おさげと花と地蔵さんと-三橋美智也 作詞 東条寿三郎 作曲 細川潤一
一 指をまるめて のぞいたら 黙ってみんな 泣いていた 日暮れの空の その向こう さようなら 呼べば遠くで さようなら おさげと花と 地蔵さんと
二 あれから三年 もう三月 変わらず今も あのままで 空見て立って いるのやら さようなら 耳を澄ませば さようなら おさげと花と 地蔵さんと
三 なんにもいわずに 手を挙げて つま立ちながら 見てたっけ 思いはめぐる あかね空 さようなら 呼べばどこかで さようなら おさげと花と 地蔵さんと
歌の背景 1957年(昭和32年)에 히트된 曲입니다 이「おさげと花と地蔵さんと」의 作詞者 東条寿三郎의 詩는「上海帰りのリル」에서와 같이 매우 情念的이고 観念的으로 意味의 取하기 힘든 곳이 있습니다.「上海……」의 境遇도, 詩의 실마리는「上海帰り」「四馬路」「昭和26年ヒット」程度 밖에 없고, 나머지는 情念的인 말에 薔薇를 뿌려 全體를 收斂 시키는 手法, 말하자면 演繹的 作詞의 構成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東条의 다른 歌詞「星屑の町」「東京の椿姫」나 이「おさげと……」라고 対를 이루는「さようなら故郷さん」(노래 三船浩)에서도 完全히 같은 것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노래의 실마리는, 「おさげと花と地蔵さん」는 勿論. 一番은 「みんな泣いていた」와 「空のその向こう」 二番은「あれから三年もう三月」과 「空見て立って」 三番째는「つま立ちながら」「思いはめぐる」와 「どこかで」일 것입니다.「御下げ」「花」「 地蔵さん」은 모두가 故鄕을 象徵합니다.
빅 코믹•오리지널에 昭和時代부터 連載한 西岸良平 原作「三丁目の夕日」(映画化 ALWAYS-三丁目の夕日)는, 이 時代(1958年)를 그리고 있으며, 鈴木オート에 集団就職 할 수 있던「六ちゃん」原作에서는 少年이었지만, 映画에서는 御下げ髪의 少女였습니다. 當時의 女性의 머리 模樣은, 【女児=御かっぱ】→【少女=御下げ】→【아가씨・女学生=三つ編み】→【成人=パーマネント】가 定해진 順序였습니다. 「おさげ」는 少女로부터 아가씨로 變貌해 나가는 思春期의「あかし」같은 것이었던 것이지요. 「花」는 예부터 벚꽃을 말합니다.
이 노래의 境遇도 벚꽃이라 해도 좋지만, 三橋美智也의 다른 노래에 있는「東北地方の田舎」을 보면 到處에 많이 피는 민들레로 하고 싶군요. 「地蔵さん」은 以前에는 반드시 변두리에 서있었습니다. 지금은 마을이 合倂 되여 새로운 區域이나 交通의 近代化 等에서「おらが村」가 希釈化되어 「お地蔵さん」의 存在意義도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お地蔵さん」은 勿論 地蔵菩薩의 일도, 어린이에게 限定하지 않고 衆生을 救濟하는 부쳐 이지만, 마을을 빗어난 境界線에 서서, 마을에 災厄이나 悪疫이 들어 오지 못하게 어린이를 지켜 준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おらが地蔵さん」이 있는 곳까지가「おらが村」內의 安全地帶로, 거기로부터 벗어나면 거기는 다른 “お地蔵さん”의 管轄이 됩니다. 勿論, 江戸封建制의 農民을 둘러싼 아쉬움은 있지만, 이 노래의 時代도 마을 意識은 남아 있고, 「お地蔵さん」은 故鄕을 想起시키는 第一의 象徵物로 되니깐요.
이 노래의 릴리스(release)는 1957年으로, 이 時代에「みんな集まって泣いてさようなら」를 말하며 故鄕을 떠난, 正統中学卒業生(後에 漸漸 高校 卒業生도 增加해 갔다)의 東京으로 가는 「集団就職」의 餞送입니다. 15~6年間 함께 生活한 父母 膝下를 떠나, 東京의 거친 波濤에 뛰어드는 이들을 餞送하는 것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지요. 하물며, 서로가 戀情의 追憶을 안고 해어지는 붉은 볼의 お下げ髪의 少女도 해여 저 떠나는 사람을 더욱 더 그리워할 것입니다.
一番의 歌詞는【集團就職 列車는 餞送의 슬픈 場面을 뒤로하고 달리고 있습니다. 슬퍼 눈물이 나와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손가락을 둥글게 하고, 望遠鏡과 같이 들여다 보면, 離別의 場面이 떠올라 보이는 것처럼 생각되네요. 訣別의 意味를 담아 마음속에서「さようなら……」라고 외치면, 하늘의 저 便의 故鄕 쪽에서, 민들레에 둘러싸인 お地蔵さん 옆에서, 찢어질 程度로 汽車를 向해 손을 흔들어 주던 少女가 먼 곳에서「さようなら……」라고 돌려주는 것 같네요】라는 것입니다.
二番은【한달 한달 손꼽아 센 歲月도, 벌써 그 離別로부터 3年 3個月도 지나 버렸습니다. 그 아가씨도 이제 十八를 지나 시집갈 나이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지금도 그 離別의 時間과 같이 마을 동구 박의 お地蔵さん 옆에 서서, 東京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까요? 그러나 自身은 지금, 따라 갈 수 있는 境遇가 아니어, 언제까지나 기다리게 하면 그 아가씨가 불쌍하네요. 自身은 安寧히 가세요 라고 할 수 있을까, 라고 살그머니 自身의 마음에「さようなら……」라고 귀를 기울이고 듣고 있으면, 그 아가씨의「さようなら……」가 들려 오는 것 같았습니다.】 라고 解釋이 되네요.
三番째는 心理的으로 第一複雜하고, 于先「何にも言わずに手を挙げて、爪立ちながら見てたっけ」라고 하는 것이, 主人公이나 少女나 어느 쪽의 動作인가 理解하기 어렵습니다. 「思いはめぐる」그렇다고 하기 때문에 어디라도 좋은 듯한 것이지만, 于先, 스스로가 列車를 탄 것을 보고, 어른들이 손을 흔든 뒤에 少女가 손을 들고, 작은 몸으로 뒤로부터도 잘 보려고 발돋움하고 있는 모습이 自然스럽게 떠오릅니다. 汽車가 플랫폼을 떠나 가는 것을 쫓아가면서 언제까지나 餞送하고 있는 少女, 라고 하는 것도 極히 自然의 光景으로 想像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花と地蔵さん」이 어딘가에 가 버리고, 「見てたっけ」라고 하는 것은 目擊한 事實을 말하는 것 아닐까 하네요, 想像이 어렵습니다. 主人公의 實體效驗으로 하면, 汽車의 窓으로부터 발돋움하고 손을 흔들고 있는, 程度의 光景 밖에 떠오르지 않지만, 이것도 무엇인가 이상합니다. 그래서, 筆者도「思いはめぐ」는 끝내지만……
三番은【모처럼 斷念하려고 決心했는데, 黃昏 물러나 꼭두서니 구름을 보고 望鄕이 생각에 사로잡히면, 그 아가씨의 얼굴이 생각나 그 때 熱心히 발돋움하고 손을 들고 餞送해 준 것이 정말로 自身이 좋아했기 때문인지, 아직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未練으로 생각아 흐트러집니다. 거기서 한번 더 茜空으로 向해「さようなら~~~」라고 불러 보면, 있지 않고, 「さようなら」라는 소리가 멀리 사라져 갑니다】라고 하는 解析으로 생각됩니다.
이것과 같은 것을 스트레이트 하게 表現한 것이, 春日八郎의「別れの一本杉」(高野公男 作詞 船村徹 作曲)입니다, 列車에 依한 集團就職은 1954秊부터 1975年까지 이기 때문에, 이 노래의 主人公이 集團就職으로 東京에 간 것을 노래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終戰 直後 地方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1957年 무렵부터「美國의 配給手帖」을 가지고, 다시 東京에 모이기 始作했던 時期와 一致하기 때문에, 그러한 現像을 表現한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作成者 黃圭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