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共和6期函

애들아, 世越號 304명은 누구를 바라보고 있을까?(整理)

bsk5865 2017. 3. 2. 12:12

노을05 운영자 17.03.02 10:17


애들아, 세월호 304명은 누구를 바라보고 있을까?


이글은 2015. 2. 9. 오후 4시 49분에 인터넷에 실린 글입니다.  진실을 알리는 일은 정의이며,

이 진실과 정의를 기르고 지키기 위해 우리 대한민국은 표현의 자유를 국민에게 부여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글을 소개합니다

진상을 알려줄게


노무현 정부때 부도난 세모그룹이 2000 빚을 탕감 받고 청해진 해운을 설립하면서

유병언의 구원파 종교 집단이 재기에 성공했지. 그 청해진 해운 고문 변호사가 누군지 알아?

바로 문재인이야. 그러니 어떻게 부도를 벗어나고, 누구의 도움을 받았으며,

왜 문재인을 고문변호사로 삼았는지, 이해하겠지?


이후 유병언은 광우병 난동 때 구원파 신도들을 동원해 유모차 부대를

시위대에 투입하는 등 열심히 좌파 진영을 도왔어.


그 이후 정권창출에 또 다시 실패한 좌파들은 국정원 여직원 숙소에서 발견된 PC 의 댓글을 빌미삼아

부정선거 드립을 치면서 일 년 반 동안 정국을 마비시키며 장외투쟁에 힘 썻어.

마침내 지방선거를 앞둔 박근혜 정권 2년 차에 최악의 지지율을 보이던 야당에게

기가 막힌 돌파구가 찾아오는데 그게 바로 세월호 사고지.


희한하게도 다른 인근학교들과 달리 수학여행을 가게 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많이 탄 세월호가

전라도 앞바다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한 거야.

그때가 새학기 학생들 실력을 가늠해보는 진단평가 일제고사가 치뤄지던 때였어.


그런데 이 딘원고만 시험을 보지 않고 수학여행을 떠난 거야 왜 전교조가 일제고사라고 기피하던 시험 있잖아. 지금도 치러지고 있는 거 말이야.


 세월호가 지나간 곳이 진도 앞바다 관매도 근방 맹골 수로였어.

물살이 거세 배 운항에 극히 조심스러워야 하는 지점이지.

그런데 이곳을 선장이 아닌 경험도 없는 3등 항해사가 배를 몰게 된 거야. 

경험이 없는 이 친구가 갑작스럽게 배를 선회하면서


과적한 짐들과 차량들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급격히 배가 기울기 시작했지.

배가 기울자 당황한 승객들은 갑판위로 올라왔지만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들 더러 선실에 머물러 있으라고 하며 그 긴급한 상황에 구조요청조차 하지 않으며 마치 배가 침몰하기위해

필요한 시간을 버는 듯한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보였어.

최초 구조요청을 한건 배의 선원들이 아니라 선실에 있던 단원고 학생이었지.


해경은 좌표를 물었지만 학생이 알리가 없었어. 해경은 세월호로 무선을 보내 좌표를 확인하고 출동했지.

해경이 세월호로 무전을 보내며 출동하는 동안 시간이 걸리니 승객들을 갑판위로 피신시키라고 명령했지만

선장과 선원들은 이를 무시하고 자기들끼리만 무전을 치며 빠져나와 가장 먼저 구출되었어.


선장과 선원들의 안내방송을 듣고 선실에 머물러 있었던 300명가량의 승객들은 해경이 도착했을 땐

너무 배가 기운 상황이라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모두 배와 함께 가라앉고 말았고

안내방송을 무시하고 갑판위로 나와 있던 170여명의 승객들은 해경들에게 모두 무사히 구출되었어.


공교롭게도 구출되지 못한 승객들 대부분이 단원고 학생들이었고 해경이 도착했을 땐

이미 배가 40도 이상 기울어있던 상황이라 선실 안으로 들어가 구출하기엔 이미 때가 늦은 상태였어.


한명이라도 더 구출하겠다고 들어갔던 일부 승객들과 선생님들은 모두 다시 나오지 못하고 목숨을 잃고 말았지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관료들과 행정가들이 현장에 도착해 사고 수습과 구조를 위해 힘썼지만


사실상 초기 대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미 배와 함께 가라앉은 사람들을 구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어.  대통령은 이때 무려 19차례 보고를 받았고 7차례나 구조를 지시했지.


어린 학생들의 어이없는 죽음에 온 나라가 슬픔에 빠졌고 국민들이 함께 슬퍼하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사고 수습현장을 지켜봤지만 구조 자가 나온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했지.

그때부터 일부 언론과 종편들의 선동방송이 시작된 거야.


사실상 선박회사가 제공한 자료에 의존할 수 없는 승객신원조차도 제대로 파악 못하고 허둥지둥 한다면서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고 잠수함이 아닌 이상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에어포켓 드립을 치며 유가족들을 희망고문을 했지.


허언증 환자를 불러다 다이빙벨 선동방송을 하고 뉴스진행도중에 처 울면서

감성팔이를 하던 JTBC는 황색저널리즘의 극치를 보여줬어.


유가족들의 슬픈 감정을 어떻게든 유병언의 청해진 해운이 아닌 박근혜 정부에 대한 악다구니로 돌리려는

처절한 선동 질이 각종 종편과 언론노조 방송들에 의해 근 몇 달간 끊임없이 자행되었지.


그 유명한 대통령 새월호 7시간이 시작된 거야. 정윤회와의 밀회설부터 온갖 잡스런 소문이 퍼지다가, 

그 시각에 머리를 손질했느니, 성형을 했느니, 밥을 먹었느니, 참으로 치졸한 소문을 낸 거야.


대통령을 잡을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지.

이때 기다렸다는 듯이 등장한 노무현을 상징하는 듯한 노란 리본은 전국을 휩쓸었고

시위대들은 노란리본을 달고 나와 한명도 못 구한 무능한 박근혜 정부는 물러가라면서 길거리에 나와 열심히 선동을 했어.


각종 괴담과 루머가 빠지면 섭섭하지. 세월호 국정원 소유설, 세월호 미 잠수함 충돌설 이런 말 같잖은 의혹들을 생산해 내며


사고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유가족들까지 합세해 몇 년을 넘도록 저러고 있는 거야.

사고의 진실을 알고 있을지 모르는 구원파의 수장 유병언은 검찰 조사를 피해 도망 다니다


전라도에서 결국 사체로 발견되었고 전라도 경찰들은 유병언 수배령이 전국에 내려졌는데도 불구하고

발견된 유병언 사체를 보름 넘게 정부에 알리지 않고 방치해 결국 부검을 해도 사인을 규명할 수 없게 되었지.


유병언이 죽음으로써 노무현 정권당시 부채 탕감 받고 청해진 해운을 설립인가 받기 위해 정치권에 뿌렸다는

황금골프채 로비설도 그냥 묻힐 수밖에 없었어. 그리고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은 야당에게 절반 가까운 지역에서 참패하며 특히 교육감 자리는 거의 모두 뺏겨버렸지.


이게 가감 없는 사건의 진실이야. 수만 장의 증거자료와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사고로 인해 기소되고

사법처리를 받았지만 유가족들과 일부 좌파단체들은 아직도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저러고 있지.

마침내 이 여세를 몰아 세월호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되고 유가족에 제공되는 각종 특혜와 5억 이상의 보상금 이외에도


민간인에게 기소권 수사권까지 주면서 저들이 원하는 진상규명까지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어.

하지만 노후 선박의 과도한 증축, 과적, 평형수 조작, 그리고 맹골 수로에서의 급선회라는 사고 원인과

그에 따른 관련자 사법처리가 이미 마무리된 시점에서 민간인에 의한 청와대 공격이나 법치를 훼손하는

과도한 월권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시행령을 일부 수정해 기소권 수사권을 검찰이 갖도록 일부 시행령을 개선했지.


그때 문재인의 세월호 고문변호사 행각도 묻혀진 거야.

그걸 눈뜨고 못 보던 야당이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가 정부 시행령을 고치도록 명령할 수 있는 법을 발의했고  사실상 사회주의 이념을 가지고 있는 걸로 보이는 여당의 유승민 원내대표가 청와대와 사전 조율까지 마쳤다고 동료의원들을 속여 가며 날치기로 이 법을 통과 시킨 거야.


급기야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를 하기에 이르렀고 유승민은 끝까지 분탕질을 하며 버티다

그 책임을 지고 원내대표 사퇴를 하기에 이르렀지.


◉세월호 사고 이후에도 TV 뉴스를 통해 태국 비행기 추락사고,

◉독일 비행기 추락사고 등 원인 미상이나 조종사의 정신이상에 의한 사고소식들이 외신에 의해 끊임없이 흘러나왔고,

◉최근엔 중국에서도 여객선이 침몰해 200명 넘는 사람이 죽는 사고가 발생했지.


하지만 정부를 비난하고 대통령이 책임지고 물러나라는 시위나 방송은 본 적이 없어.

그게 일 년 넘게 지속되는 나라도 없었고, 이런 현상은 대한민국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야.

◉과거 500명가량이 사망한 삼풍 참사,

◉200명 가량이 사망한 대구지하철 참사 때도 사고수습은 중앙정부가 아닌 지자체에서 했었고


대통령이 현장을 방문한다거나 대국민 사과방송을 한다거나 한 적도 없었고

방송이 이런 인재사고를 정부나 대통령 책임으로 몰며 종일 편파방송을 하는 경우도 없었지.


사고수습을 위해 현장으로 급히 달려간 박대통령은 온갖 욕을 다 먹고

급기야 사고 직후 7시간 행적을 증명하라는 얼토당토않은 요구와 함께


정윤회 루머 설까지 언론에 의해 퍼뜨려지며 갖은 추후 십상시 거짓 선동 질과 루머에 시달리며

모든 측근들이 검찰조사까지 받는 곤혹을 치뤘지.


이런 현상은 광우병 난동 때부터 이어진 우리나라의 집단 히스테리가 이상하게 발전된 케이스라고 보여.

아니나 다를까 광우병 난동 때 그 배후로 지목되었던 각종 노동단체와 좌파 시민단체 교육단체들이


세월호 유가족들의 4.16 연대에도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냈지.

광우병 거짓소동은 결국 이명박 정부가 취임 100일 만에 백기 투항함으로써 일단락되었고


그 후 이명박 정부는 모든 정책과 인사를 야당 허락 하에 진행하며 사실상 식물정부가 될 수밖에 없었어.

세월호 사고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배경이 여기에 있지.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어.

자식 잃은 슬픔이야 이루 말할 수 있겠냐마는 그런 아픔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과

일부 유가족들의 비뚤어진 분노가 도대체 뭘 더 이상 규명하라고 하는 건지 모르는 세월호 진상규명 요구의 실체야.


 그런데 웃기게도 세월호 고문 변호사였던 문재인이 세월호 피해 채권확보 책임자라는 거야.

세월호로 인해 국가가 입은 피해를 유병언이에게서 받아내는 책임자라는 뜻이지.

아직까지 한 푼도 못 받아 낸 것으로 밝혀졌어. 어때 웃기지? 국민들은 이 사실을 몰라.

모르면 되겠어? 지금도 세월호 7시간은 따지면서 말이야.



엊그제 헌법재판소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친구를 보았어. 그 피켓엔 이렇게 쓰여 있었지.

“세월호 304명이 지켜보고 있다.”

아마 원통한 넋이 된 304명은 이미 저승에서 다 알고 있을 거야. 귀신이 모르는 게 있겠어?


이런 진실을 아는 304명이 보고 있다면, 과연 누구를 지켜보고 있을까? 난 그게 궁금해져, 친구야.


 2017년. 2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