過去資料函

기억으로 더듬어 보는 우리나라 사고사건들

bsk5865 2019. 8. 4. 22:03

정가을. | 조회 108 |추천 0 |2019.08.03. 07:27 http://cafe.daum.net/enkamom/KjYf/2686 

19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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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4월 8일 서울 마포구 창전2동에서

발생한 와우 아파트 붕괴사고입니다.


전적으로 당시 정부의 날림공사 + 부패 + 전시행정 등등이

모두 결합한 사고로,당시 김현옥 서울특별시장이

 왜 아파트를 저런데다 짓느냐는 질문에


"야 이 새X들아, 높은 곳에 지어야 청와대에서 잘

보일 것 아냐!"라고 한건 유명합니다


6개월만에 날림으로 지은 아파트가 지반도 다지지 않고

애초에 부족했던 한동에 1100만원 정도의 공사비를

하청과정에서 동당 125만원씩 떼먹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시공업자까지 무면허.



19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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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12월 25일 서울 중구 충무로동의

대연각 호텔에서 발생한 한국

최대최악의 화재 사고입니다.


호텔 화재에서는 세계에서도 유명한 규모입니다.

총 사망자 166명으로 인명피해로는 한국 내 역대 5번째입니다.

대부분의 비상구가 잠겨있었고


스프링쿨러 등 진화시설도 미흡해서 인명피해를 키웠습니다.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질식하거나 뛰어내리다가 희생됐습니다.


198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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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9월 1일에 일어난 민항기 격추 사건인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입니다.

탑승자 269명 전원이 사망한 사건으로 뉴욕의 공항을 출발해서 앵커리지

공항을 거쳐 김포공항으로 비행하던 대한항공의 여객기가

사할린 근처의 소련 요격기에게 격추당해 추락당했습니다.


당시 소련에선 그런 일은 없었다며 해당 항공기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다가

다음 날 항법등을 키지 않았다던가, 경구에 응답하지 않았다던가 발표했고,


미국이 당시 일본이 녹음한 소련 공군기의 테이프를 공개하자 이후

"민항기로 위장한 스파이기였다"라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당시 한국은 UN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라

직접적인 항의도 불가능했었죠.




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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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3월 28일 부산 북구 구포역 근처에서 일어난 열차 전복 사고로,

서울발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가 탈선-전복하여 78명의 사망자를 내고

198명이 부상당한 참사입니다.


 기관사가 생존했기 때문에 전후 상황이 금방

 파악됐는데,전역인 물금역을 지나 구포역 정차를 앞두고 해당 구간을 통과 중

사고지점 100m 앞에서 선로 지반이 무너지는 것을 기관사가 발견하여

비상제동을 시도했지만 제동거리가 부족하여 기관차와 발전차가

무너진 지반 아래로 전복됐고, 뒷 차량도 탈선됐습니다.


참고로 사고의 원인은 선로 아래로 관통하는

전력관계 공사를 시공사 멋대로 발파까지 해가며 시공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공사는 악덕기업으로 낙인 찍혀

6개월 영업정지를 당하고

국내 공사 수주를 받기 힘들어졌는데

결국 해외로 가서 두바이에서 초고층 빌딩을 짓는 기업이 됐습니다.


.

.

그리고 4개월 뒤 비행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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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7월 26일, 김포 공항엣서 출발해서 목포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였던

아시아나 733편 여객기가 전남 해남의 한 야산에 추락한 사고입니다.

당시 목포공항엔 강한 비가 내리고 있었고,


파일럿은 세번 착륙을 시도하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갑니다.

네번째 착륙을 시도하던 여객기는, 3분후 목포공항의

관제레이더에서 사라지며 통신이 두절되고, 공항에서 10km정도

떨어진 어느 야산에서 발견됩니다.


총 탑승인원 106며중 68명이 사망한 사고로,

파일럿의 무리한 착륙 시도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힙니다.

그리고 이 사고의 3개월 뒤,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가 일어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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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0월 10일 전북 부안의 위도 근처에서 여객선

서해훼리호가 침몰해서 292명이라는, 한국에서 사고로

3번째로 많은 사망자를 낸 사고입니다.


이 사고는 특히 인재로 꼽히는데,

먼저 출항 당시 기상여건이 매우 좋지 않았는데 무리하게

 출항했고, 기기 조작도 상당히 무리수를 가했으며,


화물이 선박 앞쪽에 집중적으로 실려

무게중심이 앞으로 기우는 상황에서

결국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이 초과승선에는 위도의 관광객이 크게 늘어난 것도 한몫했는데

계속해서 관광객들과 위도 주민들은 증편을 요구했지만

영세업체라면서 허가를 거부했고,....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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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 21일에 일어난 성수대교 붕괴사고입니다.

32명의 사망자를 낸 사고로,


하루아침에 멀쩡해 보이던 다리의 가운데가 뚝 떨어진

사고로 전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습니다.


특히 붕괴시간대가 학생들의 등교시간이여서,

추락한 시내버스에 타고 있던 여학생들의 죽음이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당시 희생된 한 여학생의 아버지의 인터뷰가 싸늘합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얼마든지 올 수 있어! 올 수 없다고 장담 못 해!

미리미리 방지한다고 하지만 이미 늦은거야!"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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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4월 28일에 대구의 상인네거리

근처에서 일어난 가스 폭발사고입니다.


대구백화점 상인점의 지반공사를 하던 인부가

실수로 가스관을 건드려, 가스가 유출되서

지하철 공사현장으로 모여 폭발한 사고입니다.


50m에 달하는 불기둥이 치솟았고

400m에 달하는 공사현장이 모두 붕괴했습니다


이 사고로 101명이 숨졌는데

특히 학교 근처인데다 등교시간이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희생됐습니다.


하지만 이 사고는 아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때문에

금새 묻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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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 붕괴사고, 1995년 6월 29일에

일어난 건물붕괴사고입니다.


사망자 501명으로 테러/천재지변을 제외한

건물붕괴 사고중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희생자를 낸 건물붕괴 사고입니다.


한국에서도 한국전쟁 이후로 최대의 피해를 낸 사고로

그야말로 안전불감증의 결정체적인 사고입니다.

사고공화국이란 소리를 듣던

김영삼정부의 대미를 장식한 사고이기도 합니다.


이 이후로 전국의 건물의 안전성을 조사해서

전체 고층 건물의 14.3%가 개축이 필요하고

80%는 크게 수리할 필요가 있고,


단 2%만이 안전한 상태라는 결과가 나와서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줬습니다.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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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일어난 건 아니지만,

대한한공의 김포국제공항발 아가나 국제공항행 801편

여객기가 추락한 사고입니다. 1997년 8월 6일, 괌에서 일어난

 229명이 사망한 대형 사고입니다.


해당 공항의 시설미비 + 조종사들의 잘못된 착륙방법

 고집 등이 원인이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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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당시 사고현장 앞에서

국회의원들이 기념사진을 찍다가 걸려서

빈축을 샀습니다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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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6월 30일에 일어난 화재 사고로,

경기 화성의 씨랜드라는 청소년 수련원에서 일어났습니다.

497명의 어린이와 인솔교사 47명, 554명이 있었고,


이 중 유치원생 19명을 포함하여

23명이라는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희생자가 늘어난 이유로는,

안전관리 문제가 심각했는데 우선 객실


내 화재경보기는 고장나 있었고,

소화기들을 쓰지도 못했습니다. 게다가

심지어 인솔교사들은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련원을 멀쩡히 운영했던 것은

수련원 측에서 뇌물을 퍼먹였던 것인데


여기 관련되있었던 화성군수는

지금도 멀쩡히 지역유지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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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0월 30일 인천 중구

인현동에서 일어난 화재사고입니다.

씨랜드 사건 4달만에 일어난 사고로, 사망 55명

부상 78명을 낸 대참사입니다.


화재의 원인은 전기 스파크가 공사중이던 지하

노래방의 신나에 불을 붙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희생자가 늘어난 이유로는 비상구를 막아버리고,

창문을 통유리로 막아버리거나,

간판으로 쓰려고 다 막아놓았기 때문.


 가장 큰 문제는 호프집 주인이

화재로 인해 사람들이 빠져나가려 하자

돈내고 나가라면서 단 하나 있는 출구를

막아버렸기 때문이였습니다.


 참고로

이 인간은 5년간 교도소 복무 후

CCM가수로 변신해서 교도소를 돌아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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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인명피해 순위로는

 4번째인 대구 지하철 참사입니다.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중앙로역에서 발생한

방화사고로, 관련자들의 대책이 미흡하여

 피해를 키웠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철도사고중 최대급이며

세계적으로도 지하철 안전대책 마련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 사건입니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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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0일에 일어난 숭례문 방화사건입니다.

70세 노인이 자신의 토지에 대한 보상액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경비가 허술해 접근이 쉽고 인명피해가 나지 않는,

그리고 상징성이 있다고

 생각하여 숭례문을 불태웠습니다.


방화에 쓰인건 겨우 니스 3통과 라이터 하나....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그야말로 문화재 하나가

전소한, 다른 의미의 대참사였습니다.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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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구미시 산동면의 구미산단 4단지의 휴브글로벌

불산 저장탱크에서 폭발이 일어나10t가량의 불산가스가

유출되고 5명이 사망한 사고입니다.


폭발 당시에는 5명이였지만

불산오염으로 인한 후유증을 생각하면...

여기서 국내에서 유일하게 불산제독이 가능한 장비를

보유한 주한미군 화학대대가 출동해서 도와줬다고 합니다.


참고로 이 사고 현장을 찾은 당시 환경부 장관은

기자들에게 마스크를 쓰지 말아달라고 요청해서

(사태의 심각성을 축소해 보이기 위해)

빈축을 샀습니다.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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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7일, 경북 경주의 마우나리조트의 강당이 폭설로 인해

무너져 내려 OT를 왔던 부산외대 학생들이 매몰된 사건입니다.

총 10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참고로 이 건물은 2009년에 완공된 후 안전진단을 단 한번도 안받았다고 하네요.

시공 중 설계도에 있던 지붕 구조물 하나는 생략한 것도 영향을 줬다고 합니다.


결국 안전불감증의 대가였죠.

이 당시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지만,

단 2달 후에 역대급 재난이 일어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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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의 대표하는 사건으로 세월호 침몰사고입니다.

지금도 그 여파는 가시지 않고 있으며 302명의 사망자를 내서

역대 2번째로 많은 희생자를 낸 선박사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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