歌の背景函

花言葉の唄-松平晃・伏見信子///歌の背景

bsk5865 2013. 6. 1. 08:31

보낸사람 : 소담 엔카 운영자 13.06.01 06:41

 

花言葉の唄-松平晃・伏見信子///歌の背景(D)|★....演歌 게시판

黃圭源 | http://cafe.daum.net/enkamom/KTiH/3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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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言葉の唄-松平晃・伏見信子

作詞 西條八十 作曲 池田不二男


男)可愛いつぼみよ きれいな夢よ
乙女心に よく似た花よ
咲けよ咲け咲け 朝露夜露
咲いたらあげましょ あの人に


女)風に笑うて 小雨に泣いて
なにを夢見る 朝花夜花
色は七色 想いは十色
咲いたらあげましょ あの人に


男)白い花なら 別れの涙
女)赤い花なら うれしい心
男)青い花なら 悲しい心
男女)咲いたらあげましょ あの人に


歌の背景

이 노래는 1936年7月에 公開된 新興 키네마(kinema)“初恋日記”의 主題歌입니다. 主演을 한 松平晃과 伏見信子가 듀엣으로 불러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이 노래는 歌謡曲처럼 보이는 프레이즈(phrase)가 약간 있지만 歌詞 曲 모두가 現代의 小 中学校의 音楽教科書에 掲載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깨끗한 왈츠 曲 입니다.

松平晃(本名 福田恒治)는 1911年 佐賀県 佐賀市에서 次男으로 태어났습니다 佐賀中学(旧制) 卒業後 音楽에 뜻을 두고 単身으로 上京하여 武蔵野音楽学校(現 武蔵野音大)에 入学했습니다.

1931年 東京音楽学校(現 東京芸大 音楽学部)로 転学하여 声楽의 修業에 기울 립니다만 生家가 経済的으로 貧困하여 送金이 끊어져 困境에 處한 그는 같은 声楽科 本科의 先輩 増永丈夫와 相談합니다.

増永는 生家의 빗을 갑기 爲해 藤山一郎라는 芸名으로 歌謡曲을 吹込하여 次例로 히트시키고 있었습니다. 그 時期 클래식 音楽을 배우는 学生이 歌謡曲을 부르는 것은 어느 音楽学校에서나 禁止되어 있었습니다.

増永는 学校에는 秘密로 하고 레코드를 吹込합니다만 히트되면서 当然히 学校에 發覺되었습니다 福田와 相談하였을 때는 이미 増永는 停学 中이 였는데 우연히 두 사람이 같은 境遇였습니다. 当時 世界恐慌으로 企業이 倒産하고 個人의 破産이 全国 到處에서 頻発하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増永의 紹介로 福田는 歌謡曲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ニットー”“ポリドール”“キング”“テイチク”“タイヘイ”等 레코드会社에서 芸名을 바꿔가며 불렀는데 “サーカスの歌”의 大히트를 始作으로 順調롭게 実績을 쌓아 올렸습니다.

그 結果 昭和10年 前後에는 東海林太郎나 藤山一郎와도 双璧을 이루는 스타歌手가 되었습니다. 아름다움 목소리에 뛰어난 容貌로 映画界에서도 名声이 올라가 日活映画의“花嫁日記”松竹映画의”純情二重奏” 等 여러 編의 映画에 出演하였습니다 “初恋日記”도 그의 하나로 이 作品에서 그는 主題歌를 부르는 同時 立松晃라는 女優 伏見信子의 相對役도 하였습니다.

이 共演이 契機가 되어 두 사람은 結婚하였습니다만 스타끼리의 生活의 엇갈림이 많아지고 性格의 差異가 있어 1年도 안되어 離婚하고 말았습니다.

드디어 松平의 人気에도 그늘이 보였습니다. 1937年 10月에 市販된 戦時歌謡 “露営の歌”가 히트되어 一時的으로 人気를 回復하는 듯 하였는데 歌謡曲의 메인 스트림으로부터는 漸次로 멀어져 가게 되었는데 人気 장사의 宿命 이러고도 할까요.

戦後에는 별로 히트曲을 내지 못하고 있다가 海外 公演으로 브라질에서 原因不明의 病에 걸리는 等 不運이 겹쳐 사람들의 記憶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1956年에 松平晃 歌謡学院을 設立하여 後進 育成에 힘을 기울 립니다만 1961년 2月 帰家途中 쓰러져 波乱의 49年을 磨勘했습니다.

作曲家 福田和禾子는 그의 長女로 아버지와 같은 東京芸大를 나온 뒤 現代童謡의 傑作“北風小僧の寒太郎” 外에 많은 作品을 繼續해 創作하고 있습니다.

作成者 黃圭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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