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曽の翌檜-長山洋子 作詞 鈴木紀代 作曲 弦哲也
一 木曽のナー 仲乗りさん 私ゃあんたに 一目惚れ 山には檜 黒檜(ねず) 椹(さわら) 胸には根気と いう名の木 あすなろ あすなろ 明日(あす)は倖せに あすなろ あすなろ きっと倖せに あんたの声が こだまする 翌檜(あすひ)の 筏で 川下り
二 木曽のナー 御嶽(おんたけ)さん 伸ばすこの手に 届かない 夢なら届く いつの日か あせらずたゆまず 諦めず あすなろ あすなろ 今に春が来る あすなろ あすなろ 木曽に春が来る つめたい寒い 谷底(たにそこ)で あんたは背中に 水しぶき
あすなろ あすなろ 明日(あす)は泣かないで あすなろ あすなろ きっと泣かないで あんたの帰り 待つ私 雪解け間近(まぢか)の あかね空
「馬首の井戸」と「開かずの雪隠」 日本 各地에는 수많은 伝說이 남아 있는데요. 이런 多樣한 伝說 中에 숨어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紹介해 보고자 합니다.
栃木県 栃木市(とちぎし)의 大中寺(だいちゅうじ)라는 절에 伝해지는 ‘일곱 개의 不可思議한 伝說’에서 두 가지 이야기를 紹介합니다.‘馬首の井戸(말머리 우물)’과 ‘開かずの雪隠(열리지 않는 화장실)’은 各各 獨自的인 이야기로 다뤄지지만 元來는 이어지는 것으로 조금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大中寺는 約 860年 前에 創建된 古刹로 江戸幕府(1603年~1867年)에서 높은 地位를 받은 훌륭한 歷史가 있는 절이라고 합니다.
馬首の井戸 戦国時代가 끝날 무렵, 戰鬪에서 진 젊은 將帥가 말을 타고 절 門앞까지 逃亡쳐 왔습니다. 將帥의 이름은 佐竹小太郎(さたけこたろう). 敵에게 둘러싸여 必死的으로 大中寺에 到着한 것 입니다. 大中寺의 住持 스님은 小太郎의 叔父였기 때문에 절에 숨겨줄 것이라 생각한 것이죠. 그러나 小太郎의 付託을 들은 住持 스님은 追擊者들에게 非難 받을 것이 두려워 “ここは敵も味方も関係ない場所だ。誰であろうとかくまうことはできない(여기는 적도 아군도 관계없는 곳이다. 누구든 숨겨줄 수 없다)"고 말하며 小太郎를 門안에 들여주지 않았습니다.
小太郎가 住持 스님의 차가운 態度에 失望하는 동안에 敵의 追擊者가 쫓아 왔습니다. 더 以上 逃亡갈 수 없다고 생각한 小太郎는 自決하는 수밖에 없다고 覺悟했지만 愛馬가 갑옷 소매를 물고 놔주지 않았습니다. 小太郎는 눈물을 흘리며 愛馬의 목을 베어 옆에 있던 우물에 넣고 自身도 住持 스님의 處事를 깊이 怨望하며 가까운 밭에서 割腹해 목숨을 끊었습니다.
開かずの雪隠 小太郎의 夫人은 男便과 約束하고 信號가 있을 때까지 숲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連絡이 없기에 그 뒤를 쫓아 大中寺로 逃亡 왔습니다. 그렇지만 그女를 기다린 것은 悲報였습니다. 이미 男便은 割腹한 뒤였던 것입니다.
夫人이 嘆息하며 슬퍼하고 있는 사이 兵士들이 周邊을 돌며 찾고 있는 것을 눈치챈 住持 스님은 서둘러 그女를 化粧室 안에 숨겼습니다. 夫人이 숨어있는 것을 알아채지 못 한 兵士가 떠난 뒤 住持 스님은 化粧室 문을 열었지만 小太郎의 夫人은 칼로 목을 찔러 목숨을 끊은 뒤였습니다.
夫婦の恨みのたたり 小太郎 夫婦가 죽은 뒤 이상한 일이 繼續 일어났습니다. 우물에서 말 울음소리가 들리거나 절 周邊을 달리는 말발굽 소리,새벽녘에 門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거나 우물에 떠있는 말 그림자가 보이기도 하고 자욱한 안개 속에 말 머리가 떠있기도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馬首の井戸’이라 부르며 두려워했습니다.
또 小太郎가 죽은 밭 周邊에서 반짝거리는 것이 西쪽 山 위로 날아가기도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빛났던 곳을 보자 밭 한가운데 반짝이는 돌이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돌이 怨恨을 남기고 죽은 小太郎의 靈魂이라 여겨 西쪽 山 頂上에 옮겨 모시고 그 山을 照石山(てるいしさん: 반짝이는 돌산)’,小太郎를 ‘照石小太郎(てるいしこたろう: 後에 晃石太郎 変更)’ 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現在 大中寺의 西쪽에 있는 晃石山입니다.
한便 化粧室에서도 女子의 亡靈이 나타나거나 化粧室에 들어간 사람이 自殺하고 精神이 나가는 異常한 일이 繼續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門에 못을 박고 열리지 않게 해 그 化粧室은 ‘열리지 않는 화장실’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아무리 供養을 바쳐도 그치지 않았습니다. 절의 스님들도 次例次例 떠나 結局 住持 스님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밤,大中寺는 갑자기 불길에 휩싸여 타올랐습니다. 절이 다 탄 곳에서 住持 스님의 주검이 發見되었습니다. 굳게 닫힌 門을 붙든 채 타 죽은 것입니다.
佐竹小太郎는 죽기 前에 “わが魂はここに残つて、この寺を何度でも焼き払ってやる(내 영혼은 이곳 에 남아 이 절을 계속 태원 버리겠어)"라고 말했다고 伝해집니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火災가 일어나기 前에 小太郎와 夫人이 對話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大中寺는 그 뒤에도 몇 번인가 火災를 當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晃石太郎 夫婦의 詛呪라며 두려워했습니다.
大中寺の周辺 많은 不可思議한 伝說이 伝해지는 大中寺 이지만 그 周邊은 포도밭이 많은 한가로운 山속 마을입니다. 大中寺의 境內에서 登山路가 이어지는 太平山(おおひらさん)은 歴史的인 遺跡도 많고 또 아름다운 벚나무와 매화나무 숲,2,500그루의 水菊, 山 頂上에서 바라본 関東平野의 멋진 眺望 等으로 有名하며 四季節에 걸쳐 아름다운 自然과 特異한 伝說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거립니다.
作成者 黃圭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