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物寫眞函

幸州山城

bsk5865 2012. 3. 13. 11:18

보낸사람 : 演好마을 운영자 12.03.13 10:37

 

幸州山城| ☞ 자유게시판
파도

 

행주대첩

이여송의 명나라 군사가 평양성을 탈환하고,남하하다가 벽제관에서 왜군에 크게 패하여 평양으로...

그러나 권율장군은 관군 2,300명과 승병 500명을 거느리고 3만여명의 왜군과 결전을....

왜군은 우키타(宇喜多秀家)의 지휘 아래 이시다(石田三成)·마시다(增田長盛)·
오타니(大谷吉繼) 등이 3만 여명의 군사를 7개 부대로 나누어 진격했다.
그러니까 병력으로 보면 조선군은 4~5배 정도의 열세였다.

왜군은 고니시(小西行長)·이시다·구로다(黑田長政)가 이끈 1~3대가 차례로 공격을
시작했다. 그러나 모두 제1성책을 넘지 못하고 격퇴되었다.
총대장 우키다는 격노했고, 직접 자신의 제4대를 이끌고 공격에 나섰다.
그들은 많은 희생자를 내면서도 전진했고,  제1성책을 넘어 제2성책까지 다가왔다.
그러나 권율의 독려로 조선군은 다시 반격했고, 우키다와 이시다를 집중 포격해
부상을 입혀 격퇴시켰다

왜군의 공격은 더욱 격렬해졌다. 제5대장 요시카와(吉川廣家)와 제6대장 모리(毛利秀元)
·고바야카와(小早川秀秋)는 제2성책을 공격해 일부를 불태웠다.
조선군은 위기에 몰렸지만, 처영이 이끈 승군의 활약으로 왜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이제 전투는 막바지에 이르렀고, 그 형태도 사력을 다한 백병전으로 바뀌었다.
왜군의 마지막 공격은 제7대장 고바야카와(小早川隆景)가 이끌었다.
그들은 승병의 일부를 무너뜨리고 성 가까이까지 진격했다.
전투의 승부처인 이때 조선군과 백성들은 권율의 지휘로 합심해 행주산성을 지켰다.

 

 

 

 

권율장군 동상

사당의 권율장군 영정

 

단풍나무 가로수 길

 

 

 

 

 

 

 

 

 


 변이중이 제작하여 보내온 40량의 화차는 왜군 공격의 기선을 제압하는데 효과적이었다.
 당시의 화차는 문종 때 개발한 화차를 개량한 것으로,
'중신기전(中神機箭)' 100발을 사격할 수 있는 '신기전기화차(神機箭機火車)'와
서너 발의 탄환을 장전한 '승자총통(勝字銃筒)' 40정이 장착되어 있어 한꺼번에
수백 발의 탄환을 발사할 수도 있는 '총통기화차(銃筒機火車)' 였다"고 주장했다.
행주대첩에서 변이중선생이 제작한 화차가 승리의
가장 요인이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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