歌の背景函

柿の木坂の家-青木光一///歌の背景

bsk5865 2013. 12. 18. 08:31

보낸사람 : 소담 엔카 운영자 13.12.18 06:32

 

柿の木坂の家-青木光一///歌の背景(D)|★....演歌 게시판

黃圭源 |  http://cafe.daum.net/enkamom/KTiH/4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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柿の木坂の家-青木光一

作詞 石本美由起 作曲 船村徹


春には柿の花が咲き
秋には柿の実が熟(う)れる
柿の木坂は駅まで三里
思い出すなァ ふる里のョ
乗合バスの悲しい別れ


春には青いめじろ追い
秋には赤いとんぼとり
柿の木坂で遊んだ昔
懐しいなァ しみじみとョ
こころに返る 幼い夢が


春くりゃ偲(しの)ぶ馬の市
秋くりゃ恋し村祭り
柿の木坂のあの娘(こ)の家よ
逢ってみたいなァ 今もなおョ
機織(はたお)りながら暮していてか


歌の背景

이 노래는 1957年(昭和32年)에 나왔는데. ふるさと演歌의 代表曲의 하나입니다. 青木光一에게는, 또 하나,「早く帰ってコ」라는 ふるさと演歌의 히트曲이 있습니다.

3番의 「機織りながら暮らしていてか」가 그 時代를 느끼게 하는군요. 그때에는 어느 집에서나 昭和20年代 後半 頃에는 農閑期에 벼 틀을 짜던 記憶이 납니다.

石本美由起의 生家는 広島県 大竹市의 옛집입니다. 一般的으로“坂の石本”로 불릴 程度의 높은데 있어, 뜰에는 樹齡 200年이 넘는 감의 巨木이 있었습니다.

上京한 後, 季節이 바뀌면 母親이 그 巨木 감나무에서 딴 감을 보내 주어 그 감을 먹으면서 어렸을 때, 그 나무에 올라가 내려다 본 瀬戸内 바다의 푸르름이나 올려다 본 하늘의 넓이 等이 눈에 떠올랐습니다.

이런 故鄕의 鄕愁를 한 번 그려보고 싶어 오랫동안 素材를 모아 所願을 따뜻하게 發表한 것이 이 作品입니다. 1957年(昭和32年) 10月에, 発表 後에 바로 히트된 것은 아니지만 青木光一는 일이 있을 때마다 이 노래를 불러 自己의 트레이드마크(trademark)로 했습니다.

青木光一(あおきこういち)는 1926年(大正15年) 2月 17日, 佐賀県 唐津市에서 태어났는데. 本名도 같습니다.

어릴 적에 父親을 따라 満州로 건너가, 奉天(現藩陽市)에서 자랍니다. 1944年(昭和19年) 旧制 奉天中学를 卒業 後 奉天放送局의 코러스団에 入團합니다.

그 코러스団을 指導를 하고 있던 것이, 젊은 날의 米山正夫였는데. 米山正夫는, 青木의 고운 소리와 資質을 看破하고 그의 將來를 알아채고 있었지만, 戦争이 激化되어 米山에게 召集令状이 나와 師弟関係가 끊어지고 青木 自身도 本國으로 一旦 歸國한 後, 召集되어 滿洲로 出兵합니다.

終戰 後, 抑留되고 있던 시베리아로부터 歸國하여. 「山小舎の灯」(近江俊郎)로 作曲家의 地位를 굳히고 있던 米山가, 復員해 온 青木을 推薦해 코롬비아에 入社시킵니다.

그리고 1950年(昭和25年) 米山 作曲의「若い嵐」(大映映画「二十歳前後」主題歌)로 데뷔하고.「月が出ている港町」「元気でね左様なら」「小島通いの郵便船」 等, 数많은 히트曲을 냅니다.

1956年(昭和31年)에 코롬비아 專屬의 作曲家가 된 船村徹와 함께, 「早く帰ってコ」「柿の木坂の家」「男の友情」 等, 히트를 날려, 船村 演歌의 歌手로서 歌謠界의 地位를 不動의 것으로 만듭니다.

作成者 黃圭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