過去資料函

奬忠檀公園에도 歷史가 흐른다

bsk5865 2013. 8. 28. 15:29

보낸사람 : 演好마을 운영자 13.08.28 09:11

 

奬忠檀公園에도 歷史가 흐른다 |☞ 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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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단공원에도 역사가 흐른다

장충단공원하면 동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우리들은 하나쯤은 추억을 공유할 것이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29세의 나이로 요절한 중저음의 천재가수 배호의 <안개 낀 장충단공원> 이리라. 지금도 여전히 식을 줄 모르는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 가요는 우리가 군대를 제대하기 시작한 1967년에 발표된 국민가요다.

다음은 왕년의 정치 1번가였던 장충단공원!

1957년 제1공화국 자유당의 독재를 규탄하기 위해 야당의 국민주권옹호투쟁위원회 주최로 서울시민 약 20만명이 모인 시국강연회에 자유당의 사주를 받은 정치깡패 이정재의 행동대장 유지광 등이 연사 조병옥 박사를 테러하자 이를 육탄으로 막은 김두한.

1971년 제7대 대통령선거시 김대중 후보의 명연설을 듣기 위해 약 100만명이 구름같이 몰려 들었던 장충단공원.

그만큼 드넓었던 장충단공원은 원래 면적의 절반 정도가 신라호텔의 영빈관, 국립극장, 자유센터, 서울타워호텔 등에 넘어가고 지금은 관리상의 사정으로 그 이름마저 빼았기고 남산공원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유신시절 체육관대통령을 제조하던 장충체육관.

장충체육관은 1963년 2월 1일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체육관으로 개관된 곳이다. 이 체육관은 필리핀의 원조로 필리핀 건설화사가 지었다.

 

당시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부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필리핀 국민 중 3분의 1이 절대 빈곤층이라고 하니 정치와 지도자가 민생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지은지 50년이 넘어 서울시가 지금 236억원을 들여 리모델링 공사 중이다.


60년대 후반 오늘날 프로야구 만큼이나 인기를 끌었던 프로레스링의 양대 스타, "백드롭의 명수" 장영철과 "박치기왕" 김일의 박진감 넘치는 결투에 온 국민은 얼마나 열광했는가.

족발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기 전에 족발을 안주 삼아 소주 한잔 마시고 싶으면 버스타고 한번쯤은 찻았던 장충동족발집.

장충단은 을미사변(1895) 때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많은 병사들이 일본군에 대항하다 희생된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해 1901년에 고종황제가 사당을 짓고 장충단 비석을 세워 매년 봄 가을로 제사를 모신 곳이다.


 

그러나 일제는 1910. 8 에 장충단을 폐사하고 창경궁에 벚꽃나무릉 심고 동물원으로 만들었듯이 1920년에 벚꽃나무 수천그루를 심고 여기를 장춘단공원이라 불렀다.

장충단공원인가 장춘당공원인가에 관하여 약간의 혼선이 있는데 <염상섭의 소설어

사전>을 보면 장춘당은 오기라고 되어 있다. 이는 아마 일제가 여기에 벚꽃나무를 심고 봄(春)자를 강요하려고 와전된 것이 이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해방후 동작동 국군묘지가 조성되기 전 까지 한때 국군묘지로 사용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는 을미사변 때 희생된 병사들의 영렬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장충단과도 연관을 지으면 의의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청계천에 흐르는 수량을 측정하던 다리인 수표교가 1959년 청계천 복개공사 때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따라서 2003년 청계천 복원 시 청계천에 만든 수표교는 짝퉁이다. 한때 수표교를 청계천으로 다시 옮기려고 했으나 도로 폭이 맞지 않아 불발되었다 힌다.

 

장충단하면 불멸의 가수 배호의 <안개 낀 장충단공원>을 안 불을 수 없다. 향년 29세에 세상을 떠난 배호(1942~1971)는 중저음의 특색 있고 호소력 깊은 음색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는데 아까운 사람이 너무 일찍 갔다.

 

 

안개낀 장충단공원

 

안개낀 장충단공원 누구를 찾아왔나

낙엽송 고목을 말없이 쓸어안고 울고만 있을까

 

지난날 이 자리에 새긴 그 이름 뚜렷이 남은 이 글씨

다시 한 번 어루만지며 떠나가는 장충단공원

 

비탈길 산길을 따라 거닐던 산기슭에

수많은 사연에 가슴을 움켜쥐고 울고만 있을까

 

가버린 그 사람의 남긴 발자취 낙엽만 쌓여있는데

외로움을 달래가면서 돌아가는 장충단공원

                                                                                淸閑 執筆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