晩愁海峽-夏木綾子 作詞 瀬戸内かおる 作曲 岸本健介
一 冬の身支度 急かせるように 晩秋のしぐれが 港桟橋駆け抜ける すがる胸さえ・・・ 別れ言葉も ないままに あなた海峡 波の上 汽笛が鳴けば 鴎も啼いて あの人連れてゆく
二 海は荒波 群れ飛ぶ鴎 北のはずれの 一夜泊まりの風港 ここで暮らすと・・・ 云ったあの夜の 腕まくら 夢の破片が 波に散る 汽笛が鳴けば 鴎も啼いて あの人連れてゆく
三 恋は引き潮 慕いは満ちで 遠くなるほど あなた恋しさ増すばかり はるか海峡・・・ 追って行きたい 行かれない 私悲しい 恋小舟 汽笛が鳴けば 鴎も啼いて あの人連れてゆく
日本3大随筆中の一つの 枕草子 三
藤原家門と清少納言 淸少納言이 모신 ていし(定子)中宮은 一条 王의 寵愛를 받았습니다. 그 德分에 ていし 中宮의 아버지인 藤原為時와 오빠들도 富貴榮華를 거머쥐게 됩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죽자 오빠들은 左遷 當하고 家族들은 沒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때 藤原道長(ふじわらみちなが)가 나타나 딸인 しょうし(影子)를 王에게 시집을 보내고 道長 一家는 最高의 榮華를 누립니다.
藤原 家門은 645年 ‘大化の改新(たいかのかいしん)’이라는 大 改革 때 功勞를 세운 藤原鎌足(ふじわらのかまたり)를 始祖로 하여, 日本 歷史에서 千 年이 넘는 긴 歲月 동안 貴族社會의 中樞를 獨占했던 家門입니다. ていし와 しょうし도 같은 藤原 家門 出身이지만,같은 家門 사람들 間에 勢力 다툼이 極甚했습니다. 그 頂點에 서있었던 것이 道長였는데,그가 「源氏物語」의 主人公인 光源氏의 모델이라는 說도 있습니다 다음은 道長 最高의 榮華를 누리던 時節에 지은 有名한 わか(和歌)입니다.
古代文 この世をば わが世とぞ思う 望月の 欠けたる己ともなしと思えば
現代文 この世を 私の世だと思う 満月が 欠けるのを 除いては
翻訳文 나는 이 世上을 내 世相이라고 생각한다. 보름달이 이지러지는 것을 빼고는
注解 一条 王의 어머니는 藤原兼家(ふじわらのかねいえ)의 딸인데, 藤原兼家는 前에 紹介한 「蜻蛉日記(かげろうにっき)」를 쓴 作者의 男便입니다. 兼家는 夫人이 많아 자식도 많아 그 中의 한 名을 中宮의 자리에 오르게 함으로써 政治的 成功의 基盤을 다졌습니다. 當時에는 딸을 旺에게 시집 보내 그 딸이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次期 王位에 오르는 것으로 權力을 거머쥘 수 있는 時代였습니다.
道長도 兼家와 마찬가지로 딸을 中宮으로 만들어,孫子가 王位에 오름으로써 權力을 손에 넣었습니다. ていし가 中宮이 된 것은 14歲 때로, 王은 이보다 어린 11살 이었습니다 ていし의 아버지 藤原道隆(ふじわらのみちたか)는 딸이 아이를 가지기를 鶴首苦待합니다. 그런 아버지의 期待에 큰 負擔感을 느끼고 있었을 ていし. 그리고 ていし 집안이 沒落한 直後,12살의 나이에 中宮이 된 しょうし. 王과 中宮이라는 華麗한 이름과는 달리,세 사람은 진흙탕 같은 政治版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습니다. 「枕草子(まくらのそうし)」에는 全體的으로 밝고 가벼운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지만, 이러한 뒷이야기가 있었던 것 입니다.
いと、おかし 「枕草子」는 千年 前에 쓰여졌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程度로 女性으로서 지금도 共感할 수 있는 部分이 많은 作品입니다. 當時의 女性들도 弄談을 주고받고,四季節을 노래하고,戀愛 이야기나 巷間에 떠도는 所聞에 이야기 꽃을 피우며 “いと、おかし(정말 재미 있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作成者 黃圭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