母さんの歌-倍賞千恵子 作詞 作曲 窪田聡
一 かあさんは夜なべをして 手ぶくろ編んでくれた こがらし吹いちゃ つめたかろうて せっせと編んだだよ 故郷(ふるさと)の便りはとどく いろりの匂いがした
二 かあさんは麻糸つむぐ 一日つむぐ おとうは土間(どま)で 藁(わら)うち仕事 おまえもがんばれよ 故郷の冬はさみしい せめてラジオ聞かせたい
三 かあさんのあかぎれ痛い 生味噌をすりこむ 根雪もとけりゃ もうすぐ春だで 畑が待ってるよ 小川のせせらぎが聞える なつかしさがしみとおる
歌の背景 이 노래는 1958年(昭和33年)에 発表된 曲입니다.作詞 作曲者인 窪田聡(本名 久保田俊夫)은 1935年(昭和10年)에 東京에서 태어나. 戰爭 中은 長野県의 信州新町로 疎開 갔었습니다. 現在는 岡山県 牛窓町에서 居住하고 있습니다.
窪田聡가, 進学한 学校로 알려진 学校는 開成高校였습니다만, 太宰治(だざいおさむ)에 深趣되어 데카당(佛語 décadentisme=頹廢的)인 삶을 憧憬하고 授業을 게을리 하며 映畵•담배•술에 耽溺하는 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進學의 時期가 왔습니다. 同級生들의 大部分이 有名大學을 目標로 하는 가운데, 그도 文學으로 살아갈 決意를 하고 父母가 準備해 둔 入學金과•授業料를 가지고 家出해 버립니다.
그러나 下宿에 숨어 살며, 就職했습니다만, 音樂이 좋아, 中央合唱団의 研究生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給料가 적고, 먹고 살기가 어려워, 文學으로의 邁進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當時, 共産党 系가 中心이 되어 進行하고 있던「歌声運動」에 많은 젊은이들이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窪田도, 즐거운 듯이 러시아 民謠를 노래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의 눈에는 눈부시게 비쳤습니다.
드디어 그는, 文學을 버리고 共産党에 入党해 버립니다. 母親으로부터 小包가 到着하기 始作한 것은, 그 때의 일이 였습니다. 父母님의 뜻을 받은 次兄이, 그의 下宿을 찾아냈습니다. 小包에는, 그가 좋아하는 飮食이나 손 뜨게의 스웨터, 비타민劑 等과 함께, 「体をこわさないように」라는 母親의 便紙가 언제나 들어 있었습니다.
高等學校의 同級生들의 大部分이 有名大學에 들어가, 高級官僚나 一流企業의 社員이 되었습니다만, 그는 아코디언 한 자루를 안고, 全國을 돌며 歌声指導를 하는 떠돌이 生活을 繼續하고 있었습니다. 이 노래는, 그러한 生活 속에서, 母親에게의 생각과 避難時代에서 본 시골의 光景이 겹쳐 태어난 노래입니다.
노래가「かあさんの歌」입니다만, 2番의「おとうは土間で藁うち仕事」의 部分에, 自身의 제멋대로인 삶의 方法을 默認해 준 父親에게의 마음도 담겨 있습니다.
以上은 窪田 自身이 여러 가지 場所에서 말했거나 쓰거나 한 것입니다.
1番의 맨 처음은, 一般的으로는「かあさんが」라고 불려지고 있습니다만, 原詞 에는「かあさんは」이므로, 거기에 따랐습니다. 또, 各聯, 한가운데의 2行은 母親의 便紙文인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2番의「藁うち仕事」는 나무망치로 벼 집을 두드려 부드럽게 하는 作業입니다. 이 作業을 해 두면 벼 집의 줄기가 衰弱해지지 않습니다.
3番의「あかぎれ」는, 冬期에 손발의 皮膚가 乾燥해 거칠어지고 彈力이 없어지고 龜裂이 생기는 一種의 皮膚病입니다만, 榮養狀態가 向上된 現代에서는, 거의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根雪는, 겨울 내내 내려 쌓인 눈의 重量感으로 知面에 얼어붙어, 따뜻해져도 좀처럼 녹지 않는 눈을 말합니다. 山間地方인 信州에서는, 根雪이 完全히 녹아 봄이 되면, 梅, 桃, こぶし, 桜, 杏, 사과, 등의 나무에서 꽃이나 큰개불알풀(学名 Veronica persica), 제비꽃, 민들레 等의 풀꽃이 一齊히 꽃망울을 터트립니다. 梅花가 끝나 잠시 後 벚꽃……그렇게 順序데로 피는 것이 아니라, 거의 같은 時期에 先頭를 다투며 같이 핍니다.
作成者 黃圭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