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世諱 枝茂以下世系와墓碑改竪
2次編譜 癸亥譜(1683) 當時 關係者들의 錯誤로 14世를 愛得으로 誤記된채로 이런 傍註가 揭載되어 내려왔다.
舊譜 14世 愛得 傍註를 풀어보면 대강 이런 內容이다
乙酉譜(1825)에서 말하기를 丙戌譜(1766)를 살펴보니 愛得에 一子가 있다고 했고 또 癸亥譜(1683)도 같다. 乙酉譜(1825) 新單
에 子孫이 5代까지 내려갔기에 그 宗中에 물어보니 朴春祐(註; 18世諱 師德)가 玄孫이라고 하며 戶籍單子를 주기에 살펴 보니 朴枝完(註; 16世諱 文植) 나이 61세 貫鄕은 羅州(관향이 全南 羅州이기에 羅州朴氏라고도 했고 後에 潘南으로 統一했다) 父 莫奈 (註; 15世諱 世基) 祖 豊連(註; 14世諱 혁) 曾祖 愛得 (註; 13世諱 枝茂)로 되어 있다. 莫奈와 望來는 音이 相似하나 新單과 戶籍이 같지않아 이를 서울에 가서 살펴보라고하니 不應함으로 달리 詳考할 길이 없어 아직 그대로 두었다.
要約하면
新單,,,,,,,13世 枝茂 14世 愛得 15世 望來 16世 枝完
戶籍,,,,,,,13世 愛得 14世 豊連 15世 莫柰 16世 枝完 이다
當初 錯誤의 原因은 13世諱 枝茂, 愛得은 同一人이고 族譜上 行列 이름이 枝茂, 집에서나 一般的으로 愛得으로 通했으며 따라서 13世諱 枝茂 다음으로 14世諱 혁 은 族譜上 行列이고 豊連은 집에서 一般的으로 通한 이름이다.
13世諱 枝茂의 一般的 이름인 "愛 得"을 14世에 올려 놓았다. 한사람의 두가지 이름을 兩代에 나누어 올린 큰 실수를 누가 했던 當時 修單員의 不注
意가 이런 엄청난 結果를 빚었다.
이를 다시 바르게 고쳐 要約 整理하면
13世諱 枝茂 (愛得).....14世諱 혁 (豊連).....15世諱 世基 (莫柰)......16世諱 文植 (枝完) 이다
이를 밝힌 자료는 下村 棟陽아저씨와 勝麟, 勝文 3人이 1964, 9, 伐草를 爲해 갔던 榮州 伊山通 雨勿來谷 14世諱 혁 (豊連) 의 墓碑를 寫本해온 碑文에 그 世系가 明確히 밝혀져 있다. 지금은 本洞 後谷으로 緬奉하였고 原文대로 碑를 改竪해 놓았다.
이와 兼해서 15世諱 世基 (莫奈)의 墓所도 榮州 安定通 巨次谷에 있었는데 本洞 後谷으로 緬奉했으며 이 碑도 原文대로 改竪했다.
이 兩代의 碑 改竪는 2001年 6月 아버지 墓所에 둘레石 永慕碑 竪立의 大役事를 할 때 같이 했으며 그 費用은 이와는 別途로 門中에도 依存하지 않고 세째 兄 (勝旭)과 내가 負擔했다. 그 理由는 緬奉後 1989년과1990년에 門中에서 세웠었으나 誤謬가 있어 埋沒廢棄했고 이를 다시 門中에 擧論하기가 어려워서였다. 參考로 다시 上系를 살펴보면 8世諱 秉鈞 (判官公, 우리 分派祖)....9世諱 숙 (承旨公, 安東으로 落南)...10世諱 珩 (參判公, 榮州로 移居)....11世諱 承文 (敎授公).....12世諱 海 (禦侮公).....13世諱 松茂 (宗孫),,,,우리는 동생인 諱 枝茂의 後孫이며 墓는 먹골에 있다....
10世, 11世, 12世 까지의 墓所는 榮州 助臥 (지누)에 三代를 나란히 뫼시고 있으며 지금은 宗孫(度陽)이 돌보고 있다.. 이상은 꼭 알아두어야할 우리 문중의 이야기이므로 여기에 적어둔다.
(2008, 5, 2, 들길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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