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낸사람 : 엔카 컴나라 운영자 13.06.23 10:06
맥아더와 인천 팔미도 등대◈...자 유 게 시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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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인천상륙작전을 구상한 것은 전쟁 발발 4일째 한강 방어선을 시찰할 때였다.
그가 인천상륙작전을 구상한 것은 전쟁 발발 4일째 한강 방어선을 시찰할 때였다.
- 그러나 미 해군은 조수 간만의 차가 너무 크고 접안지역이 좁은 데다 시가전도
- 치러야 하는 최악의 지형이라며 강하게 반대했다. 작전 성공률이 5000 대 1밖에
- 안 된다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그는 이런 난점이 오히려 적의 허점을 찌르는 것이라며
- 이들을 설득해 8월28일 최종 승인을 얻었다.
D데이를 9월15일로 잡은 것은 이날 조수 간만의 차가 가장 작았기 때문이다.
- 인천으로 상륙하려면 월미도를 먼저 점령해야 했는데,
- 그 섬 바로 앞에 팔미도가 있었다. 팔미도는 작은 섬이지만 전략적 요충지였다.
- 더구나 야간 상륙작전에는 함대를 유도하는 등대 불빛이 필요했다.
- 켈로부대(대북첩보부대) 최정예 멤버 6명에게
- “15일 0시를 기해 팔미도 등대에 불을 밝혀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 이들은 9월14일 저녁 소음총으로 무장하고 팔미도로 잠입했다.
- 섬을 지키던 인민군을 해치운 뒤 등대를 점령한 시각은 밤 11시30분.
- 그런데 등대의 점등장치 밸브가 빠져 불을 붙일 수 없는 게 아닌가.
- 어둠 속에서 시간은 자꾸 가고, 밸브를 찾는 대원들의 숨소리는 더욱 가빠졌다.
- 급기야 넋나간 모습으로 바닥에 드러누워버린 한 대원의 손에 뭔가가 걸렸다.
- 밸브였다. 천신만고 끝에 등대에 불을 밝힌 것은 오전 1시45분.
- 정해진 시각보다 거의 두 시간이나 늦었다.
그때까지 마운트 매킨리 호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맥아더는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 발진명령을 내렸다. 함정 260여척, 병력 7만여명을 동원한 인천상륙작전은 팔미도 등대
-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 임무를 마치고 지쳐 쓰러졌던 대원들은 날이 밝은 뒤 배에 올랐다.
- 맥아더는 이들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해주며 공적을 치하했다.
- 이날 작전은 서울을 수복할 길을 확보하면서 공산군 주력 부대의 병참선을 끊음으로써
- 전세를 완전히 뒤바꾼 것이었다.
이런 엄청난 역사의 현장을 지키고 있는 팔미도 등대는 110년 전인 1903년 완공된
-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다. 해발 71m의 팔미도 꼭대기에서 석유등으로 주변 10㎞ 해상을
- 비추던 이 등대가 곧 국가현충시설로 등록될 예정이라고 한다.
- 63년 전 그날 역사적인 불빛으로 혁혁한 무공을 세운
- 그에게 국가가 뒤늦게 주는 훈장인 셈이다.
Paul Mauriat&Annie Haslam - Still Life (B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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