寒桜-西方裕之 作詞 たかたかし 作曲 岡千秋
一 逢えるだけでも うれしい人に 逢えば抱かれて 女にもどる 人目忍んで ただ一夜 咲いて短かい 命なら 明日は散れちれ あなたひとりの 寒桜
二 いつか愛して 泣く日がきても いいのそれでも 悔いないわたし 何もいらない あなただけ 燃えて一途に 身をなげる 明日は散れちれ あなたひとりの 寒桜
三 宿の時計を 遅らせたって つらい別れが 二人を離す せめてこのまま もう少し そばにいさせて 腕の中 明日は散れちれ あなたひとりの 寒桜
過去를 품은 神話의 都市 Athens Athens는 優雅하고 우람한 ‘Parthenon’ 神殿과 煩雜하고 시끄러운 아테네의 거리 風景 數 千 年의 터울을 두긴 해지만 같은 民族이 그려 낸 믿을 수 없을 만큼 矛盾的인 모습이었습니다.
‘神話의 都市’에 왔으니 그리스 神話부터 紹介하는 것이 좋을 듯하네요. 그리스神話의 첫머리를 들춰보면 ‘크로노스’ 라는 神이 나옵니다. 그가 다스리는 동안 人類는 戰爭과 罪惡이 全無한 豊饒로운 黃金期를 謳歌했다고 합니다.
그는 神들의 帝王으로 알려진 제우스뿐만 아니라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 하데스, 포세이돈의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그는 自身의 後孫에게 權座를 빼앗긴다는 神託을 듣고는 子息을 잡아먹는 妖祥한 習性을 갖게 됩니다.
이를 참지 못한 제우스의 어머니가 아기처럼 보자기로 싼 돌을 크로노스가 삼키게 해서 子女들을 모두 求해냅니다. 그래서 크로노스는 그리스 神話에서 가장 有名한 神들의 父親이면서도 結局 權座에서 물러나 以後에는 神話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게 됩니다.
이야기를 創造한 그리스 사람들이 훗날 크로노스의 崎嶇한 運命을 따를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授業時間에 배운 대로 西洋文學의 嚆矢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이고,西洋 哲學의 出發點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아테네 空港에서 우연히 본 그리스 麥酒의 廣告 懸垂幕에는 그리스가 輸出한 單語가 5萬1807個라고 자랑스럽게 쓰여 있었고,짐을 나르는 카트에는 ‘神話가 當身의 가슴 속에 살아 있다’고 印刷돼 있을 程度였습니다. 한 마디로 ‘그리스가 없다면 現在의 西歐 文明도 없다’고 主張하는 것이죠.
그러나 問題는 現在의 그리스가 그렇지 못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 文化를 尊重한 로마에게 地中海의 覇權을 넘겨준 後로는 크로노스처럼 유럽의 邊方으로 轉落한 것입니다. 로마 亦是 衰落의 길을 걸었지만, 當時에 깔았던 길들이 如前히 튼튼하게 維持되는 것처럼 오늘도 西洋文化의 단단한 ‘뿌리’ 役割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帝國時期에도 文化的으로 首都 로마보다 優位에 있었다고 自負했던 古代 그리스人들이 들으면 억울해서 痛哭할듯합니다.
그리스 神話를 읽고 想像力이 豊富해진 異邦人이라면 期待感을 안고 아테네에 들어서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이내 失望해서 얼굴을 찡그리게 됩니다. 지독한 交通滯症과 大氣를 뒤덮은 희뿌연 스모그, 유럽 같지 않게 지저분한 길거리가 混合된 그저 그런 大都市라는 印象을 지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20世紀 初 이곳에 머물렀던 歷史家 토인비는 ‘偉大한 文明을 일군 그리스人들은 어디로 가고 초라하고 無題에 찌든 農夫만 남았는가 라고 恨歎 했다는데,100年의 歲月이 흐른 지금도 사람들의 生活이 그다지 넉넉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섣부른 判斷은 暫時 留保해두고. 겉모습만 흘깃거리고 나서 아테네를 한 물 간 往年의 스타로 업신여기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유럽과 北아프리카, 小아시아에서 로마의 遺跡은 恒常 觀光客의 耳目을 끌고 稱頌을 받지만 아테네에서는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大多數입니다. 一例로 제우스 神殿 바로 옆에 있는 Hadrianus 皇帝의 門은 찾는 이가 없어 凄凉하기만 합니다. 비슷하게 생긴 아치가 터키 안탈리아에서는 人氣 滿点이지만. 로마의 스승인 그리스 遺跡이 許多한데,그곳까지 눈길을 줄 餘力은 없습니다.
아테네 市內에서는 地圖만으로는 目的地를 찾아갈 수 없습니다. 自然的으로 發生한 道路를 그대로 維持하기 때문인지, 반듯하지 않고 九折羊腸의 山길처럼 구불구불합니다. 택시技士도 混亂스러워 하는 迷路 같은 都市에서 黃色의 國會議事堂이 버티고 있는 신타그마 廣場(Syntagma.Square)마저 없었다면 이곳이 初行인 사람들은 더욱 混亂스러웠을 것입니다. ‘憲法’을 뜻하는 신타그마 廣場은 아테네의 東西南北으로 뻗어 나가는 中央部입니다. 廣場 앞에는 시민들이 한가로이 쉴 수 있는 公園이 造成돼 있습니다.
아크로폴리스와 아고라 사이에 위치한 플라카(Plaka)는 商店, 레스토랑, 술집이 密集해 있는 서울의 仁寺洞 같은 곳입니다. 산토리니에서 처럼 紀念品들은 主로 푸른빛을 띠고 있었고 보기만 해도 시원한 옷은 하얀色이 많았습니다.
플라카를 빠져나와 骨董品을 파는 가게가 즐비한 모나스티라키(Monastiraki)로 向했습니다. 예전에는 어느 家庭집에서 貴重品 取扱을 받았을 蓄音器와 出處를 알 수 없는 陶瓷器, 工場에서 多量으로 찍어낸 것 같은 싸구려 놋쇠用品이 어지러이 널려져 있었습니다. 隣近 市場에서는 그리스의 特産物이라 할 수 있는 가죽 샌들과 수세미가 지천이었는데, 정작 그리스 사람 中에는 가죽샌들을 신고 있는 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다시 아리아드네의 실을 받고 迷宮으로 떠난 테세우스처럼 複雜한 小路를 通過해 待望의 아크로폴리스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다른 유럽의 都市들은 建築物의 높이를 敎會의 尖塔 아래로 制限하는데 反해 아테네에서는 아크로폴리스가 基準입니다. ‘높은 都市’라는 뜻의 아크로폴리스는 매우 높게 느껴지지만 實際로는 150m 內外의 언덕입니다.
미끌 미끌한 大理石 바닥을 밟고 육중한 門을 지났습니다. 主人公인 파르테논 神殿은 아직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하늘로 치솟은 그리스 기둥의 威嚴이 傳해져 왔습니다. 어린 時節부터 寫眞으로만 숱하게 봐왔던 파르테논 앞에 선 瞬間, 꿈인가 했습니다. 다만 形體가 穩全하지 않아 아쉬울 뿐이었습니다. 17世紀에 터키 軍이 쏜 砲彈의 破片에 맞아 神殿이 損壞됐고, 지붕의 一部는 英國에게 넘어가 大英博物館에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테네 올림픽 期間만이라도 가자 간 文化財를 빌려달라고 하였는데도 不應하였다네요. 아이러니컬하게도 戰爭의 女神인 아테나의 보금자리를 破壞한 原因은 싸움과 欲心이었습니다. 문득 人間들의 紛爭이 끊이지 않는다면 먼 훗날에는 傷處 입은 파르테논 신전마저도 살아질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소크라테스(Socrates,)가 한때 獄苦를 치렀다는 洞窟 監獄도 구경하였습니다.
作成者 黃圭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