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낸사람: 演好마을 운영자 12.06.30 18:47
太宗雨 [祈雨祭]
가뭄으로 중부지방을 위시해서 식수마저 걱정할 지경이 이르러서
모두기 하늘를 처다보며 비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강우량이 예년의 절반을 밑돈다고도 보도되었고,
이 모내기철의 가뭄은 몬순지역의 한 풍토 현상이 라기도 하나
일 년 대계인 모를 심는 철이기에 예부터 우리 백성들의 가슴을
무척 죄어왔던 기후현상이기도 하다.
태종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전한다.
그래서 5월 초 10일이 넘어서 비가 내리지 않으면
촌락 단위로 기우제가 베풀어지고,
그 후 이레 만에 비가 없으면 고을 단위의 기우제가,
다시 그 이레 후 까지 비가 없으면 조정에서 기우제를 올렸다고 한다.
바로 음력 5월초 10일, 아니나 다를까 어젯밤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
가장 비를 바라는 중부지방에는 호우가 예상된다니 반갑기 그지없다.
옛 歲時記를 보면 음력 5월 10일 전후에는 반드시 비가 내렸고
이 비를 태종우라 한다 했다.
5월초 10일은 바로 제3대 임금인 태종이 서울 천달방의
새 대궐에서 승하하신 날로,
이 제삿날에 비가 내리는 이유는 태종과 그의 말년에 혹심했던
가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속진되고 있다.
해마다 가물자 백성들은 정승들의 부덕을 하늘이 가뭄으로
징벌하는 것이라고 민심이 동요, 정승들은 사직을 하였고,
그래도 계속 가물자 임금은 자신의 부덕으로 받아들여
세자인 세종에게 왕위를 물리고 물러앉았던 것이다.
상왕자리에 4년 있다가 돌아가셨는데 임종에서 세종에게 이르기를
“가뭄의 재해가 이토록 심할 수가 있느냐?
내가 죽어서 넋이라도 살아 있다면 나 죽는 날만이라도
반드시 비를 내리게 하리라.”고
한을 품고 눈을 감았던 것이다.
이 임금의 원한이 하늘에 감천하고,
또 백성의 공감에 영합하여 이 태종의 제삿날을 전후한 비에
민감해져 태종우가 탄생한 것일 게다.
그리고 태종우를 피하면 안 된다 하여 우산이나 도롱이는
이 비에만은 금물이었다.
그 후부터는 음력 5월 초열흘날(금년은 양력 6월29일) 내리는 비를
태종우라고 부르게 되었다. 태종이 돌아가신 그해에 온 나라는 가뭄에서
벗어났으며, 몇 년 만에 한 번 들까말까 하는 큰 풍년을 누리게 되었다.
그로부터 매년 태종이 돌아가신 5월 10일이 되면 태종우가 내리고,
농부들은 그 비를 바라보면서 태종에게 늘 감사를 드렸다.
그러나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극심한 해도 있었으니,
그때마다 농부들이 태종을 모신 헌릉(獻陵)을 가리키며,
“우리 태종대왕께서 어찌 우리를 돌보지 않겠는가.” 하고
소망을 간원하면 반드시 5월 10일에 태종우가 내린다고 한다.
태종은 신라의 왕호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그와 관련된 장소가 부산에 있는 태종대(太宗臺)이다.
이곳에서는 신라의 태종과 조선의 태종을 혼용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태종대는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이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룩한 후,
전국을 순회하던 중 이곳의 해안 절경에 심취하여 활을 쏘며
즐겼던 곳이라 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또한 가뭄이 있을 때에는 동래부사가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낸 곳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헝가리에도 이 무렵에 반드시 비가 내리는데 이를 ‘매리의 비’라 하여
사생아를 낳고 가엾게 죽어간 소녀 매리의 눈물로 공감하고,
인도의 가야지방에서도 이 무렵에 꼭 내리는 토사우를,
갓 태어난 부처님의 유아독존을 외칠 때 내린 황금의 비라 하여
가리거나 피하고 다니질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어제부터 태종우가 내리고 있으니 실컷 내리게끔
우산일랑 받지 말고 흠뻑 맞어보아야겠다.
유익종-비가 내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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