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에 떠 있는 섬, 무섬마을
낙동강으로 흐르는 내성천에 물이 넘치면 다리는 떠내려가곤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예 내성천 물길에 순응해 다리를 만들었으니, 다리는 사행(蛇行)하는 낙동강처럼 태극무늬를 소유하게 되었다.
이 사행하는 강물이 북쪽 영월에서는 청령포를, 동쪽 안동에서는 하회마을을, 남쪽 예천에서는 회룡포 마을을 만들었다. 그 가운데에 있는 이 마을은 무섬마을이다. 무섬, 물 위에 떠 있는 섬이라는 뜻이다. 태백산 줄기가 선심 쓰듯 던져준 다람쥐꼬리 같은 작은 뒷산을 빼면 무섬은, 말 그대로 섬이다. 한자로는 수도리(水島里)다.
그 덕에 삶은 신산했다. 오죽하면 “외나무다리를 건너 꽃가마 타고 시집 왔다가 죽으면 이 다리로 상여가 나갔다”고 했을까. 세상 좋아진 지금, 다리는 신산함 대신에 외지인들에게 막연한 향수와 구체적인 호기심을 안겨다 준다. 향수는 선비들의 삶에 대함이고 호기심은 다리 그 자체다.
생생한 과거로 남은 고택
40여 가구가 남은 마을은 몇 집을 빼면 17세기 이후 그리 변하지 않았다. 좁은 골목을 걷다 보면 앞뒤양쪽으로 담벼락 너머 고택들이 보인다. 100년이 넘은 집들이 열여섯 채, 그리고 문화재와 민속자료로 지정된 집이 아홉 채다.
박제된 유적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생생한 과거다. 낮 동안 놀러온 바깥사람들에게 마당까지 개방된 이 집들은 밤에는 고택 체험을 위한 숙소로 쓰인다.
그리고 마을을 에워싼 둑을 내려가 다리를 건넌다. 너른 백사장과 얕은 강심을 가로질러 거대한 태극무늬를 그린 다리다. 백사장 한켠에는 널뛰기 하나가 누워 있다. 가끔 오리 떼가 내려와 앉는다. 산에는 나목(裸木) 숲이 가득하다.
그 풍경을 맘속에서 흑백으로 전환하면 바로 진경산수다.
1000년을 산 은행나무의 전설
먼 곳에서 영주까지 왔으니, 무섬마을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석사로 가고 소수서원으로 걸음을 옮긴다. 전통적인 영주의 볼거리다. 산책하기 좋은 공간이라는 겉만 보면 소수서원은 절반만 보게 된다. 그 곁 1000년을 산 은행나무를 대면하면 나머지 절반을 볼 수 있다. 이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