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說野談函

[世上에 단하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넥타이

bsk5865 2012. 10. 19. 17:48

보낸사람 : 演好마을 운영자 12.10.19 17:12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넥타이| ☞ 자유게시판
설봉헌 |

 

세상에 단 하나의 넥타이, 다야(田屋)  

 

세상에 단 하나의 넥타이를 만드는, 다야(田屋)에 대하여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도쿄 긴자에서 다야라는 넥타이

가게가 개업한 것은 1905년입니다. 창업주는 카지와라

시게죠(梶原重藏)라는 사람이죠.

 

1905년이라면 도쿄에 시내전화가 개통되던 해이고,

영화가 수입되기 시작하던 해. 그가 긴자 5정목에 가게를

낸 것은 최고의 호텔인 제국호텔이 긴자 5정목과

일직선상에 위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초기, 다야의 취급 품목은 서양에서 수입한 신사용품이었습니다.

도쿄에 하이칼라(양풍)바람이 불 때였죠. 처음에는 외국에서

수입한 램프, 서양식 옷, 화장품 등 수입품이 주종이었고,

호박으로 만든 담배 파이프, 최급의 지팡이, T셔츠, 정장을

입을 때 받쳐 입던 실크 와이셔츠 등이 쇼 윈도우에

걸리자 도쿄시민들은 눈이 휘둥그레 졌다고 합니다.

 

 

"다른 가게에 없는 것이 田屋에는 하나 더 있다"

다야의 차별화 전략입니다. 그만큼 물품이 다양했다는 의미죠.

당시에도 田屋는 종업원들의 교육에 철저했습니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와이셔츠나, 지팡이, 담배 파이프 등의

사용방법을 철저히 가르쳐 손님들의 질문에 만전을 기했죠.

손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고객의 취미나 기호 등을 파악한후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물품을 권하는 방법을 쓰면서

고객의 수를 늘려나갔습니다.

 

다야의 출발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초기 13년간 田屋는 외제 고급품 가게로서 이미지를 확보해

나갔죠. 田屋의 두번째 주인은 그의 아들인 카지와라 이치타로

(梶原市太郞)로 넘어갑니다. 이치타로는 도쿄 제1고등학교와

도쿄제대를 졸업한 당대 최고의 학벌을 가진 인텔리였습니다.

 

2대 카지와라 이치타로의 첫 히트 상품은 넥타이였습니다.

그는 수입에 의존하던 넥타이를 국산화시킨 장본인이었죠

그러나 국산 넥타이 생산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는 유럽과 미국 넥타이를 만드는 방법을 영어서적을 통해서

연구하다가 교토의 직물기기 제조회사를 찾아가 넥타이를 짤

수 있는 기계의 제조를 의뢰했습니다.

 

一高(일본 최고의 명문고)와 도쿄제대 출신의 학력을 가진

엘리트다운 의욕이었죠. 교토의 직물기기 공장을 수도 없이

왕복한 끝에 결국 그는 일본 최초로 일본산 넥타이 제조에 성공하죠.

"넥타이의 田屋"라는 별명은 바로 이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카지와라 이치타로는 당대 최고의 인텔리였으나 생활은

검소했습니다.당시 다야는 3층의 목조건물이었는데 자신과

가족은 점포 2층에 살고 점원들은 모두 옥상에 방을 만들어

함께 살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그는 철저한 현장주의자로

살았습니다.그는 "상인으로서 가업이 무엇이다."라는 것을

몸소 실천한 인물입니다.

 

1966년 6월, 다야는 긴자 4정목에 본점 빌딩을 신축합니다.

고급 티크 제를 붙인 아일랜드 풍의 밝은 나무를 인테리어로

썼고 바깥은 옻나무로 마무리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야는

화사한 모습으로 재탄생합니다.

 

그 무렵 다야는 포장지에도 자신의 심벌마크를 넣어 손님들의

물건을 포장해 주죠.1989년 다야는 이른바 "오버텐", 즉 12도

인쇄의 넥타이 시리즈, 비단으로 만든 셔츠 등을 여기서

제조했습니다. 이것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다야 오리지널"입니다.

 

다야의 목표는 세상에 하나뿐인 물건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다야 오리지널입니다. 다야의 넥타이는 세상에

한 개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하나의 시대"의

시작입니다.1995년, 다야는 새로운 방직기를 도입합니다.오리지널

넥타이 오버텐을 더욱더 격조 높게 만들기 위해서였죠. 오버텐이란 말

그대로 넥타이 하나에 열 개 이상의 색이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즉 10도 인쇄를 했다는 것이죠.

 

10도 인쇄라면 세계 최고의 인쇄 기술입니다.

물론 날염기술이긴 하지만 가히 세계 최정상급이라고 볼수있죠.

이것이 다야가 세상에 내놓은 자기들의 자신감입니다.

이후 다야의 오버텐은 일본의 대히트 상품이 되었죠.

 

오늘날 다야는 오리지널, 즉 세상에 하나뿐인 신사양품을

판매하는 한편 해외의 최고급 브랜드를 수입하여 판매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다야에서 생산되는 넥타이 등은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정도로 수명이 길고 또한 오랜 세월

사용하여도 품위와 격조, 매력이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다야 넥타이의 수명은 50년 이상이라고 하죠.

다야의 사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을 담아 물건을 만들어야 그 물건이 오래 간다."라는

것이죠.다야는 최고급 물건을 만들지만 자신의 점포를 찾아오는

고객은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성실하고 진지하게 상담하여

사원과 고객 간의 좋은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야는 2005년 창업 10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종업원 수는 현재 50명이며 긴자 4정목 6-17번지에 점포가 있습니다.

 

다야,지구에 단 하나 밖에 없는 물건을 만들어 고객과의 좋은 관계를

100년이고 200년이고 영원히 유지해나간다는 철학은 한탕주의, 당대에

승부를 내려는 우리의 모습과는 다른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 홍하상 -

****

銀座・田屋と、言っても残念ながら殆どの人が御存じないようです。
舶来雑貨の店として明治38年、銀座4丁目(現在地)に創業という老舗中の老舗。
というよりも、日本のネクタイの歴史は田屋に始まると言っても過言ではありません。
平成17年に創業100年をむかえました。

現在でも高級輸入品を取り扱ってはいますが何と言っても
私のお気に入りはオリジナルのネクタイです。

中でもオーバーテン(OVER—TEN)と呼ばれる
10色以上の極細の色糸(絹糸)で織り上げたネクタイは
他に類を見な い芸術品といえるほどの出来栄え。

遠くから見ればプリント柄と思えるような微細な柄
(モチーフ)が全て極細の色糸で織り上げられてています。
柄(モチーフ)も豊富であり自社工場でつくる完全オリジナル。
まさに鑑賞にも堪えうる芸術品ですがネクタイ本来の機能・
用途でみても勿論、素晴らしい。
何よりも結びやすく締めやすい。
キュッとかすかな衣擦れの音・・・・・男にとって
朝の身支度の中で重要なひとコマです。

私は数年前から愛用していますが、田屋さん以外のものは
次々と人にあげてしまい今では全ての ネクタイが田屋さんのものになってしまいました。
私にとって上京した際の何よりの楽しみの一つが田屋さんで買う1本のネクタイです。

さて今回、上京した際にも当然のことながら立ち寄りました。

この日は、先代の奥様がいらっしゃいましたので記念に一枚、パチリ! 

さて、それではと物色を始め・・・・・3本をチョイスしました。

向かって左側は、上の方に小さく、π(ぱい)の記号が。
そうです! 円周率です。 3.14159265358979323846264338327950288419716939937510.....



私は高校1年の時に51桁まで覚え、今でも覚えています。
色もきれいで、面白いので購入しました。 (笑)

中央は、象形文字です。
他にも幾つか持っていますが、色違いということで購入。



右側は、星座です。
星座のシリーズも幾つか持っているのですが、新作ということで購入。

発色の美しさが、タマリマセン!

ネクタイは男のオシャレの基本中の基本。

コレだけは妥協したくありませんね~

*****

어느田屋 넥타이 마니아의 글를 스크렙하였습니다

*여기말하는 오리지날 넥타이는 가격도 만만치(착하지) 않습니다

 

 
石原 裕次郞 - 銀座の 戀の 物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