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적비 수립상의
오랫만일세. 무더운 날씨에 형수님 뫼시고 모두 편안 하신가?
나는 기력이 떨어지고 목 디스크도 생기고 보행도 힘들어 집안에만 있으니
답답한 날만 이어지고 있네.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은 일이 있어 장군조카와 상의해보고자 이글을 쓰고 있네.
동적비(洞蹟碑)를 세두고 싶네
고향에 산은 옛대로 있지만 땅은 상전벽해(桑田碧海)로 별천지로 변해버렸네.
그래도 우리는 그곳에 선영(先塋)을 모시고 있고 죽어서도 선산(先山)에 묻혀질것이
아닌가? 또 고향 그리는 마음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고..........
본래 이 고을은 우리 박씨들의 집성촌이었다는 역사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동적비(洞蹟碑)를 세워 후세(後世)에 남겨야 될것같네.
이일을 위해 지명도가 높은 장군 조카가 나서서 해준다면 우리 문중의 영광이겠고 달리
대표로 일할 사람도 없거니와 장군의 이름이 비석에 남아 있길 바라네.(장군을 배출한
고을이라는 자긍심).......이하는 참고로 보시게
1.봉화군에 동적비(洞蹟碑)를 세워 달라고 청원...(이 고을에 달리 해준것도 없거니와 수몰지
구 같은 곳과 비교하면 한심)
민선8기 봉화군 박현국 군수는 봉성면 창평사람이고 같은 보성면 출신.1959년생.봉화중고 후배
2. 경북도청에 알림이 있으면 예산을 얻어오면 더욱 좋고....
3. 아니면 자체 모금으로 (모금, 문중돈)
4. 규모 (형편대로.....)
예산.. 업자와 크기 글자수등 절충해아 알지만.....1000만원이내 600만원 이상이면?
5. 장소 동구(洞口) 느티나무밑 희망
아니면 군이 지정하는대로....
(前 面)
洞 蹟 碑 文
이 고을은 반남박씨 판관공 계파(潘南朴氏 判官公 季派)교수공 (敎授公)후예
(後裔)의 집성촌(集姓村)이었다. 300여년전 15世 휘(諱) 世基께서 영주(榮州)를
떠나 여기 '부랭이'에 정착(定着)개척 (開拓)하신 고을이다. 조상의 숨결과 피땀이
베인 곳이며 또한 지금의 우리들을 있게한 유복촌(裕福村) 이었다.
2009년 봉화군이 전원(田園)마을 조성지구로 확정추진함에 따라 마을이 해체되고
팔방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개척선조 (開拓先祖)의 유지단절(遺志斷切)을 자괴(自愧)
하면서 이향(離鄕)에 앞서 고을의 내력과 '고향 그리는 마음'을 함께 각석(刻石)하여
그 뜻을 후세에 전하고 아울러 사랑하는 이 고을의 무궁한 발전을 빈다.
20 년 월 일
( 後 面 )
洞 蹟 碑
呼昔村名稱潤洞 (호석촌명칭윤동)
開發便乘失樂鄕 (개발편승실락향)
晩生巢歸古今同 (만생소귀고금동)
魂魄返里回中天 (혼백반리회중천)
옛부터 마을 이름을 부랭이 (潤洞)이라 했었다.
마을을 개발한다기에 함께 했더니 즐겁던 고향만 잃었네
늙어 말년엔 고향에 돌아가고자함은 예나 자금이나 같건만
혼백이 고향에 돌아와도 갈곳 없어 허공중을 헤매겠지!
글.....朴 勝 九
주손 박수서(朴秀緖)
소종중대표 박경서(朴敬緖 육군소장)
제작수립 봉화군 假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