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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격 시대-남인수///近代的 職業이 出現하다

bsk5865 2014. 7. 28. 18:59

보낸사람 : 소담 엔카 운영자 14.07.28 06:27

 

감격 시대-남인수///近代的 職業이 出現하다(D)|★....演歌 게시판

黃圭源 |  http://cafe.daum.net/enkamom/KTiH/5384 


감격 시대-남인수


감격 시대-남인수

작사 강해인 작곡 박시춘


거리는 부른다 환 희에 빛나는 숨쉬는 거리 다
미풍은 속 사귄다 불타는 눈동자
불러라 불러라 불러라 불러라 거리의사랑 아
휘 파람을 불며 가자 내일의 청춘아.


바다는 부른다 정 열에 넘치는 청춘의 바다여
깃 발은 팔랑팔랑 바람에 좋구나
저어라 저어라 저어라 저어라 바다의 사랑 아
봄 희망 멀지 않다 행운의 빛 길로.


잔디는 부른다 봄 향기 감도는 희망의 대자연
새 파란 지평천리 백마야 달려라
갈거나 갈거나 갈거나 갈거나 잔디의 사랑아
저 언덕 넘어 가자 꽃피는 마을로.


近代的 職業이 出現하다

개항 전에도 직업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다양했었다. 예컨대 1474년 편찬된 '경국대전'에 의하면, 문관직이 1779자리, 그리고 무관직이 3826자리가 있었으며, 국가의 명부에는 중앙관청에 129직종의 경공장(京工匠) 2841명, 그리고 지방관청에 27종의 외공장(外工匠) 3652명이 등록되어 있었다.

조선후기 시장이 성장하여 위탁 매매를 주로 하는 객주와 여각, 이들을 도와 상거래를 중개하는 거간, 자본을 대는 물주 등 상인층의 분화가 있었다. 또한 서점, 희귀 도서의 매매 중개인인 책주름, 도서 대여업인 세책가, 필사를 전문으로 하는 필경사 등 지식을 상품화하는 직업의 분화가 진전되었다. 도시의 성장으로 산대놀이패, 탈춤패, 거사패, 사당패, 각설이 패, 꼭두놀음 패, 떠돌이 가객 등 직업적 예능인이 출현했다.

세계사적으로 근대에는 기술과 시장의 발전, 공업화와 도시화 등으로 직업세계가 본격적으로 발달하였는데, 한국사에서도 근대의 기점이 된 개항 이후 그러한 변화가 나타났다. 근대문명의 직업세계에 대한 충격은 일차적으로 기술로부터 유래했다. 증기기관 등 기계의 도입은 그것을 다루는 직업군을 창출했다. 2차 충격은 제도로부터 유래했다. 특히 공장제도와 회사는 자본가, 관리직, 노동자, 샐러리맨, 회사원 등 다양한 범주의 직업군을 낳았다. 공장과 회사는 직장 근무, 표준화된 노동시간이라는 직업노동의 근본적인 변혁을 가져왔다. 1895년에는 각 관청도 1일 평균 집무시간을 6시간으로 발표했다. 3차 충격은 문화로부터 유래했다. 의식주에 서양문화가 들어오면서 관련 직업이 출현했다. 1899년 독립신문사가 서양요리법을 발행한 것은 서양식 생활의 침투를 보여준다.

종래의 직업도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왕실의료에서는 약을 위주로 하는 약의와 침을 위주로 하는 침의가 나누어져 있었으나 민간의료에서는 양자를 겸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개항 후 민간에서도 약사와 의사가 분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의사도 전문 분야에 따라 세분화되었다.〈사진>(세브란스의원 초기 인턴 강의)

개항 전에는 오늘날 직업에 해당하는 용어가 '업(業)' 또는 '생업'이었으나, 개항기에 '직업'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개항기에 귀천이 없는 근대적인 직업관이 성립하면서 자유로운 직업선택권이 거론되었다. 박영효는 1888년 "사농공상을 구분하여 문벌을 논하는 것은 정부가 인민을 경멸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각기 원하는 직업을 구하도록 하자고 국왕에게 건의했다. 유길준은 '서유견문'에서 "상인의 사무가 비록 민간인 직업이나 나라의 공본(公本)된 교제와 재화의 권세에 관련되어 지극히 중대하다"고 했다. 갑오개혁기 과거제의 폐지로 사농공상제는 사라졌다.

'독립신문'은 직업이 문명개화와 부국에 긴요하다고 지적한 다음 직업의식 고취에 힘썼다. "서양에 개명한 나라들은 사람마다 부지런하여 각기 직업이 있는 고로 의식이 넉넉하고 나라에 상무(商務)가 흥왕하여 재정이 풍부하되 대한에서는 그렇지 못하다"(1899년 6월 20일)며, "조선도 참된 개화가 되면 사람마다 직업이 있어서 나라에 노는 사람이 없을 터이요 빈천은 없어지고 사람마다 모두 부귀케 될 터이다"(1896년 4월 25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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