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낸사람 : 소담엔카 운영자 11.05.04 06:46
隨筆- 미리내 일기 ⊙....
미리내 일기
黃 晋 燮(수필가)
00년 3월 22일 <부활 성야>
미리내 성지 안내봉사자 교육은 진행될수록 진지성을 더해가고 있다.
평소 좀 더 깊이 알고 싶었던 한국 천주교 교회사와 성인 김대건신부님에 관하여 깊이 있는 공부를 하게 된 것을 무척 흡족하게 생각한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보다 넓게 보다 깊게 알고 싶은, 지적 욕구가 고조되어 감을 느낀다.
다음 주 토요일까지는 리포트를 제출하고 30분 발표 프로그램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1주일동안 열심히 공부하여 손색없는 리포터를 제출해야 될 터.
내가 발표할 주제는 「김대건 신부님의 활동과 업적」이다.
이번 교육의 핵심에 속하는 부분이다.
어둑어둑 땅거미 질 무렵의 막다른 산골짝 버스 종점이다. 스산한 산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딱 나 한사람뿐이라는 게 오히려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함은 지나친 역설일까?
미리내의 해질 녘 산바람은 차다. 집에 당도하니 7시가 지난 시각이다.
내가 다니는 성당의 부활성야(復活聖夜) 미사.
평소보다 훨씬 많은 교우들이 나와, 성당 안은 입추의 여지가 없다.
눈에 띄게 남성교우들이 많이 나왔다.
주일 미사에도 전혀 나오지 않다가 부활절에는 가책의 느낌이 드는 것일까?
베드로가 스승을 외면하고, 닭이 세 번 울어 참회의 눈물을 흘렸던 것처럼,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 모두 오늘 밤, 닭의 울음소리를 듣게 되었으면......
그리고 생각하는 새벽, 그리하여 구각을 벗고 부활하는 영혼의 새아침을 마지하게 되었으면.....
육신의 회복과 함께 영혼의 부활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쉬지 않고 오르게 해 주시기를 마음속 깊이 빌었다.
경건한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니 자정이 훨씬 지났다.
깊은 밤, 소낙비가 죽 죽 내리고 있다. 마치 새아침의 부활을 위해 온 세상을 물로 세례 하는 듯이.
◌월◌일 <안내봉사자의 길>
산 밖 세상 보다는 기온이 4~5도쯤 낮다던가.
그런 미리내 산골짜기지만 봄은 한껏 부풀어 가고 있다.
잡목이 빽빽이 들어서 있는 온 산이 연두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귀로(歸路). 도로변에 개나리, 목련화, 진달래가 앞을 다투어 피어 있는 것을 보고 내가 올해에도 참으로 무심히 이 봄을 지나고 있음을 느꼈다. 작년에는 생사의 갈림길을 헤매느라 봄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지만.....
작년 오늘, 5번째 수술, 심장으로는 2번째 수술을 받았다.
수술실에 들어갈 때에는 거의 절망적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가족들은 나의 장례절차에 관한 논의를 하였다고 한다. 나 스스로도 ‘이번에야 말로 깨어 날수 있을까’ 회의(懷疑)하고 있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50분 동안은 초조하였다.
주모경을 10단, 그 후에는 수도 없이 선종기도를 들였었다.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8시간에 걸친 긴 수술을 받고 드디어 살아났다.
심장의 한쪽 판막을 돼지의 생체판막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말을 듣고는 희생된 돼지와 살아있는 내가 생명을 섞어가면서 살아있음을 직감하였다.
사람의 목숨이 이다지도 질긴 것인가 하는 느낌이 떠올랐다.
생명의 신비감과, 살아 있다는 존재감의 기쁨을 만끽하면서 서서히 회복되어 갔다.
무엇에다 사는 보람을 걸 것인가?
남아 있는 여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덤으로 사는 생명의 값을 어떻게 치룰 것인가?
많은 생각을 하면서 봄, 여름, 가을이 가고 겨울을 마지 하였다.
2007년 연말 천주교 주보 「성지 소식」난에 게재된 미리내 성지 안내봉사자모집광고를 보게 되었었다. 아내는 건강을 고려하여 신중을 기하라고 충고하였지만 나는 생각할 여지없이 여기에 여생을 걸겠다고 다짐하면서 응모한 것이다. 사흘 후에 성지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었다. 신부님의 결정이라면서 교육을 받으러 나오라는 전갈이다. 하느님은 나의 끝나는 목숨에 덤을 주시고, 그 값을 갚을 길도 마련해 주시는 완전무결한 플레이에 나를 유도해 주시는 것이다.
내가 지닌 탤런트(talent)는 안내봉사자가 되기에 적절하다고 스스로 평가하면서 성실하고 유능한 성지 안내봉사자가 될 것을 다짐한다.
◌월 ◌일 <홀로서기>
미리내의 봄을 찾아 성지에 들어섰다.
오늘은 나의 봉사일정은 아니지만 좀 더 빨리 무드에 익숙해 지기위해 온 것이다.
지난 4월 중순 교육수료 미사를 마치고는 오래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놓았다. 오늘도 좀 느리기는 하나 지팡이 없이, 경당(經堂:통속적 의미의 사당, 이 경당 역내에 김대건 신부님의 묘가 있다)까지 걸어서 올라갔다. 조금은 불안하고 발과 다리에 무리가 오는 듯하나, 마음은 무척 가볍다.
2004년 장 수술 후유증으로 4년 동안이나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미리내 성지에 드나들면서 놓을 수 있다니, 참으로 신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필경, 성 김대건 신부님의 전구(傳求)와 하느님이 내려주신 홀로서기 선물임이 분명하다. 경당에서 오래 오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산비둘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두견(杜鵑)이 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는다.
목 놓아 우는 산비둘기 소리는 마치 슬픔을 견주어 보자며 두견새를 부르는 소리 같이 들린다. 귀촉도(歸蜀道:두견새의 별칭)의 한밤중 울음소리는 남정네의 구곡간장을 녹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정원 석 사이사이에 심어진 진달래나무에 빨간 꽃망울이 귀엽게 달려 있다. 하루 이틀이면 활짝 피어날 듯만 하다.
미리내의 산바람이 차다고 하지만 오는 봄을 막을 수는 없는 것.
대 자연 앞에 경건히 마음을 조아렸다.
이 대자연도 하느님께서 창조 하신 것, 그분께 감사와 흠숭과 영광을 드린다.
◌월 ◌일 <첫 안내봉사>
실무 트레이닝도 마치고, 내 단독으로 첫 안내봉사를 하는 날이다.
시간에 잘 맞추어 미리내 성지에 당도하였다.
드넓은 미리내 골짜기의 대기를 다 들어 마시기나 할 듯이 크게 심호흡을 거듭하면서 천천히 걸어서 경당으로 올라갔다. 아직 인적은 없고 한적하다.
금주 초까지만 해도 만발했던 철쭉꽃이 며칠 사이에 다 져버리고, 떨어져 누운 꽃잎이 검붉은 시체마냥 처절하다.
어느덧 신록은 연녹색에서 짙푸른 색깔로 바뀌어 가고 있다.
마침내 계절의 여왕이 닥아 온 것이다. 산골짝에는 산 벗 꽃이 화사하게 피어있다.
아침부터 산비둘기 우짖는 소리가 골짜기를 채운다. 더러는 마치 박자라도 맞추듯 장끼의 외마디 소리가 가시 도친 듯이 예각 적이다.
경당 앞에 떨기 꽃, 수국(水菊)이 복스럽게 피어나고 있다.
약간은 떨리는 손으로 경당 문을 열고 들어가 경건히 기도부터 들였다.
감실(龕室:가톨릭에서 성체를 모셔두는 곳)을 열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성해(聖骸:발가락 뼈)함을 조심스럽게 들어내어 제대(祭臺) 앞에 모셨다.
순례자들이 오면 거침없이 설명하고 친구(親口:가톨릭에서 숭경의 대상에 대하여 존경과 순명의 뜻으로 하는 입맞춤 의식)까지 베풀어 드릴 태세를 갖추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정오경부터 크고 작은 순례단(巡禮團)이 그치지 않았다.
미리내 성지와 김대건 신부님의 생애를 설명하는 자신의 독특한 스타일을 개발하고자 시도하였다. 첫날인 오늘 경당에서 혼자 안내봉사를 하면서 다섯 순례 팀을 마지 하였다.
더러는 나의 설명을 듣다가 눈시울을 붉히는 여성 순례자도 있었다.
구변으로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깊은 신앙심에서 울어나야 하는데 아직은 미흡하다.
일단 마음에 자신감을 얻은 것은 오늘의 성과라고 할 수 있을 듯싶다.
이렇게 미리내 성지 안내봉사자로서의 첫날을 보낸 것이다.
◌월 ◌일 <치열한 생애, 25년>
안내봉사자 일동은 은이(隱里) 성지로 순례 길을 떠났다.
오늘 봉사하기로 되어있는 분들도 같이 떠났으므로 나와 또 한분 건강이 좋지 않은 동료 봉사자가 경당을 지키게 되었다.
이 봄 들어 처음으로 두견(杜鵑)새 소리가 들려왔다. 산비둘기 소리도 여니 때 보다 더 구성지게 들린다. 외마디 꿩 소리도 간헐적으로 들려온다.
경당 앞 수국이 한껏 고결한 자태로 돋보인다.
미리내의 봄은 아름답다. 이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에는 언어의 부족과 형용의 한계를 탄할 따름이다.
춘하추동 나는, 미리내에서 덤으로 사는 목숨의 값을 치루고자 하는 것이다. 내 목숨이 소중한 만큼 보상도 정성과 열의를 다해야 한다.
나의 안내 봉사활동은 가장 정성이 깃들고 열의에 차야 할 것을 거듭 다짐한다.
경당에서 성해함(聖骸函)에 손을 댈 때 마다 마음이 떨린다.
25년의 짧은 생애에 그렇게도 빈틈없이 치열하게 사셨고, 한번 세운 소신에 추호도 변함이 없는 생애를 사시다가, 배교의 유혹을 물리치고 스스로 순교의 길을 택해 장렬한 최후를 마치신 그분을 이렇게 지근에서 뫼실 수 있다니, 이야말로 신앙인으로서는 더할 수 없는 영광이다.
그분을 닮아가자.
철저한 순명(順命)과 굳은 의지력,
뚜렷한 소신과 끊임없는 시도(試圖),
그리고, 아 ! 불타는 믿음.
◌월 ◌일 <미리내의 산비둘기>
미리내 성지의 산비둘기 울음소리는 야지(野地)의 그것과는 다르다.
미리내 산비둘기의 울부짖음은 슬픈 호곡(號哭)임에 틀림없다.
1846년, 그 이전에는 한껏 목청을 뽑아 짝을 찾는 러브콜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해 가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 한강변 새남터에서 군문효수로 치명하셨고, 40일 만에 이곳에 묻히신 후부터는, 젊은 순교자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저렇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구슬피 호곡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160여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그 이전 수백 수천 년, 정다운 러브콜이 있었을 것이고, 이후 160여년은 호곡의 세월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성지의 경건한 분위기에 더하여 슬픔이 무거운 무게로 얹힐 듯싶다. 그리고 더 깊이, 슬픔이 순교의 화관(花冠)으로 승화되는 기쁨을 그 후에 느낄 수 있을 듯싶다.
궂은 날씨에도 종일토록 순례행렬이 이어졌다.
경당에 들어가 성인의 유해를 들어 올릴 때마다 깊이 경배하면서 내 마음속에 언제나 성인께서 함께 계시기를 기원한다.
순례자들에게 “성인의 유해에 친구(親口)하면서, 불타는 순교신앙을 이어받아, 우리들의 영혼이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날마다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 한다.”고 말하였다. 친구자(親口者)들은 숙연히 받아들이는 듯 했다.
미리내 성지에서 봉사하고 돌아오는 길은 보람으로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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