歲時風俗函

[七夕] 歲時 名節 七夕

bsk5865 2012. 8. 24. 13:01

보낸사람 : 演好마을 운영자 12.08.24 10:39

 

歲時 名節 七夕| ☞ 자유게시판
설봉헌 |

 

세시 명절 칠석

 

 

 

음력 7월 7일로 세시 명절의 하나. 헤어져 있던 견우

(牽牛)와 직녀(織女)가 만나는 날이라고도 한다.

 

음력 7월이 되면 맑은 바람이 불어오고 하늘이 맑고 푸르며 높다.

북두칠성은 한 쪽으로 몰아 떠있고 비단결 같은 은하수는

금방 쏟아질 것 같다. 그 동쪽에 직녀성이 수줍은듯 희미하게

비치고 서쪽에서는 견우성(牽牛星)이 휘황하게 빛을 발하는데

이는 마치 서로 마주보며 정겨워하는 듯하다.

 

칠석(七夕)의 유래는 중국의 『제해기(薺諧記)』에 처음 나타난다.

주(周)나라에서 한대(漢代)에 걸쳐 우리나라에 유입되기까지 윤색을

거듭하여 온 것으로 보인다. 설화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옥황상제가 다스리는 하늘나라 궁전의 은하수 건너에 부지런한

목동인 견우가 살고 있었다. 옥황상제는 견우가 부지런하고 착하여

손녀인 직녀와 결혼시켰다. 그런데 결혼한 견우와 직녀는 너무

사이가 좋아 견우는 농사일을 게을리 하고 직녀는 베짜는 일을

게을리 했다. 그러자 천계(天界)의 현상이 혼란에 빠져 사람들은

천재(天災)와 기근(饑饉)으로 고통받게 되었다. 이것을 본 옥황상제가

크게 노하여 두 사람을 은하수의 양쪽에 각각 떨어져 살게 하였다.

 

 

견우와 직녀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서로 애만 태울 수밖에 없었다.

부부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게 된 까마귀와 까치들은 해마다 칠석날에

이들이 만나도록 하기 위해서 하늘로 올라가 다리를 놓아주니

이것이 오작교(烏鵲橋)이다.

 

우리 나라 <춘향전>에서 춘향과 이도령의 가약을 맺어주던

광한루(廣寒樓)의 다리는,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다리와

이름이 같은 오작교였다.

 

 


견우와 직녀는 칠석날이 되면 오작교를 건너 서로 그리던 임을 만나

일년 동안 쌓였던 회포를 풀고 다시 헤어져야 한다. 칠석 다음날

까마귀와 까치의 머리를 보면 모두 벗겨져 있는데 그것은 오작교를

놓기 위해 머리에 돌을 이고 다녔기 때문이라 한다. 칠석날에는

비가 내리는데 하루 전에 내리는 비는 만나서 흘리는 기쁨의 눈물이고,

이튿날 내리는 비는 헤어지면서 흘리는 슬픔의 눈물이라고 한다.

또는 낮에 오는 비는 기쁨의 눈물이고 밤에

오는 비는 슬픔의 눈물이라고 한다.

 

 


이 설화의 배경은 독수리별자리[鷲星座]의 알타이르(Altair)별과,

거문고별자리[琴星座]의 베가(Vega)별을 가리키는

것으로 두 별이 은하수의 동쪽과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데서

유래한 듯하다. 이 두 별은 태양 황도상(黃道上) 운행할 때 가을

초저녁에는 서쪽 하늘에 보이고, 겨울에는 태양과 함께 낮에 떠

있으며, 봄날 초저녁에는 동쪽 하늘에 나타나고, 칠석 무렵이면

천장 부근에서 보이게 되므로 마치 일년에 한 번씩 만나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견우성과 직녀성이 일년에 한 번씩 마주치게

되는 천문 현상은 중국의 주(周)나라 때부터 인식하고 있었으며

한(漢)나라에 이르러서 칠석 설화가 형성되고 여러 가지

풍속이 지방에 따라 발전하였다

 

이 풍속이 당(唐)나라 시대에 주변 민족들에 전파되었는데

우리의 걸교나(처녀들이 바느질 잘하도록 기원하는)

일본의 ‘다나바다마쯔리

(() · ()’는 그 예들이다.

 

칠석날은 별자리를 각별히 생각하는 날이어서 수명신(壽命神)

으로 알려진 북두칠성에게 수명장수를 기원한다. 이 날

각 가정에서는 주부가 밀전병과 햇과일 등 제물을 차려놓고

고사를 지내거나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놓고 가족의

무병장수와 가내의 평안을 빈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풍속이되고 노인들이 사는

산간 마을에서나 볼 수 있을른지...

 

 
심 수봉 - 견우 직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