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2일 금요일, 오후 22시 36분 10초 +0900 |
高麗葬'(고려장)
고려 시대에는 '高麗葬'이란 風習(풍습)이 있어서 父母가 늙고 病들면
子息들이 지게에 엎고 갖다 버리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父母에 對한 孝를 强調(강조)하는 나라에서 실제로 있었던 풍습인가?
果然(과연) 고려 時代에 이 '고려장'이 있었던가?
解答(해답)부터 얘기하자면 철저히 꾸며진 이야기이다.
그것도 日帝에 依(의)해서 날조된 事實이라는 것이다.
고려장이라는 말이 具體的(구채적)으로 나오는 경우는 옛날 資料(자료) 그 어디에도 없다.
고려시대까지 病者(병자)를 산속 깊이 내다 버리는 風俗이 있었다는 記錄(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병자란 傳染病 患者(전염병 환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特히 고려시대에는 不孝罪(불효죄)를 반역죄와 더불어 매우 嚴(엄)하게 處罰(처벌)하였다.
이런 社會에서 고려장이란 風俗(풍속)이 있었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면 고려장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고려장이란 말은 日帝時代(일제시대)부터 쓰이기 始作했는데 그 理由(이유)조차도 사악하기 그지없다.
고려장이란 用語(용어)를 만든 이유란 즉 우리나라 文化財(문화재)를 盜堀(도굴)하고자 만들어낸 용어라는 것이다.
全國을 뒤져 文化的 價置(문화적 가치)가 있어 보이는 物件(물건)은 닥치는 대로 日本으로 반출하더니 급기야는 무덤의 副葬品(부장품)까지 노리게 되었다.
일본인이 朝鮮人 祖上(조선인 조상)의 무덤을 파헤치기가 힘들었다.
조선인 人夫들은 남의 무덤을 파헤치는 일을 꺼려했는데 이는 韓民族(한민족)의 정서상 當然(당연)한 것이었다.
어찌 남의 무덤을 파헤친단 말인가?
예전부터 죽은 사람의 무덤에는 靈魂(영혼)이 있다고 믿었고 '오페르트 도굴 사건' 등에서도 보듯이 남의 무덤을 도굴하는 것은 가장 罪質(죄질)이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자 日本人은 조선인의 敬老孝親 精神(경로효친 정신)을 利用해 고려장이란 말을 만들어 냈는데
"朝鮮에는 高麗時代(고려시대)부터 高麗葬(고려장)이란 게 있었다.
父母를 산 채로 내다 버리는 못된 風習(풍습)이니 여기 묻힌 사람은 自己 부모를 生으로 高麗葬시킨 놈이므로 이 무덤은 파헤쳐도 괜찮다." 라는 논거로 조선인 인부를 회유하여 무덤을 파헤치게 되는 것이다.
예로부터 韓民族은 忠孝(충효)를 으뜸으로 삼고 충효의 實踐(실천)을 平生의 德目(덕목)으로 삼아 실천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자신의 親父母(친부모)를 산채로 버리는 行爲(행위)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精神이 일제의 얄팍한 商術(상술)에 利用되어 고려장이란 用語(용어)를 만들어 내게되고
이런 용어가 버젓이 敎科書(교과서)에 실리는 우를 우리는 범하게 된 것이다.
하루 빨리 고쳐야할 대목이다.
--모셔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