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京さすらい歌-石原裕次郎・浅丘ルリ子 作詩 萩原四朗 作曲 上原賢六
一(男) ビルの谷間の 人波が 寄せて渦巻く 日の昏れ時は さすらいの 胸に憂いのドラが鳴る 銀座は あ-銀座は 海のない港
二(女) 劇場のネオンに 飾られた クレオパトラの 悲しい笑顔 呼びかけて 言葉通わぬ人の子も 目頭 あ-めがしら 濡らす数寄屋橋
三(男・女) 遠いふるさと 遠い人 花の都の 春待ち侘びて うすれゆく 水の夕陽に 目をやれば 皇居の あ-皇居の 杜も霞の中
孔子•孟子 等 中國 聖賢 이름에 왜 '子'를 붙이나 孔子•孟子•荀子 等 人物에 붙는 '子'字는 學識 있는 스승에게 붙이는 一種의 敬稱입니다. 어느 分野에서 一家를 이룬 偉大한 사람에게 붙이는 尊敬의 意味가 있는 接尾辭이지요. 요즘 말로 하면 '~선생님' 程度의 뜻입니다. 孔子와 그 弟子들의 對話를 記錄한 '論語'에는 '자왈(子曰)'로 始作하는 文章들이 나옵니다. 쉽게 옮기자면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程度가 되겠지요. 中國 聖賢 中에 '子'字를 쓰는 人物은 孔子•老子•莊子•曾子•孟子•荀子•管子•韓非子 等입니다. 孔子나 孟子는 儒家, 老子는 都家, 孫子는 兵家, 荀子•韓非子는 法家에서 一家를 이룬 人物들입니다.
春秋時代 魯나라의 大學者이자 儒敎의 始祖로 떠받들어지는 孔子의 本名은 孔丘. 姓인 孔에 스승의 意味인 子가 붙어 孔子라 불리는 것입니다. 戰國時代 儒敎 思想家인 孟子의 本名은 맹가(孟軻)이며, 마찬가지로 姓인 孟에 스승을 뜻하는 子 字가 붙은 것입니다.
道家의 創始者인 老子의 이름은 李耳. 姓은 李, 이름은 耳이며, 字는 聃(담)이어서 노담(老聃)이라고도 합니다. 都家의 代表的 思想家인 莊子의 이름은 莊周, 性惡說을 主張한 荀子의 本名은 荀況, '孫子兵法'의 著者인 孫子는 本名이 孫武입니다. 孔子를 孔夫子로 稱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夫子'는 ‘子'보다 더 높은 極尊稱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退溪 李滉과 尤庵 宋時烈에게 '子'字를 붙여서 각각 '李子' '宋子'라 부르기도 합니다. 實學者 이익(李瀷), 은 退溪 李滉의 글 가운데 좋은 것을 뽑아 엮은 ' 李子粹語'라는 책에서 李滉을 李子로 쓰고 있지요. 李瀷은 "우리 東方 사람이 尊貌할 분으로는 退溪보다 앞설 이가 없으므로 '李子'라 부른다"고 했습니다.
朝鮮後期 性理學者 宋時烈의 境遇는 그가 死亡한 後 刊行된 文集을 ' 宋子大全'이라 했는데, 宋나라 學者였던 朱熹의 '朱子大全'을 본떠서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전광진 成均館大 敎授는 "아들 子 字의 原形은 포대기에 싸여 있는 갓난아이의 귀여운 모습을 본뜬 것으로 '갓난아이'가 原來 뜻인데, 後代에 오면서 스승을 뜻하는 極尊稱으로 意味가 擴大됐다"고 말합니다. 한형조 韓國學中央硏究院 敎授는 "原來 '아들 子'字는 甲骨文에서 貴族들의 子弟나 血統을 意味하는 象形文字로 쓰였다가 孔子 時代에 와서 平民들도 배울 수 있도록 敎育을 開放하고 身分 制度가 變하면서 學識과 敎養, 人品을 갖춘 사람들에게 '子'字를 붙이기 始作했다"고 했습니다.
作成者 黃圭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