개 유골 4정충제씨는 선태수씨

(태평양전쟁생존자협회장)에게 진동식씨의 유족들이

어디에 사는 지 여쭈었다.


속초에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정충제씨는 진동식씨의 부인을 만났다.

다행히 고령에도 불구하고 기억이 총명했다.

부인은 아들인 진영환을 업고 부산 문현동에

남편을 면회갔던 일을 이야기했다.

당시 남편인 진동식씨가 문현동 7부두 야산 밑에 어뢰공장을 파고 있고

본인은 화약기술자라서 대우가 그나마 나은 편이라며 너무 걱정말라는

 얘기를 나누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인터뷰를 요약하고 있는 나는 이 대목에서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

그 상황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애간장이 끓었을까?)

정충제씨는 부산 문현동에서 흔적을 찾았다.

어뢰공장이 있던 그 자리에 화약이 터진 흔적을 촬영했는데 화약을

 투입한 잔류공의 지름이 3cm정도이다.


이것 또한 그 아래 어뢰공장의 존재를 증명하는 증거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 일본의 주된 발파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정충제씨의 재판 당시 이 흔적을 두고 박수웅

(전직:박정희대통령 이발사)이 발파했던 것이라며 정충제를 사기꾼으로

몰아 세웠다.

또한 유골발견이 알려질 경우 노무현세력은 금괴탈취가 들통날 것을

우려해 정충제씨를 감금함과 동시에 알량한 고사만 지내고

덮어 버린 것으로 짐작되는 바이다.


O탈취된 금괴의 행방

박근혜대통령당선 이후 2013년03월28일 정충제씨는 중국에서 돌아왔다.

강남의 고속버스터미널근처에서 알고 지내던 정치인을 우연히 만났다.

한나라당 소속으로 충남서산출신의 국회의원으로 충남지사와 문체부장관을

  역임했던 사람이다.


이분이 "정작가, 문현동 금도굴사건에 도움될 만한 것이 있는데

그동안 대체 어디 있었던 것이냐?" 라며

본인의 서초동 사무실에 함께 갔는데 "

이인제의원이 전해주라고 했다."면서 서류 5장을 건네 주었다.

그 서류는 인터넷에서 출력된 1조원짜리 수표 20장의 복사본과 정옥자라는

 노년의 여성사진이었다.

정충제씨는 금도굴사건 진상을 밝히려고 대전에서 이인제의원을

전에 만난 적이 있었다.


건네 받은 서류를 보는 순간 정충제씨는 안도감을 가졌다고 한다.

문현동에서 산더미만큼 발굴된 금괴는 본인에게 없으니 물증이

오리무중인데 그 결과물이 바로 1조원짜리 수표 20장이었던 것이다.

정충제씨는 정옥자를 만나야겠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 막막하던 차

강남역 근처의 '부정부패추방시민연합'을 찾아가 윤용 교수

(전 고대 신방과 교수)를 만났다.

윤용과 정옥자가 같이 찍은 사진을 정충제씨가 보고 거기에 착안해

찾아간 것이었다.


윤용 교수를 만나 문현동 금도굴사건을 이야기하니

상당히 놀란 반응을 보였다.

윤용에게 정옥자를 아는 지 물어보니 잘 안다는 대답을 듣고 정옥자를

만나게 해달라 요청했다.

그 수표의 출처를 물어볼 참이었다.


윤용 교수가 어디론가 전화하니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고 했다.

문재인쪽에서 위해를 가할까 두려워 모처에 숨어 지낸다는 것이었다.

정충제씨는 여러 번 시도 끝에 정옥자의 조카를 만날 수 있었다.

정옥자의 조카에게 문현동 금도굴사건을 이야기하고 정옥자씨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테니 반드시 만나서 수표의 출처를

확인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 조카는 꼬치꼬치 정충제씨를 떠보고 문제없다고 판단했는지

 날짜를 정해 알려왔다.


정옥자씨는 정충제씨를 만났을 때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20조원을 바다이야기로 형성된 돈으로 알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정충제씨는 감옥에 있는 동안 뉴스를 꼼꼼히 챙겨봐 바다이야기로

  형성된 돈이 그만큼 커지 않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후 여러 번 만나는 과정에서 정옥자씨는 정충제의 설명을 듣고 품고있던

  의문이 해소되었다고 했다.


정옥자씨는 아태재단과 관련있고 이희호와 친분이 있으며

 육사교수를 역임한 바가 있다.     

정옥자는 외환은행(현 하나은행)본점 영업부장 이기승(1950년생)과

20조원(자기앞수표1조원짜리 20장)을 주고 받은 사실이 있다. 

문현동 도굴금은 국정원이 개입해 홍콩에서 처분되어 외환은행에

달러로 입금된 것으로 짐작된다.


정옥자씨는 정충제에게 자신의 입장변화의 계기를

문재인으로부터 연유한다고 밝혔다.

그녀는 문재인을 빨갱이로 보고 있었다.

정충제씨를 사기꾼으로 몰았던 도굴단 일행이 금괴를 나누면서 서명하고

지장을 찍은 확인각서를 정충제씨는 어렵게 확보하여 가지고 있다.

그 도굴단에 참여했던 인물들은 호화생활을 누리고 있다.


금괴를 나누는 과정에서 자식과 친인척 명의를 동원하기도 했다.

그 확인각서 명단에 '김홍랑(1953년생)'이라는 여자가 있는데

전라도 광주출신으로 이희호 마사지를 하던 전속기공사로서 청와대를

수시로 출입하였다고 한다.


이 여자는 부천역앞에 1000억대 빌딩을 소유하고 있고

 서울남부터미널 근처 110평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한다.

남편은 전남도청 새마을과장으로 근무한 공무원이었다고 한다.


한편 어뢰공장내 물속에 잠겨있던 금괴를 꺼내기 위해 30명의 다이버를

  동원했는데 그 중 16명의 명단을 정충제씨는 확보하고 있다.

일부 명단을 정충제씨는 방송에서 밝혔다.


정충제씨는 자수해서 죄를 경감받기를 권했다.

또한 도굴단 일행은 금괴를 합법적으로 발견한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온갖 짓을 벌였다.(그 과정은 방송을 참고하십시오.)


O탄압과 은폐

정충제, 정옥자, 윤용 세 사람은 논의 끝에 '부정부패추방시민연합'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세상에 알리기로 했다.

어처구니없게도 사법기관에서 정옥자를 체포했다.


수표나 금괴에 대한 이야기는 일체없고 죄목은 선거법위반이었다.

집행유예로 풀려나 있지만 문재인의 위해가 두려워 숨어 지낸다.


국정조사 등이 성사되면 정옥자씨는 반드시 증언할 것이라고 한다.

정옥자씨와 관련해 역겨운 일이 지난 보궐대선 두세달 전에 있었다.

KBS '이제는 말할 수 있다'프로그램의 작가라는 인물이 연락이 와

  정옥자씨에게 출연을 요청하였었다.


정옥자씨는 흔쾌히 출연했는데 나중에 방송을 보고 경악했다고 한다.

정옥자씨의 입이 가려진 체 자막으로 나오는데 1조원짜리 수표가 아니라

  10만원짜리 수표를 위조한 것이었다라는 식으로 방송되더라는 것이다.

도대체 이런 조작은 누구에 의해 지시되었을까?

 

O'실화 황금백합작전' 소개

이 책은 정충제씨 본인의 억울한 사건을 정리한 책이다.

본인의 유고를 대비해 대국민보고서로써 집필하였다.

황금백합작전은 일제시대 당시 일본군의 중국내 전리품취득 작전명이었다.

이 작전명을 정충제씨에게 알려준 이는 CIA극동지부장이었던

리차드 로리스이다.


이 책은 출판금지가처분을 당해 출판을 못하고 있다.

출판하려던 당시 출판사 사장이 책의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한 글자씩 바꾸지 않으면 출판할 수 없다고 하여

동의하였으나 편집장에게 부탁하여

노무현과 문재인의 이름은 실명으로 인쇄하였다고 한다.


책이 인쇄되어 나왔을 당시 정충제씨는 10권을 가지고

부산의 YMCA로 찾아가 이사를 만나 9권은 임의로 처분하고

 1권은 문재인에게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다.

참고로 문재인은 YMCA이사를 역임했다.


후에 확인한 결과 전달되었다고 한다.

문재인에게 책을 전달한 목적은 읽어보고 자신을 고소해 달라는 취지였다.

그러면 이슈가 되고 진실을 제대로 세상에 밝힐 수 있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문재인측은 반응이 없다고 한다.


O김무성에 대한 의구심

CIA극동지부장이었던 리차드 로리스는 한국말에 능숙하고

30년가량 근무했다고 한다.

리차드 로리스를 정충제씨에게 소개한 사람은 최양일이다.

최양일은 미국 버클리대학교를 졸업한 국제변호사로써

삼성그룹 법무팀장을 역임했다.

최양일은 최양옥의 오빠다. 그리고 최양옥은 김무성의 처다.

의문이 든다.


김무성은 이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으리라는 강한 심증이 든다.

더구나 문현동은 김무성의 지역구였다.

정충제씨는 김무성 지역구 사무실 등을 통해 여러 번 청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왠일인지 아무런 반응이 없다고 한다.


정충제씨는 문재인으로부터 금도굴관련 자금을 김무성도 받았다고 주장한다.

물증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김무성의 처남 최양일은 이런 정황을 모르고 정충제씨에게

리차드 로리스를 소개해 준 건지도 모르겠다.


O증언자 정충제씨는

1948년생이다.

정충제씨의 직업은 실화(實話)집필가이며 부산 문현동

일제 어뢰공장 최초발견자이다.

국민학교(현재의 초등학교)교사로 9년6개월 가량 근무했다.

세째 동생의 부마사태가담에 대한 연좌제에 걸려 교사직 사표 제출을

  요구받았으나 사표제출거부로 삼청교육대에 입소,

약 1년후 출소하게 된다.

 

연좌제에 해당되지 않은 부인은 계속 교사로 근무할 수 있었다.

삼청교육대 출소 후 본인의 경험을 기술한 책

(삼청교육대 악몽의 363일)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이후 책을 집필하면서 실화작가로 지내왔다.


정충제씨는 금도굴사건에 대한 본인의 지난 경과를 집필하였다.

책 제목은 '실화 황금백합작전'이다.

노무현정부의 국가정보원은 정충제씨를 정신병자로 분류했었다.

정충제씨는 본인의 의료기록을 살펴본 결과 정신병관련 진료나

의약구매는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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