歌の背景函

北の港駅-田川寿美///「相撲発祥の地」の伝説

bsk5865 2012. 7. 15. 08:36

보낸사람: 소담 엔카 운영자 12.07.15 06:15

 

北の港駅-田川寿美///「相撲発祥の地」の伝説(D)|★....엔카 게시판

黃圭源  http://cafe.daum.net/enkamom/KTiH/1127 


北の港駅-田川寿美


北の港駅-田川寿美

作詞 悠木圭子 作曲 鈴木淳


好きだから離れても 必ず帰るよと
ふるえる私を 抱きしめた
何もかも捨てゝ貴方の後から追いかけて
行けばよかった 最終列車
涙まじりの 雪が舞う


恋しくて今日も又 貴方の夢を見て
あふれる涙で 夜が明ける
傍にいるようで貴方のぬくもり探してる
肌を刺すように吹雪が鳴いて
凍りつきます 北国の冬


馬鹿ですか 馬鹿ですね 貴方を待っている
しんしん降る雪 北の駅
忘れられないの 貴方と過ごした愛の日を
固い契りで 結ばれたのに
二度と逢う日は ないのでしょうか


「相撲発祥の地」の伝説

日本 各地에는 數많은 伝説이 남아 있는데요. 이런 多樣한 伝説 中에서 숨어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紹介합니다.

‘相撲発祥の地’라고 불리고 있는 곳은 大和国(現在の奈良県)의 當麻の里. 當麻 寺의 ‘中将姫’ 伝説과 같은 葛城市(かつらぎし)의 한 地域입니다. 実은 ‘相撲発祥の地’은 따로 또 한 곳이 있는데 王 앞에서 처음으로 公式的인 相撲 競技가 있었던 場所- 奈良県 中部의 桜井市 郊外에 있는‘相撲神社’가 바로 그곳 입니다.


相撲発祥の伝説

奈良県 西北部에 位置한 當麻の里는 奈良市의 近鉄奈良駅에서 近鉄奈良線,近鉄橿原線,近鉄南大阪線을 갈아타고 約 1時間. 当麻寺駅에서 下車합니다. 이 附近은 古代부터 隆盛한 地域으로 當時에는 交通과 軍事上의 要地였습니다. 눈 앞에 높이 솟은 葛城山脈을 넘으면 大阪府입니다.

駅에서 当麻寺 쪽으로 10分 程度 걸으면 相撲発祥の地를 象徵하는 建物과 遺跡 이 보이기 始作합니다. ‘けはや座’라 불리며 相撲의 歴史를 現在에 伝하는 葛城市相撲館과 그 앞에 있는‘けはや塚’입니다. 이‘けはや’라는 이름이야말로 當麻를 相撲発祥の地로 만든 主人公입니다. 「日本書紀」 第11代 垂仁天皇의 項目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伝해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垂仁天皇을 섬기는 사람이 王에게 伝했습니다. “當麻마을에 勇猛스런 男性이 있습니다. 이름은 當麻蹴速(たいまのけはや)라고 하며 대단히 힘이 세서 動物의 뿔을 부러뜨리거나 구부러진 갈고리를 똑바로 펴기도 합니다. 모두에게 ‘어느 곳을 찾아봐도 나만 큼 힘 센 자는 없을 것이다. 어떻게든 强한 者를 만나 죽기 살기로 힘을 겨루어 보고 싶다.’고 말한답니다.

그 말을 들은 王은 側近들에게 “當麻蹴速는 天下의 壯士라고 한다. 그를 이길 수 있는 者는 없는가?"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한 臣下가 “出雲国(いずものくに)에 野見宿禰(のみのすくね)는 勇士가 있는 모양인데 그 男性을 當麻蹴速와 겨루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고 答했습니다.

王은 바로 使者를 보내 出雲에서 野見宿禰를 불러들였습니다. 蹴速와 宿禰는 垂仁天皇의 宮闕이 있던 現在의 桜井市穴師의 땅에서 勝負를 겨뤘습니다. 現在는 ‘相撲神社’가 된 곳입니다. 當時의 相撲는 지금의 相撲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다리를 올려 차면서 오랜 時間 싸운 結果 宿禰가 蹴速의 갈비뼈를 밟아 부셨습니다. 게다가 허리뼈를 밟아 부러 뜨려 蹴速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王은 蹴速의 土地를 빼앗아 全部 野見宿禰에게 주었습니다. 宿禰는 그대로 首都에 머물며 王을 모셨습니다.


相撲に負けて歴史に勝った當麻蹴速

앞서 말한 ‘けはや塚’는 當麻蹴速의 무덤이라고 伝해지는 五輪塔입니다. 一般的이라면 勝者인 野見宿禰 말로 英雄으로 稱頌되어야겠지만 相撲 創始者라 하면 普通은 當麻蹴速라고 알고 있습니다. 當麻의 사람들이 죽임을 當한 故鄕 出身의 勇士를 불쌍히 여겨 蹴速発祥의 땅의 英雄으로 所重히 모셔온 結果이겠지요. 五輪塔 옆에 있는 案內板에는‘勝者에게 拍手를 보내는 건 좋다. 그렇지만 敗者에게도 조금의 눈물을 흘려줘야 하지 않을까’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蹴速는 蹴速에서는 졌지만 相撲史에,그리고 사람들의 마음 속에 勝者로 남아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野見宿禰도 결코 惡人으로 여겨지는 것은 아닙니다. 王은 蹴速의 土地를 받아 熱心히 自身을 모신 宿禰를 所重히 여겼습니다. 亦是 相撲 創始者라고도 불리며 相撲神社에 모셔져 있지만 그와는 別途로 宿禰의 큰 功績으로 남아있는 것이 있습니다. 當時 王과 王妃가 世上을 떠나면 옆에서 시중을 들던 많은 사람들이 무덤 周圍에 산 채로 묻히는 風習이 있었습니다. 垂仁天皇은 그것을 매우 가엽게 여겨 蹴速와 議論을 했고 그는 흙으로 사람과 말 等 여러 가지 形態를 만들어 무덤 周邊에 바칠 것을 提案했습니다. 그 以後 生 埋葬은 사라졌습니다. ‘埴輪’의 起源입니다.


大相撲一行がやって来た

지난 4月 2日 大阪市에서 開催된 大相撲春場所를 끝낸 相撲 選手 一同이 葛城市에서 하루 동안만 ‘葛城相撲大会’를 열였습니다. 横綱 白鵬以下 全 相撲 選手가 相撲発祥의 땅에 敬意를 表하기 爲해 왔습니다. 午前 8時부터 相撲 選手가 平素에 하는 激烈한 演習 風景을 보여주거나 相撲의 伝統文化를 紹介하고 技術을 선보인 뒤에 진짜 競技場 같은 迫力 넘치는 大戰이 펼쳐졌습니다. 会場인 市民体育館은 約 1,700名의 觀衆으로 満員. 地方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相撲를 直接 볼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當麻蹴速에게 감사! 伝說과 現實을 하나로 融合한 相撲 發想의 땅에서만 볼 수 있는 하루였습니다,

作成者 黃圭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