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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상륙 작전과 연합국의 승리

bsk5865 2019. 5. 26. 17:58

노르망디 상륙 작전과 연합국의 승리

1943년부터 히틀러는 서부 전선의 병력을 강화하였다. 프랑스 해안을 중심으로 방어기지를 구축(어떤 시설물을 쌓아 올려 만듦)하고 연합국의 반격에 대비한 것이다.

1944년 6월 6일, 미국의 아이젠하워 장군이 이끄는 15만의 연합군은 노르망디(프랑스 서북부 해안에 있는 지방) 상륙 작전을 감행하였다. 영국과 캐나다 군은 동부 해안으로, 미국군은 서부 해안으로 상륙하여 독일군을 공격하였다. 이 때 공군은 프랑스 동쪽 센강과 남쪽 르와르 강에 있는 다리들을 폭파하여 독일군의 병력 지원을 차단하였다. 연합군은 힘든 전투를 벌인 끝에 캉 항과 셰르부르 항을 점령하였고, 그 기세를 몰아 독일군을 더욱 강하게 공격하였다. 결국 연합군의 공격에 독일군은 무너지고 말았고, 29만이 넘는 병력이 포로로 잡혔다.

연합군이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는 동안, 독일군부의 고위 간부들이 히틀러 암살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사전에 발각되어 수 많은 사람들이 처형당했다. 이로써 독일의 전력은 더욱 약해졌고, 1944년 8월 25일에는 연합군이 파리를 탈환하였다. 그 해 9월에 드골 장군은 프랑스 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독일은 다시 총동원령(사람, 물자 따위의 모든 역량을 집중시키라는 명령)을 내려 병력을 보충하고 서부 전선을 강화하였다. 그러나 연합군은 공격을 늦추지 않고 전면 공격을 해, 마침내 프랑스를 가로질러 독일 국경까지 진격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한편 동부 전선에서는 소련이 발칸 반도 위쪽으로 이동해 헝가리와 유고슬라비아를 통해 독일군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소련은 독일의 전력이 크게 약화된 틈을 타, 1945년 1월에 독일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소련군이 바르샤바를 점령하자, 히틀러가 서부 전선에 있던 부대를 서둘러 동부 전선으로 보냈다. 그렇지만 독일군이 소련의 진격을 막지 못했고, 소련군은 부다페스트까지 점령해 들어갔다.

이때 영국과 미국 공군은 폭격을 강화하여 독일의 동부 전선의 교통 중심지들을 파괴하면서 소련군의 진격을 도왔다. 1945년 4월 22일, 마침내 소련군이 베를린에 입성하였다. 이에 4월 30일 히틀러가 자살하고, 그 뒤 독일은 5월 7일에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을 하였다. 이로써 유럽에서의 공식적인 전쟁은 막을 내렸다.

독일이 항복한 후에도 미국은 일본과의 전쟁을 남겨 두고 있었다. 미국은 사이판·필리핀·이오지마·오키나와 등을 차례로 점령한 뒤, 일본 본토를 폭격하기 시작했다. 1945년 3월 9일, 미국은 일본 도쿄에 야간 공습을 감행했다. 이로써 미국은 육군을 상륙시키지 않아도 일본에 엄청난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 뒤 미국은 일본의 다른 대도시들에 대해서도 야간 공습을 감행하였다.

1945년 7월, 독일 포츠담에 모인 연합국 대표들은 일본에게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여전히 전쟁에 대한 뜻을 굽히지 않고 이를 거절하였다. 결국 미국은 1945년 8월 6일과 9일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을 떨어뜨렸다. 게다가 소련이 8월 8일에 선전 포고를 하고 만주와 한반도로 진격해오자,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무조건 항복하였다. 전 세계를 피로 물들게 했던 제2차 세계 대전이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일본이 포츠담 회담 결과에 불응하자, 미국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을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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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60여 개가 넘는 나라들이 1억이 넘는 병력을 동원하여 싸웠던 제2차 세계 대전은 약 2천 7백만 명의 군인이 전사하고, 2천 5백만 명이 넘는 민간인이 희생되는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남겼다. 민간인 희생자 중에는 히틀러의 민족 차별 정책으로 희생된 유대인이 약 5백만 명이나 되었다. 또 전쟁 비용이나 대대적인 공습으로 인한 재산 파괴 등 경제적인 피해도 그 어떤 전쟁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냉전 시대에 들어선 국제 사회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51개 나라의 대표들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모였다. 그들은 국제 연합 헌장을 선언하고, 세계 평화 유지를 위한 국제기구인 국제 연합(UN)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전쟁에 승리한 나라들은 미국과 소련의 대립으로 전후 처리 문제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패전국인 독일은 동서로 분단되어 미국·영국·프랑스·소련의 관리를 받게 되었고, 일본은 무장 해제(항복한 군인이나 나라의 무기를 빼앗는 일)된 뒤 한동안 미국의 점령하에 놓였다. 오스트리아는 미·영·프·소의 관리를 받다가 1955년 중립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주권을 회복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아시아·아프리카·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거나 신생 독립국이 되었다. 이들은 1950년대 이후 제3세력으로 성장하여, 미국과 소련 중심 세력에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 냉전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후 국제 사회는 미국 중심의 자유 민주주의 진영과 소련 중심의 공산주의 세력이 대립하는 냉전 체제에 들어섰다.

국가와 민족도 나눠 버린 보이지 않는 전쟁, 냉전

1945년 5월 독일이 항복하자, 미국과 소련의 불안정한 동맹 관계는 해체되기 시작하였다. 소련은 동유럽

제2차 세계 대전의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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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한 지배를 계속하면서 공산주의를 전파했고, 미국과 영국은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독일은 1949년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냉전(Cold War)에 의해 분단된 것이다. 태평양 전쟁이 끝난 뒤, 미국과 소련은 38선을 경계로 각각 남한과 북한을 점령하였다. 결국 북한은 소련에 의해 사회주의 체제가 들어섰고, 남한은 미국에 의해 자본주의 체제가 수립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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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선 집필자 소개

역사 논술 강사. 목포대학교를 졸업하고 경기대학교 국제문화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3년부터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역사 논술 강의를 시작해 현재 경기대학교, 조선대학교, 서울사이버대..펼쳐보기

출처

전쟁으로 읽는 세계사
전쟁으로 읽는 세계사 | 저자정미선 도서 소개

전쟁이라는 키워드로 세계사를 풀어놓아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전쟁의 칼끝에서 피어난 인류의 문명! 페르시아 전쟁부터 제2차 세계 대전까지..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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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13XX33400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