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の土俵-村田英雄 作詞 村田英雄 作曲 村田英雄
一 やぐら太鼓が 隅田の川に どんと響けば 土俵に上で 男同士の 血汐はたぎる 負けてなるかと どんとふつかれば まげも乱れる まげも乱れる 大銀杏
二 今日はこの手か 明日またあの手 胸に思案の 土俵入り仕度 諦めたまわしを 両手でたたき 今日はやるぞと どんと四股ふんで 笑い浮かべて 笑い浮かべて 花道へ
三 無事に迎える 千秋楽の 汗もにじんだ この十五日 今場所済んだか 来場所目指し けいこ重ねて どんと体当たり 男勝負の 男勝負の 道を行く
土俵入りと 横綱土俵入り
土俵入り 土俵入り(どひょういり)란 相撲大會에서 相撲選手가 씨름판(土俵) 위에서 行하는 儀式입니다. 横綱가 行하는 横綱土俵入り와는 区別됩니다.
十両(じゅうりょう=階級)와 幕内(まくのうち=上位階層)의 選手가 各各의 對戰 開始前에 横綱를 除外하고 모든 選手가 實施합니다.
花道(はなみち)에 化粧廻し(けしょうまわし)한 선수가 모여 行司(ぎょうじ=審判役)가 先導하면서 낮은 順序대로 시름 판에 오릅니다. 全員이 씨름판에 오르면 拍手를 치고 오늘 손을 들어 化粧廻し를 하고 兩 손을 들어 올린다고 하는 一連의 動作을 行합니다.
横綱土俵入り 横綱土俵入り(よこづなどひょういり)란 相撲大會의 横綱(よこづな=最高位階級)가 本場所(ほんばしょ= 日本相撲協会에 의해 定期的으로 行하는興行)에서 幕内 對戰前이나 巡廻公演 等에서 行하는 土俵入り입니다 土俵入り의 形態로는 雲龍型과 不知火型가 있습니다.
横綱土俵入り는 幕内의 土俵入り가 끝난 다음에 露払い(つゆはらい)와 太刀持ち(たちもち)의 各1名,合計 2명의 選手가 따르게 합니다 그 役은 通常 横綱와 같이 生活하는 地位가 関脇(せきわけ=小結 위의階級)以下의 兄弟弟子의 選手가 맡고 있습니다.
土俵入り에서는 대체로 손뼉을 치고 발을 치켜 올렸다가 다시 내려 밟습니다 발을 밟을 때는 観客으로부터「よいしょ」라는 口令을 듣게 됩니다
露払い나 太刀持ち라도 방(部屋) 다르면 横綱와도 対戦하는 境遇가 있는데 이런 境遇에는 当日에 横綱土俵入り를 꺼려 다른 選手를 따르게도 합니다.
雲龍型 발을 치켜 올릴 때 오른손을 가슴近處에 맞혀 폅니다 많은 横綱가 이 型을 選択하고 있는데 最近에는 貴乃花・武蔵丸・朝青龍가 雲龍型을 따랐습니다 이 4人의 横綱 모두가 幕内優勝을 10回 以上을 이루어내고 横綱의 地位를 4年 以上 지켰다고 하여 横綱로서 長壽의 型이라는 하나 이와 反對로 短命인 境遇도 있었습니다.
不知火型 横綱가 씨름판에 들어갈 때 兩손을 펼치는 이 型은 太刀山가 16代木村庄之助에게서 배운 形態로 여겨집니다 大正初期에 最強을 자랑하던 太刀山 外에도 昭和前期 史上 最長在位 記録을 樹立했던 羽黒山(はぐろやま)가 이 型을 選択하고 있었습니다 堂々하게 迫力 있는 스타일로 팬이 많았다고 하지만 이型을 選擇한 横綱 吉葉山이 横綱 昇進이 33歳의 高齢에 그 뒤 4年이나 勤務했음에도 相關없이 이것을 記者가 錯覺된 記事로「不知火型は短命」으로 表現하여 不幸하게도 玉の海가 在位 中에 夭逝 함으로서 不吉한 것으로 되었습니다.
平成 以後에 誕生한 横綱로는 白鵬 外에 旭富士 3代若乃花의 3人이 不知火型을 選擇하고 있습니다.
雲龍型은 攻守兼備,不知火型은 激甚한 攻撃을 나타낸다는 説이 巷間에 믿음을 주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10代 秀ノ山가 昭和初期에 両者의 차이를 瞬間的으로 對答한 것이 後에 至當한 것 같이 流布된 갓으로 根拠는 없습니다.
作成者 黃圭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