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說野談函

[佳談]'그라시아스' 가슴 따듯한 이야기

bsk5865 2012. 7. 6. 14:26

보낸사람 : 演好마을 운영자 12.07.06 10:25

 

'그라시아스' 가슴 따듯한 이야기| ☞ 자유게시판
설봉헌

 

가슴 따듯한 이야기

"그라시아스(Gracias·고마워요)."

지난 5일 오전 서울성모병원 19층 병실. 연두색 두건을 쓴

하이디 로리아니(12·Jaidy Loriani)가 수줍게 웃었다.

그의 오른쪽 어깨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2주 전 어깨뼈에 자라고 있는 종양을 검사하기 위한

절개수술을 했기 때문이다. 하이디의 병은 '뼈 암'으로 불리는

골육종(骨肉腫). 항암 치료를 받기 시작한 3일 전 머리도 빡빡 밀었다.

막 잠에서 깬 하이디는 아이패드부터 꺼내 들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울해질 것을 염려한

최종환(51) 신부가 선물했다. 바로 이 아이패드를 통해 접속되는

페이스북이 하이디에겐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었다.

 

 
5일 오전 서울성모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페루 소녀 하이디가 병상에
누워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열고 있다. 하이디는 자신의 근황을 소개하는
셀카(스스로 찍은 사진)와 글들을 올려 놓고 있었다.

 

페루 북부 조그만 어촌 마을 푸에르토 말라브리고(puerto malabrigo)에서

나고 자란 하이디는 지난달 초 어깨가 딱딱하게 굳는 증상을 보였다.

그의 아버지 윌통 메나(36·Wuilton mena)는 하이디를 데리고 수도 리마의

알마네라(Almanera) 병원을 찾았다. 그곳 의사는 "종양이 더 커지기 전에

하이디의 오른팔을 잘라야 살릴 수 있다"고 했다. 윌통은 가슴을 쳤다.

어분(魚粉)공장에서 받는 월급 800누에보 솔(약 30만원)로는 치료비를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았고, 더욱이 사춘기에 접어든 딸이

엄청난 충격을 받을까봐 걱정스러웠다.



윌통은 한국에서 파견돼 온 마을 성당의 최 신부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던 최 신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예쁜 하이디가

지금 병원에 있다. 오른쪽 어깨에 악성종양(5㎝)이 있는데 팔을 잘라내야 한다.

이제 겨우 12살 어린아이인데. 한국 병원에 문의하고 싶다. 이 아이에게

삶의 절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다"라고 썼다. 팔에 깁스를 하고 있는

하이디의 사진과 함께였다. 이때가 지난달 11일. 이로부터 딱 열흘 만인

지난달 21일에 하이디는 2만km를 날아와 서울 강남의 성모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열흘간의 기적'은 이렇게 이어졌다. 먼저 사연을 읽은 최 신부의

'페친'(페이스북상에서 친구)인 정재우 신부가 서울에서 백방으로 뛰며

하이디를 도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정 신부는 자신이 아는 오승민

가톨릭중앙의료원 의료협력본부 사무국장에게 무료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고 긍정적인 대답을 받아냈다. 오 국장도 최 신부의

페이스북을 찾아갔고, 페친이 됐다. 오 국장으로부터 최 신부를

소개받은 정양국 가톨릭의대 정형외과 교수는 절단 없이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했다.


이런 식으로 하이디의 사연은 조금씩 퍼져갔다. 최 신부의 페이스북에서

사연을 접한 사람들은 각자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항공료와 체재비 등을 지원하기로 했고, 성모병원 측은 하이디와 아버지의

빠른 비자 발급을 위해 진료예약 확인서를 보내왔다. 리마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김 다니엘라 수녀는 여권 발급 등 세세한 절차를 도왔다.

비자가 발급되자마자 리마에서 하이디와 아버지는 비행기에 올랐다.

하이디는 앞으로 10주에 걸쳐 항암치료를 받고, 종양절제와

뼈 재건을 위한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하이디의 한국행을 반대하던 마을 사람들을 설득한 것도 페이스북이었다.

친척처럼 살가운 이웃들은 "대관절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리마에서도 충분히 치료할 수 있다"며 반발했었다. 3층 건물이

가장 높은 '빌딩'인 어촌 사람들을 위해 최 신부가 페이스북에 성모병원

사진을 올리자, 반발은 싹 사라졌다. 최 신부는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인데, '열흘'은 참으로 기적과도 같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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