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四共和函

[박정희 대통령 대일국교정상화회담 결과에 대한 국민담화문]

bsk5865 2019. 7. 23. 21:12

[박정희 대통령 대일국교정상화회담 결과에 대한 국민담화문]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어제 일본 동경에서 한일양국의 전권대표 사이에는 양국 국교정상화에 관한 제협정이 정식으로 조인되었습니다. 지난 14년 동안 우리나라의 가장 어렵고도 커다란 외교 숙제였으며, 또한 내가 총선거 때에 공약으로 내건 바 있는 이 문제가 마침내 해결을 본 데 즈음하여,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평소 소신의 일단을 밝혀 국민 여러분의 이해와 협조를 얻고자 합니다.

한 민족, 한 나라가 그의 운명을 개척하고 전진해 나가려면, 무엇보다도 국제정세와 세계조류에 적응하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국제정세를 도외시하고 세계대세에 역행하는 국가판단이 우리에게 어떠한 불행을 가져 오고야 말았는가는 바로 이조말엽에 우리 민족이 치른 뼈저린 경험이 실증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국제정세는 우리로 하여금 과거 어느 때보다도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대치하고 있는 적은 국제공산주의 세력입니다. 우리는 이 나라를 어느 누구에게도 다시 빼앗겨서는 안 되지만, 더욱이 공산주의와 싸워 이기기 위하여서는 우리와 손잡을 수 있고 벗이 될 수 있다면 누구하고라도 손을 잡아야 합니다. 우리의 자유와 독립을 수호하고 내일의 조국을 위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과거의 감정을 참고 씻어버리는 것이 진실로 조국을 사랑하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나의 확고부동한 신념입니다. 더구나 중공의 위협이 나날이 증대하여 가고 있고, 국제사회가 이른바 다원적 양상으로 변모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의 위치를 냉철하게 파악하고 반세기 전에 우리가 겪은 민족의 수난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가의 안전보장과 민족의 번영을 기약하는 현명한 판단이 절실히 요청되는 것입니다.

지난 수십 년간, 아니 수백 년간 우리는 일본과 깊은 원한 속에 살아 왔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독립을 말살하였고, 그들은 우리의 부모형제를 살상했고, 그들은 우리의 재산을 착취했습니다. 과거만을 따진다면 그들에 대한우리의 사무친 감정은 어느모로 보나 불구대천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국민 여러분! 그렇다고 우리는 이 각박한 국제사회의 경쟁 속에서 지난날의 감정에만 집착해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제의 원수라 하더라도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위해 필요하다면 그들과도 손을 잡아야 하는 것이 국리민복을 도모하는 현명한 대처가 아니겠습니까.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한일간의 국교를 정상화함에 있어서 나와 현정부가 크게 배려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원통스러운 과거를 청산하고 호혜평등, 협동, 전진의 앞날을 다짐하는 기본관계의 설정이었고, 다음으로는 대일평화조약에 규정된 청구권 문제, 한국 연안의 어족자원보호와 100만 어민의 장래를 보장하는 어업협정문제, 일본 땅에 버려진 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60만의 재일교포의 처우문제, 그리고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를 돌려받는 문제였습니다. 물론 이러한 제문제가 우리만의 희망과 주장대로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자신을 갖고 말할 수 있는것은 우리가 처해 있는 제반여건과 선진제국의 외교관례에 비추어 볼 때, 우리의 국가이익을 확보하는 데 선의를 다 했다는 사실입니다.

외교란 상대가 있는 것이고 또 일방적 강요를 뜻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이치와 조리를 따져 상호간에 납득을 해야 비로소 타결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한일간의 공동의 이익과 공동의 안전과 공동의 번영을 모색하는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읍니다. 양국은 비단 지리적으로 가깝다든가 역사적으로 깊은 관계에 있다는 것만이 아니라, 극동의 같은 자유국가로서 공동운명의 길을 걷고 있읍니다. 이 공동의 관계는 호혜평등의 관계요, 상호협력의 관계이며, 또한 상호보완의 관계입니다.

한일 양국간에 있어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이 순간에 우리가 깊이 반성하고 깊이 다짐할 점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독립국가로서의 자주정신과 주체의식이 더욱 확고해야 하겠다는 것이며, 아시아에 있어 반공의 상징적인 국가라는 자부와 긍지를 잊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국민의 일부 중에 한일협정의 결과가 굴욕적이니, 저자세니, 또는 군사적 경제적 침략을 자초한다는 등 비난을 일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매국적이라고는 극언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그들의 주장이 정부를 편달하고, 정부가 하는 협상의 입장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는 점에서 이것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여 왔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의 주장이 진심으로 우리가 또다시 일본의 침략을 당할까 두려워하고 경제적으로 예속이 될까 걱정을 한다면,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들은 어찌하여 그처럼 자신이 없고 피해의식과 열등감에 사로잡혀서 일본이라면 무조건 겁을 집어먹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비굴한 생각, 이것이야말로 굴욕적인 자세라고 나는 지적하고 싶습니다. 일본사람하고 맞서면 언제든지 우리가 먹힌다 하는 이 열등의식부터 우리는 깨끗이 버려야 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제는 대등한 위치에서, 오히려 우리가 앞장서서 그들을 이끌고 나가겠다는 우월감은 왜 가져보지 못하는 것입니까? 이제부터는 이러한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하나의 민족국가가 새로이 부흥할 때는 반드시 민족 전체에 넘쳐흐르는 자신과 용기와 긍지가 있어야 하고 적극성과 진취성이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근대화 작업을 좀먹는 가장 암적인 요소는 우리들 마음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패배주의와 열등의식, 그리고 퇴영적인 소극주의 바로 이것인 것입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비생산적인 사이비행세, 이것들입니다. 또 있습니다. 속은 텅텅 비고도 겉치레만 번지레 꾸미려 하는 권위주의, 명분주의, 그리고 언행불일치주의입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과감하게 씻어버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을 가진 국민이 됩시다. 자신은 희망인 것입니다. 희망이 있는 곳에 민족의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입니다. 응당한 노력을 지불함이 없이 공짜로 무엇이 되려니, 또는 무엇이 생기려니 하는 생각은 자신력을 완전히 상실한 비굴한 사고방식입니다.

지금 일부 국민들 중에 한일국교정상화가 되면 우리는 또다시 일본의 침략을 당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지만, 이러한 열등의식은 버려야 하는 동시에, 이와 반대로 국교정상화가 되면 당장에 우리가 큰 덕을 볼 것이라는 천박한 생각도 우리에게는 절대 금물인 것입니다. 따라서 한마디로 한일국교정상화가 앞으로 우리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 오느냐,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느냐 하는 관건은, 우리의 주체의식이 어느 정도 건재하느냐, 우리의 자세가 얼마나 바르고 우리의 각오가 얼마나 굳으냐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에 정신을 바짝 차리지 못하고, 정부는 물론이거니와, 정치인이나, 경제인이나, 문화인이나 할 것 없이 국리민복을 망각하고 개인의 사리사욕을 앞세우는 일이 있을진대, 이번에 체결된 모든 협정은 그야말로 치욕적인 제2의 을사조약이 된다는 것을 2,700만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다같이 깊이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이 기회에 일본 국민들에게도 밝혀 둘 말이 있습니다. 우리와 그대들 간에 이루어졌던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선린으로써 다시 손을 마주잡게 된 것은 우리 양국 국민을 위해서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과거 일본이 저지른 죄과들이 오늘의 일본 국민이나 오늘의 세대, 선조들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무조인이 이루어진 이 순간에, 침통한 표정과 착잡한 심정으로 과거의 구원을 억지로 누르고, 다시 손을 잡는 한국 국민들의 이 심정을 그렇게 단순하게 보아 넘기거나 결코 소홀히 생각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두 나라 국민이 참다운 선린과 우방이 될 수 있고 없는 것은 이제 부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체결된 협정문서의 조문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그대들의 한국이나 한국 국민에 대한 자세와 성의 여하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일본은 역시 믿을 수 없는 국민이다 하는 대일불신 감정이 우리 국민들 가슴속에 또다시 싹트기 시작한다면 이번에 체결된 제협정은 아무런 의의를 지니지 못 할 것입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이제 남은 절차는 국회의 비준입니다. 물론 국회는 국회대로 충분한 논의를 하겠지만 국민 여러분께서도 특별한 관심과 참여의식으로 이 문제의 마지막 매듭에 현명한 판단과 아낌없는 협조가 있을 것을 나는 확신해 마지않습니다.

1965년 6월 23일 대한민국 대통령 박정희

2019.7.23.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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