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語雜物函

古賀政男に對して

bsk5865 2012. 5. 29. 09:16

보낸사람 : 엔카사랑방 운영자 12.05.29 08:37

 

古賀政男に對して| ▶ 엔카가수정보방
정암 |

 

 

古賀政男(고가 마사오)

 

古賀政男(고가 마사오)에 대하여

 

昭和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일본대중 ?界에 족적을 남긴 古賀政男(19041118 - 1978725) 1904(明治37) 1118 현재의 후쿠오카현 오가와시(福岡? 大川市)에서 태어났다.

 

1923(大正12), 明治大? 재학중에 明治大? 만돌린(マンドリン)??部를 創設, ”影を慕いて”를作曲하여, 1931(昭和6) 콜럼비아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이래 50여년간 왕성한 작곡활동을 계속하였으며, 가수육성과 일본 ?界의 발전을 위해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影を慕いて(모습을 ?아서)”, “酒は? か溜息か(술은 눈물인가 탄식인가)”를 시작으로, “東京ラプソディ?(토오쿄오 라프소디), 丘を越えて(언덕을넘어서)”등 수많는 힛트곡을 작곡하였으며 1978(昭和53) 7 급성 심부전증으로 永眠하기까지 평생동안 작곡한 곡은 3000曲에서 4000曲에 이른다고 한다. 

오늘날까지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심금을 울리고 있는 이른바 古賀 Melody(古賀メロディ?)”는 짙은 哀愁를 바탕으로 삶의 비애나 슬픔, 적막감 등을 센티멘탈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속에서 인생의 고초나 삶의 한계적 상황을 스스로 극복하고 밝은 내일을 향한 生에 대한 강한 의지도 표출하여 格調있고 톡특한 음악 세계를 이루고 있다. 때문에“古賀 Melody” 昭和時代를 투영하는 거울이라고도 하며 시대와 인생의 희비교차를 반추해 있는 표본인 동시에 시대를 초월하여 일본인들에 계속 사랑받고 애창되는 名曲의 위치에서 존재하고 있다.

2007 어느 일본의 평론가는일본의 가요계(특히 演歌) 지금도 古賀政男의 음악을 답습하고 있고 영향하에 있다”라고 단언할 정도로 사후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古賀政男은 일본 각계 각층의 사람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으며 2004년에는 古賀政男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추모행사나 프로그램이 일본 도처에서 성황리에 열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90년대 이후에는 그의 음악에 대한 학문적 해석도 이루어 지고 있다. 최근 어느 일본 음악 학자가 古賀政男을 분석한 중에는古賀政男은 그의 가요곡에 사용되는 반주음악을 동유럽계의 음악이라 있는 오스트리아의 전통 대중음악인 슈라멜(Schrammel) 편성법과 헝가리 음계를 활용하였으며, 리듬은 하바네라 리듬 류를 주로 사용하여 작곡하였다.”라는 내용이 있다. 진위 여부를 떠나서 대중음악 작곡가를 그정도의 위치에 올려 놓고 진지하고 성의있게 연구하는 일본의 풍토에서 많은 것들이 느껴 .

古賀政男은 한편으로 우리 한국과도 깊은 인연을 가지고 .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시기에 가족과 함께 조선으로 건너와(1912 8) 인천 공립임상고등소학교(公立尋常高等小?校)를 다녔으며 1917년에는 京城 선린상업학교 ?하여 1922 졸업을 하였다는 사실이다.

11 간의 기나긴 청소년기를 한국에서 보내면서 음악가로서의 소질과 재능을 키워 나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한국 전통의 민요나 대중가요등이 그의 음악적 형성에 밑바탕이 되었으리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있으며 이는 古賀政男 스스로도 후일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의 음악은 한국에서부터 나왔다고 자랑 스럽게 공언할 정도였다.

래서 그런지 古賀政男의 음악은 처음 들어보는 곡이라도 마치 예전에 즐겨 듣던 곡인냥

착각할 정도로 멜로디가 친근한 많은 것은 古賀政男 당시 처지가 식민지 조선의 백성과 마찬가지로 내일을 기약할 없는 어려운 생활이 연속되어 정서적으로도 조선인과

어느정도 동질감을 느끼고 조선의 음악에 더욱 더 호감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보게 되며, 후일 古賀政男 음악에 한국의 정서나 가락이 상당부분 반영되어진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古賀政男은 이러한 한국에서의 추억을 소중히 여겨 1960년대 이후부터 사망하기 직전까지 거의 매년 모교인 선린상업고등학교 방문하여 장학금을 기탁하고 모교교정(용산구 청파동소재) 둘러 보곤 하였는데 당시 선린상고 동문회장인 기영 부총리가 안내하여 여러번 신문에서 기사화 되었으며 장학금사업은 古賀政男의 유지를 이어 받은 자식에게 계승되어 후에도 계속 된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古賀政男 작품의 디스크 과거 힛트할 당시 원래의 가수가 부른곡을 모아 재편집한 앨범이 빈번히 새롭게 발매되고 있으며, 이외에도 일본의 인기 演歌가수라면 누구라 할것 없이 古賀政男의 곡만으로 독집앨범을 놓고 있다.

또한 모교인 明治大? Mandolin??部에서는 연주곡으로된 古賀政男의 앨범을 수시로 내고 있으며 다이쇼고토(大正琴), 샤미센(三味線) 전통 일본악기 등으로 새롭게 연주된 디스크도 발매되고 있다. 구미에서는 1960년대 “Summer Place” 경음악 연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Percy Faith 악단이 60년대에 古賀政男의 곡으로만 구성된 연주앨범을 내어 놓은 있다.

 

古賀政男 生涯 프로필

1904(明治3711) 후쿠오카현 三?郡田口村三丸(現在の大川市)에서 喜太?, セツ의 五男으로 誕生하다. 본명은 正夫.

1910(明治43年) ?喜太?사망

1911(明治44 4) 田口 尋常小?校에 입학하다.

1911(大正元年 8) , , 弟와 함께 조선으로 건너와 仁川에서 거주하는 큰형 福太?에게 의탁, 이무렵 사촌으로부터 大正琴을 받다. 同時에 仁川 公立尋常高等小?校로 전학하다.

1917(大正6 4) 京城 善隣商業?校에入學. 大阪에서 거주하는 넷째형 久次?으로부터 린을 선물받고 ?家로서의 뜻을 굳히는 계기를 맞이하다.

1923(大正12 4) 治大學 予科에 入學. 린具樂部의 創設에 ?加하다.

1926(大正15 4) 明治大學 ?部에 ?하다.

1929(昭和411) 13 ?? 演奏會에서”影を慕いて”를表하여 호평을 받다.

1931(昭和 6 3) 日本콜럼비아 레코드사와 契約. 같은해 9月에酒は?か溜息か”, 11月에丘を越えて ?表하다.

1934(昭和 9) Teichiku( テイチク)레코드사에 入社. 문예부를 結成하다.

1936(昭和11) 빅터 레코드사로부터 藤山一? 영입하여 東京ラプソディ”를 발표 대힛트하다.

1938(昭和1311) 외무성의 음악친선사절 도미하여, 1년동안 하와이, 미국, 남미국가 등을 시찰 여행하다.

1939(昭和14) 미국 NBC放送에서酒は?か溜息か””丘を越えて”등 5曲을 미국전역에15分間 放送하다. 콜럼비아 레코드사와 전속작곡가로 다시 손잡.

1948(昭和23) 三百六十五夜” “湯の町エレジ?”를 발표하여 대힛트

1959(昭和34) 日本作曲家協? 設立하고 初代?長이 되다.
日本레코드大賞을 制定하고 운영委員長이 되다.

1960(昭和3512) 白い小指の歌 日本레코드大賞 作曲賞을 受賞하다.

1965(昭和4012) 日本레코드大賞을 受賞(美空ひばり)하다.

1966(昭和41) 美空ひばり가 부른悲しい酒 발표하여 대힛 하다.

1974(昭和49) 히로시마平和音?祭”를 개최하다.

1975(昭和50) 일본정부로부터 ?三等瑞?章을 受賞하다.

1978(昭和537) 무더위로 인한 급성 심부전증으로永眠하다.(항년 73) 사망당일 일본왕실로부터 ?四位에 추서되는 銀杯를 下賜받았으며, 같은날 明治大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다. 또한 일본 정부로 부터

음악가로는 최초의 ???賞을 수상하다. 같은해 9、故? 川市에서 명예市民의 칭호를 수여하다.

古賀政男의 주요작품곡

  (년월일) (曲名) (作詞者)  

 1931 昭和61 影を慕いて 古賀政男  

  昭和69 酒は?か溜息か 高橋?太?  

  昭和611 丘を越えて 島田芳文  

 1933 昭和84 ?カスの唄 西?八十  

 1935 昭和107 二人は若い 玉川映二  

  昭和1011 ?の地平線 佐藤?之助  

 1936 昭和116 東京ラプソディ 門田ゆたか  

  昭和119 男の純情 佐藤?之助  

  昭和1112 ?それなのに 星野貞志  

 1937 昭和121 人生の?木路 佐藤?之助  

 1938 昭和136 人生劇場 佐藤?之助  

 1940 昭和152 誰か故?を想わざる 西?八十  

  昭和155 目ン無い千鳥 サトウハチロ?  

 1946 昭和216 悲しき竹笛 西?八十  

 1948 昭和239 湯の町エレジ? 野村俊夫  

 1949 昭和242 トンコ節 西?八十  

1952 昭和278 ゲイシャ?ワルツ 西?八十

昭和27 白虎隊(原曲: 1937) 島田磐也

 1955 昭和309 りんどう峠 西?八十  

1958 昭和338 無法松の一生 吉野夫二?

1963 昭和386   東京五輪音頭 宮田隆

1964 昭和3911 ??新一

 1966 昭和416 悲しい酒 石本美由紀  

 1974 昭和496 ? 寺山修司

대표곡 내용

影を慕いて 가케오 시타이테

이곡은 젊은날 古賀政男의 인생에 대한 고뇌와 절망, 실연의 슬픔을 음악을 통하여 승화시킨 昭和時代 전체를 통틀어도 최대의 걸작으로 꼽히는 名曲이다.

1928 여름 古賀政男은 삶에대한 비관이 극한상황에 까지 이르러 자살을 시도하였으나 미수에 그치고 그해가을에 휴양지(?) 다녀오면서 느낀 여러가지 감상들로 부터 "影を慕いて" 가사 구절의 단편들을 떠올려 이를 곡으로 완성하게 된다.

그후 1929 6 古賀政男은 명치대학 만돌린 ?? 정기연주회에서 이를 왈츠연주곡으로(기타와의 합주) 처음 발표하였으며 이때 게스트로 참석했던 가수 佐藤千夜子(사토 치요코) 이곡을 대중유행가로 만들어 보면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받았다. 그해 가을 안드레아 세고비아의 기타연주회에 참석하여 크게 감명을 받은 것을 계기로 古賀政男은 기타를 반주로 하는 대중가요 "影を慕いて" 서둘러 완성하게 되었다.

1930 Victor사에서 佐藤千夜子 신곡앨범의 이면곡(만돌린 기타반주 : 古賀政男)으로 취입하여 1931년초에 처음 발매 되었으나 별로 주목을 받지는 못하였다.

이곡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된 것은 東京音?? 출신의 藤山一? 1년뒤인 1932 3럼비아레코드사에서 클래식한 목소리로 다시 취입하여 발매한 것을 것이 계기가 되어 힛트를 하였다. 이후 古賀政男, 藤山一? 콤비는 여러곡을 발표하면서 昭和시대 초기의 대중가요 시장을 석권하게 되며 몇몇 곡은 일본내 레코드점에서 품절되는 일까지 일어났다고 전해 진다.

이곡은 이후 美空ひばり, 森進一, 島倉千代子, 千昌夫등 수많은 가수들과 연주가들이 자신의 레파토리에 반드시 끼워두는 곡이 되었으며 古賀政男의 대표곡중의 대표곡으로 남아 있다.

影 を 慕 い て 모습을 찾아서

作詩 . 作曲  古賀政男 (昭和6)

1 まぼろしの

  影を慕いて  雨に日に

月にやるせぬ  我が想い

つつめば燃ゆる  胸の火に

  身は焦がれつつ しのび泣く

환영의 모습을 그리며 비오는 날에

달에 달랠길 없는 나의 생각

감싸면 타오르는 가슴의 불에

몸은 애타게 그리워서 흐느껴 우네

2 わびしさよ

せめて傷心の  なぐさめに

  ギタ-をとりて 爪びけば

どこまで時雨  ゆく秋ぞ

  トレモロ淋し  身は悲し

쓸쓸함 이여

그나마 아픔을 달래기 위해

기타- 들고서 치면 어디까지 소나기 오는 가을인가

트래몰로 쓸쓸하고 몸은 슬프네

3 君故に

  永き 人生を  霜枯れて

  永遠に春見ぬ  我がさだめ

  永ろうべきか 

  はなき影よ  我が戀よ

그대 때문에

인생을 서리에 시들어  

영원히 봄을 보지 못하는 나의 운명

오래 살것인가

매미 허물의 덧없는 모습이여 나의 사랑이여

丘を越えて

오카 코에테

이곡은 1931 開封된 新映?姉”의 主題歌이다

비애 고독 호소하는 曲이 많은 古賀政男의 作品에서 보기 드문

밝고 明朗한 曲調로 藤山一?(ふじやまいちろ) 불러 크게 힛트했다.

古賀政男(こがまさお) 明治大? 卒業하고 1929 明治大?

만돌린 ??部의 後輩와 東京郊外의 ?田堤( 川崎市 多摩?)으로

하이킹을 갔다. 만개 벗꽃나무 아래서 술잔을 서로 주고 받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때의 추억으로 만돌린 합주곡

만들어 졌다고 한다.

原來 만돌린 합주곡으로 만들어진 가요곡 前奏와 間奏하는

시간이 노래를 부르는 시간보다 이례적으로 길지만 그것이 曲의

매력이며 만돌린의 반주선율 또한 매우 아름답고 흥겹기 그지없다.

作詞者인 島田芳文는 1898 福岡? 豊前市에서 태어나 ?田大?

?하였으며 부유한 집안에서 학창시절 남부럽지 않은 많은 용돈을

쓰고 다녔다고한다. ?田大?시절 웅변부에 참여하여 後에 巨物政治家

河野一? (こうのいちろう) ???(あさぬまいねじろう)

等과도 活動하였지만 그후 ?으로 轉向하여 農民의 生活를 테마로

?詩를 쓰면서 ??(かるいざわ) ?에서 은둔生活을 보냈다.

노래 歌詞는 長野? ??의 ?間牧場의 風景을 묘사 하였으며

오늘날 ??(群馬? 長野原町)에는丘を越えて”의 歌碑가 세워져

있다.

지금도 이곡은 明治大? 만돌린 ?? 정기 또는 이벤트 연주회에서 Best 연주

레퍼토리이며 클래식 성악가와의 협연에도 아주 어울리는 곡이다.

한편 2008年에는 ?「丘を越えて」主題歌로 이곡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언덕을 넘어서

作詩 島田芳文  作曲 古賀政男

(昭和6)

1 丘を越えて行こうよ

眞澄の空は 朗らかに

  晴れて たのしいこころ

  鳴るは 胸の 血潮よ

  讚えよ わが春(はる)

いざゆけ 遙か 希望の  丘を越えて

언덕을 넘어가자

맑은 하늘은 쾌청하게

활짝 개여서 즐거운 마음

뛰는것은 가슴의 혈기야

찬양하라 우리의 봄을

가자 아득한 희망의 언덕을 넘어서

2  丘を越えて行こうよ

小春の空は 麗らかに

澄みて嬉しいこころ

   湧くは 胸の泉よ

  讚えよ わが春を

  いざ聞け 遠く希望の 鐘は鳴るよ

언덕을 넘어가자

봄의 하늘은 화창하게

맑아져서 기쁜마음

용솟음치는 것은 마음의 샘이야

찬양하라 우리의 봄을

들어봐 희망의 종이 울리는 소리를

? 사케와 나미다카 타메이키

이곡은 1931 影を慕いて 같은 시기에 발표하여 古賀正男 藤山一? 세상에 처음 알린 곡으로 古賀正男 중에서 가장 먼저 힛트한 곡이며 우리나라에도 매우 친숙한 곡이다.

1932 조선 최초의 직업가수로 인정되는 채규엽(蔡奎燁, 1911-) 일본 콜럼비아 레코드사와 전속가수 계약을 체결하고 곡을 술은 눈물이랄까 한숨이랄까 라는 제목으로 우리말 가사를 부쳐 취입하여 우리나라에서 특히 크게 힛트하였다.

古賀正男 중에서도 가장 한국적인 멜로디인 곡은 기타 반주부가 정겨우며

비오는 한잔 곁들이며 들어보면 더욱 운치가 있다.

? 술은 눈물인가 탄식인가

作詩 高橋?太?  作曲 古賀政男

(昭和6)

1 酒は?か 溜息か  心のうさの 捨てどころ

술은 눈물인가 탄식인가 마음의 근심 버리는곳

2 遠いえにしの かの人に  夜?の夢の 切なさよ

머나먼 연분의 그사람을  밤마다 꾸는 안타까움이여

  (間 奏)(간주)

3 酒は?か 溜息か かなしい?の 捨てどころ

술은 눈물인가 탄식인가  슬픈사랑을 버리는곳

4 忘れた?の かの人に  のこる心を なんとしょう

어야할 그사람에게 남은 마음을 어이하리오

男の純情 오토코노 준죠

곡은 古賀政男의 전성기중의 전성기라 있는 1930년대의 2(Teichiku 레코드사 재직 기간인 1934-1938 까지의 5년간) 활동기간 중에 藤山一? 노래로 발표된 곡으로 지금도 매우 애창되는 인기있는 곡이다.

古賀政男 스스로도 이곡에 남다른 애착이 있었는지 古賀 자신의 육성으로 직접 부른 곡도 남아 있으며 역시 들을만 하다.

다이쇼코토(大正琴) 古賀가 직접 반주한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 듣는 맛이 여운이 있고 훌륭하다.

作詩  佐藤惚之助 作曲  古賀政男

(昭和11 1936)

1 男いのちの 純情は

燃えてかがやく 金の星

夜の都の 大空に

曇る淚を 誰が知ろ

2 影はやくざに やつれても

訊いてくれるな この胸を

所詮 男のゆく道は

なんで女が 知るものか

3 暗い夜空が 明けたなら

若いみどりの 朝風に

金もいらなきゃ 名もいらぬ

愛の古巢へ 歸ろうよ

1 사나이 목숨같은 순정은

불타서 빛나는 금빛

도시의 넓은 하늘에

눈물로 흐려짐을 그누가 아는가

2 모습은 야쿠자로 초췌 하지만

묻지를 말아다오 가슴을

어차피 사나이의 가는 길은

어찌 여자가 알리가 있나

3 어두운 밤하늘이 밝거든

신록의 아침 바람에

돈도 필요 없고 명성도 필요 없는

사랑의 보금자리에 돌아 가련다

토오쿄오라프소디

東京 유행가 제목에 포함시킨 곡은 지금까지 수십곡이 넘게 나왔고 널리 힛트한 다른 곡들도 많지만 아마도 이곡 만큼이나 유명하고 따라부르기 쉽고 경쾌한 곡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번을 계속해서 들어봐도 물리지 않고 신이나는 이노래는 古賀政男 음악 속에서 마치 집시(Gypsy) 음악 같은 애수와 흥겨움 이라는 두가지 의식이 나사처럼 엇물려 있음을 느낄 있다. 이는 같은 (1936) 3 간격으로 발표된 男の純情 비교해 보아도 쉽게 느낄수 있다.

어쨋던 곡은 1936 6월에 一郞 노래로 슈퍼 힛트를 기록했고 오늘 날까지 동경을 상징하는 곡으로남아 있다.

연주곡으로는 명치대 만돌린구락부의 연주가 제격이며 최근 부른 가수로는 히가와 기요시의 2005 명곡앨범5중에 삽입된 곡이 있는데 젊고 다이나믹한 미성의 소유자 히가와 기요시의 가창은 일품이다.

토오쿄오 라프소디 라는 명칭이 어울리는 같아 동경찬미곡으로 이름을 새로 부쳐 보았다.

東京ラプソディ 동경찬미곡

作詞:門田ゆたか 作曲:古賀政男 歌手:藤 一郞 (昭和11)

1 花?き花散る宵も  

銀座の柳の下で  

待つは君ひとり 君ひとり  

逢えば行く ティ??ム  

?し都 ?の都  

夢のパラダイスよ 花の東京

2 現(うつ)つに夢見る君の  

神田は想い出の街  

いまもこの胸に この胸に  

ニコライの かねも鳴る  

?し都 ?の都  夢のパラダイスよ 花の東京

꽃이 피고 꽃이지는 초저녁에도

긴자의 버드나무 아래서

기다리는 사람은 당신 한사람 당신한사람

만나면 가는 다방

즐거운 도시 사랑의 도시

꿈의 낙원이요 꽃피는 토오쿄오

지금도 꿈꾸는 당신의

간다(神田)거리는 추억의 거리

지금도 가슴에 가슴에

성당의 종도 울린다

즐거운 도시 사랑의 도시

꿈의 낙원이요 꽃피는 토오쿄오

人生の竝木路 진세이노 나미키미치

곡은 古賀政男이 1934 콜럼비아 레코드사에서 Teichiku 레코드사로 소속을 옮기면서 창작은 물론 사업영역 확장에도 왕성한 의욕을 보인 시기에 만든 곡들 하나이다.

당시 빅터 레코드사로부터 藤山一?ディック?ミネ、楠木繁夫、美ち奴등 인기가수 들을 대거 영입하였는데 이곡은 1937년 일본 최고봉의 재즈싱거로 명성이 높았던 ディック?ミネ가 불러 크게 힛트 하였다.

賀政男은 이곡을 작곡할 7살의 어린나이에 정든 고향을 떠나 낯선 이국 조선으로 건너 가게된 슬픈 심정을 회고하며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人生の?木路 인생의 가로수길

佐藤?之助 古賀政男 作曲

昭和12(1937)

ディック·ミネ()

泣くな妹よ 妹よ泣くな

泣けば幼い 二人して

故鄕を捨てた 甲斐がない

遠い淋しい 日暮れの道で

泣いて叱った 兄さんの

淚の聲を 忘れたか

雪も降れ降れ 夜路の果ても

やがて輝く あけぼのに

我が世の春は きっと來る

生きて行こうよ 希望に燃えて

愛の口笛 高らかに

この人生の 竝木路

울지마라 누이야 누이야 울지마

울면 어린 둘이서

고향을 버린 보람이 없어

멀고 외로운 저문 길에서

울면서 야단친 오빠의

눈물의 목소리를 잊었느냐

눈도 내려 내려 밤길의

이윽고 빛나는 새벽녘에

우리세상의 봄은 반드시

살아 야지 희망에 불타서

사랑의 휘파람 드높게 부르며

인생의 가로수

人生劇場 진세이케키죠

인생극장 아이치현 출신의 작가 尾崎士? 자전적 대하 장편소설이다. ?春篇, 愛慾篇, ??, 風雲篇, 離愁篇, 夢幻篇, ? 7개편으로 나뉘어 발간되었는데 원래는 신문에 연재된 인기소설이며 일본에서는 영화로도 1970년대 초까지 14번이나 제작 되었다고 한다.

??篇이 발간된 이듬해인 1938년에 소설의 줄거리를 바탕으로 佐藤?之助 작사, 古賀政男 작곡의 가요곡으로 人生劇場 ?表되었는데 이때 부른 가수는楠木繁夫이었으며 이곡 역시 힛트를 하였다.

그후 村田英雄가 1959年에 이곡을 새롭게 하여 다시 불러 폭발적인 인기를 불러 모았으며 이후 이곡은 村田英雄의 간판 곡이 되었다.

人生劇場 인생극장

作詞 : 佐藤?之助 作曲 : 古賀政男

昭和13(1938), 昭和34(1959)

やると想えば どこまで やるさ それが男の 魂じゃないか

義理が すたれば この世は闇だ なまじとめるな 夜の雨

あんな女に 未練はないが なぜか淚が 流れてならぬ

男ごころは 男でなけりゃ 解るものかと あきらめた

時世時節は 變わろとままよ 吉良の仁吉は 男じゃないか

おれも生きたや 仁吉のように 義理と人情の この世界

1 하려고 먹으면 끝까지 하는거야

그것이 사나이의 혼이 아니던가

의리가 무너지면 이세상은 암흑이야

어설피 막지마라 밤비야

2 저런 여자에게 미련은 없다만

어쩐지 눈물이 멎지를 않아

사나이 마음은 사나이가 아니면

알수가 있을까하며 단념 해버렸어

3 시세 시절은 변할지라도

기라의 니끼찌는 사나이가 아닌가

이몸도 살고싶다 니끼찌 처럼

의리와 인정의 세상을

誰か故?を想わざる 다레까 고꾜오 오모와자루

곡은 昭和15(1940) 발표된 ?時歌?曲으로 西條八十 시에 古賀政男 곡을 부쳐서 霧島昇(기리시마 노보루) 노래로 1940120  日本콜럼비아 레코드사에서 발매되었다.

서정적인 시귀절에 유려한 멜로디가 어우러진 3 콤비의 대표적인 힛트곡으로 곡에는 많은 에피소드가 남아 있다.

제작사인 콜럼비아 레코드사에서는 곡을 취입한후 판매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곡이 너무 난해하고 따라 부르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전쟁터의 장병에게 위문용으로 보내자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위문용으로 일제히 전쟁터에 보내졌던 곡은 망향의 그리움을 달래는 병사들 사이에 급속히 퍼져나가 힛트를 쳤으며 오히려 일본 본토로 이곡이 역수입되는 현상까지 벌어지게 되었으며 일본 국내에서도 힛트하여 1941년에는 같은 이름의 영화도 만들어 지게 되었다.

그당시 위문공연차 전선을 방문했던 가수 ?はま子(와타나베 하마코) 어느부대에서 이곡을 불렀는데 노래를 듣던 부대장과 말단 병사, 노래를 하던 가수까지 모두 울어 공연장이 눈물바다가 되었다는 유명한 에피소드도 있다.

또한 이곡이 일본내에서 유행을 하자 일본의 각급 공장터에서는 너무나 애수어린 곡조가 작업장의 사기를 저하시킨다는 이유로 한때 금지곡으로 정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밖에도 이곡은 일본이 패전한후 지역에서 전범으로 구금된 병사들이 동료와 함께 어깨동무를 하며 노래를 부르면서 형장으로 걸어 들어갔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誰か故?を想わざる 누가 고향을 잊을 있나

作詞: 西?八十 作曲: 古賀政男 : 霧島昇

(1)

花摘む野邊に 陽は落ちて

따고 놀던 들판에 해가 지면

みんなで 肩を ぐみながら

모두들 어깨동무 하면서

歌を うたった かえり道

노래를 부르며 돌아오는

幼馴 染みの あの友この友

어린시절 이친구 저친구

ああ 誰か 故鄕を 想わざる

아아 누가 고향을 잊을 있나

(2)

一人の 姉が 嫁ぐ夜に

하나뿐인 누이가 시집가는 밤에

小川の 岸で 淋しさに

시냇가 언덕에서 쓸쓸하게

泣いた 淚の なつかしさ

울었던 눈물이 그립구나

幼馴 染みの あの山 この川

어린시절 산과 시냇가

ああ 誰か 故鄕を 想わざる

아아 누가 고향을 잊을 있나

(3)

都に 雨の 降る夜は

도시에 비가 내리는 밤은

淚に 胸も (しめ)りがち

눈물에 가슴도 축축해져

遠く 呼ぶのは 誰の聲

멀리 들리는건 누구의 목소리

幼馴 染みの あの夢 この夢

어린시절의 이런꿈 저런꿈

ああ 誰か 故鄕を 想わざる

아아 누가 고향을 잊을 있나

湯の町エレジ? 유노마치 에레지

이곡은 1948 近江俊郞(오오미 도시로) 노래로 힛트한 곡이며 전후 한동안 가요계에서 주춤하던 古賀政男의 존재를 굳건하게 해주는 곡이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古賀政男은 같은 해에 “古賀기타歌??”(후의 古賀기타?) 設立하게 된다.

古賀政男은 熱海(아따미) 온천에서 이곡을 만들었다고 하며, 近江俊郞(오오미 도시로) 레코딩 , 기타 반주는 古賀政男이 직접 했는데 처음 시작하는 부분의 노래 대목이 작곡가의 마음에 안들어 23번의 NG 냈다고 한다.

음반판매는 당시로는 경이로운 40만장 이상이 판매되는 대힛트곡이 되었으며

近江俊郞은 이곡 하나로 부동의 인기가수가 되었다.

가사의 내용은 온천마을의 유부녀를 좋아하여 사모하는 마음을 기타에 실어 보내는 애닯은 마음을 노래한 것이다.

湯の町エレジ- 온천장엘레지

野村俊夫 作詩 古賀政男 作曲 近江俊郎

(昭和23 1948)

(1)

伊豆の 山山 月あわく

燈りにむせぶ 湯のけむり

ああ 初戀の

君をたずねて 今宵また

ギタ-つまびく 旅の鳥

(2)

風のたよりに 聞く 君は

溫泉の町の 人の

ああ 相見ても

晴れて語れぬ この想い

せめてとどけよ 流し唄

(3)

あわい湯の香も 露路裏も

君住む故に なつかしや

ああ 忘られぬ

夢を慕いて 散る淚

今宵ギタ- むせびなく

1 이즈의 산들은 달빛 아련하고

등불에 흐느끼는 온천의 증기

아아 첫사랑의

그대를 찾아 오늘밤에

기타- 켜는 나그네

2 풍문에 들리는 그대는

온천마을의 남의 아내

아아 서로 만나도

떳떳이 말못할 마음

그나마 들리렴 유행가노래

3 아련한 온천내음도 뒷골목도

그대 살고 있기에 그리운거요

아아 잊을수 없는

꿈이그리워 흐르는 눈물

오늘밤 기타- 흐느껴 우네

야와라

곡은 1964 11월에 발표되어 다음해 12월에 7 일본레코드 대상을 받은 곡이다., 패전후 20년만에 동경올림픽을 개최(1964)하여 세계에 일본의 존재를 과시하 올림픽의 정식종목으로 처음 채택되어 최고의 성적을 거둔 유도에 대한 관심과 프라이드를 드라마에 반영한 TV 드라마 『柔 』의 주제가 이다.

연속극의 연출을 맡은 감독은 고가마사오(古賀政男)에게 주제가를 맡기고 싶었지만 방송국에서는 이미 다른 작곡가를 내정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러나 고가마사오가 작곡을 맡지 않으면 연출을 포기하겠다고 방송국에 끝까지 맞서 결국 설득을 해냈는데 고가마사오에게 가사가 전달된 것은 연속극 이틀전 이었다 한다.

이렇게 급히 만들어진 곡을 가수 미소라히바리(美空ひばり) 스튜디오에 도착하자마자 1번의 연습으로 바로 녹음에 들어가 되었다고 한다.

결과는 힛트하여 지금기준으로도 상상을 초월하는 무려 180만장의 디스크가 판매되어 미소라 히바리의 역대 힛트곡 중에서도 넘버원의 위치를 지금까지 차지하고 있다.

일본의 전통무예인 유도를 테마로한 이곡은 유도인의 의지와 기백이 가사 전편에 표현되어 있으며 시작부의 드럼과 고가마사오 특유의 친숙한 멜로디가 인상적이다.

柔(やわら)

: 關澤新一 : 古賀政男 : 美空ひばり

昭和39(1964)

つと思うな 思えば負けよ 負けてもともと この胸の

奧に生きてる 柔の夢が 一生一度を 一生一度を 待っている

人は人なり のぞみもあるが 捨てて立つ瀨を 越えもする

せめて今宵は 人間らしく 戀の淚を 戀の淚を  齒みしめる

口で言うより 手の方が早い 馬鹿を相手の 時じゃない

行くも 住るも 座るも臥すも 柔一すじ 柔一すじ 夜が明ける

다고 생각하지마라

생각하면 지게돼.

더라도 본전

이가슴의 속에 살아있는 유도의 꿈이

일생의 한번을

일생의 한번을

기다리고 .

사람은 각자마다 소망이 있지만

려서 자신의 설자리를 넘어 가기도해.

그나마 오늘밤은 인간답게

사랑의 눈물을

사랑의 눈물을

이를 깨물며 참고 있네.

말로 하는 보다

손으로 하는 것이 빨라.

바보를 상대 때가 아니야.

가거나 서거

앉으나 누우나

유도

유도

그것으로 밤이 새네

古賀政男작품의 LP 디스크

1981 10 발매(일본 콜럼비아) 2 LP 오리지널 힛트집

古賀政男작품의 카세트

1986 발매된 명치대 만돌린구락부의 연주집

古賀政男작품의 디스크(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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