歌謠背景函

小樽でもう一度-加門亮///太宗과 外戚들

bsk5865 2015. 5. 4. 22:34

보낸사람 : 소담 엔카 운영자 15.05.04 06:15

 

小樽でもう一度-加門亮///太宗과 外戚들(D)|★....演歌 게시판

黃圭源 |  http://cafe.daum.net/enkamom/KTiH/7223 


小樽でもう一度-加門亮


小樽でもう一度-加門亮

作詞 礼恭司 作曲 森川龍


とどけにきたよ 夜霧に濡れて
おれがこわした あの幸せを
つぐないたくて つぐないたくて
噂たぐって 北の町
ああ詫びたって 遅すぎるけど
東京の愛を 小樽でもう一度


おれの二倍も 傷つきながら
捜さないでと あの部屋消えた
心も凍てつく 運河のほとり
やっと逢えたね 霧の夜
ただ涙ぐみ うつむくおまえ
東京の愛を 小樽でもう一度


過去(むかし)のことは なんにもふれぬ
そんなやさしさ なおつらいのさ
待たせたままの 待たせたままの
碧いサファイア その指に
もう泣かせない 離しはしない
東京の愛を 小樽でもう一度


太宗과 外戚들

國王이나 王世子의 丈人을 ‘國舅’라고 하는데, 東班 正1品에 除授되는 戚里입니다. 王의 外戚을 戚里라고 부르는 理由는 漢나라 때 長安(西安)의 戚里라는 마을에 임금의 姻戚들이 살았던 데서 基因합니다.

朝鮮의 戚里는 品階는 높아도 政事에는 參與할 수 없었는데, 이런 原則을 만든 임금이 太宗이었습니다. 太宗이 夫人인 元敬王后 閔氏의 親동기 넷을 死刑시킨 事件은 너무 有名합니다. 閔無咎,•閔無疾은 어린 世子(讓寧大君)를 끼고 權力을 잡으려 했다는 ‘挾幼執權(협유집권)’ 嫌疑로 處刑했고, 閔無恤과 閔無悔도 그 延長線上에서 除去한 것입니다.

太宗은 上王 時節 世宗의 丈人 沈溫도 除去했습니다. 領議政 沈溫이 謝恩使로 明나라에 갈 때 餞別하는 車馬가 長安을 뒤덮었다는 보고를 듣고 自身의 死後 世宗의 王權 强化를 爲해 除去한 것입니다. 沈溫의 同生인 總制 심정이 上王 警護 問題를 言及한 것을 逆謀로 몰아 죽이고 沈溫까지 連累시킨 것입니다. 이 非情한 外戚 除去에 對해 李瀷이 ‘星湖僿說(성호사설)’人事文에서 “閔氏•沈氏 두 집안이 함께 凶禍를 當하게 되었으니, 大槪 먼 將來를 생각함이 매우 깊었던 것이다”라고 肯定했듯이 歷史의 評價는 冷酷한 것입니다. 中國에서는 漢文帝가 妻男 두광국(竇廣國)을 쓰지 않고, 外叔인 將軍 薄昭를 죽인 것을 들어 높이 評價합니다.

그런데 外戚의 政事 禁止는 꼭 임금의 勞力만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太宗 때 讓寧大君의 丈人 金漢老의 妻男이었던 大護軍 全孟謙이 저자 사람의 生鮮을 빼앗자 經濟 問題를 擔當하는 京市署는 卽刻 告發했고 司憲府도 그를 論駁했습니다. 太宗이 讓寧大君의 夫人 淑嬪을 생각해 容恕했으나 두 機關은 再次 告發했고, 太宗은 할 수 없이 태(笞) 40대를 때렸습니다. 한때 大統領 査頓의 飮酒運轉 事故를 뒤덮기에 汲汲했다는 非難을 받는 現在의 警察과 靑瓦臺 民情首席室이 본받아야 할 嚴格한 勤務 姿勢가 아닐 수 없습니다.

作成者 黃圭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