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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情の雨が降る-真木ことみ///昭顯世子의 東宮日記

bsk5865 2015. 5. 3. 08:33

보낸사람 : 소담 엔카 운영자 15.05.03 06:25

 

無情の雨が降る-真木ことみ///昭顯世子의 東宮日記(D)|★....演歌 게시판

黃圭源 | 1 http://cafe.daum.net/enkamom/KTiH/7219 


無情の雨が降る-真木ことみ


無情の雨が降る-真木ことみ

作詞 かず翼 作曲 叶弦大


命を懸けても 悔やまぬ人と
別れるつらさが 分かるでしょうか
女の未練を 濡らすよに
あぁ無情 無情な雨が降る
せめても一度 あなたに逢えて
涙をふきとる 明日(あした)が欲しい


やさしい目をして 私を見つめ
幸せ探せと 背中を向けた
あなたの他(ほか)には 愛せない
あぁ無情 無情な雨が降る
傘も差さずに あなたを追えば
夜ふけににじんだ 裏町灯り


ぬかるみ道でも 嵐が来ても
歩いて行けたわ 二人でならば
消しても消せない 面影に
あぁ無情 無情な雨が降る
たとえはかない 夢でもいいの
すがって待ちたい 女の春を


昭顯世子의 東宮日記

滿 8年의 人質 生活을 마치고 歸國한 昭顯世子는 석 달 만인 仁祖 23年(1645) 4月 26日 死亡합니다. 享年 34歲. 公式 死因은 학질이었으나 史官이 “醫官들 또한 함부로 침을 놓고 藥을 쓰다가 끝내 죽기에 이르렀으므로 온 나라 사람들이 슬프게 여겼다”라고 덧붙였듯이 疑問이 많았습니다.

昭顯世子의 어머니인 仁烈王后 韓氏의 庶弟였던 珍原君 李世完의 아내는 世子의 殮襲(염습)에 參與했다가 屍身이 正常이 아님을 發見했습니다. “病이 난 지 數日 만에 죽었는데, 온몸이 全部 검은빛이었고 耳目口鼻의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鮮血이 흘러나오므로, 검은 幎目(小殮 때 얼굴을 싸는 검은 헝겊)으로 그 얼굴 반쪽만 덮어 놓았으나, 곁에 있는 사람도 그 얼굴 빛을 分辨할 수 없어서 마치 藥物에 中毒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仁祖實錄’ 6月 27日)라는 記錄이 그 目擊談입니다.

歸國 1年 前 昭顯世子는 北京에서 欽天監正(現 氣象廳長)이던 宣敎師 아담 샬(J A, Schall)을 만났습니다. 昭顯世子는 아담 샬을 通해 性理學 以外의 世界觀과 中國 以外의 世上을 接觸했습니다. 北京 南天主堂의 神父 黃斐默은 ‘正敎奉褒’에서 아담 샬이 天主敎 書籍과 天文, 算學 等의 科學書籍과 輿地球를 膳物로 보냈다고 伝합니다. 世子는 “하늘이 우리를 이끌어 준 것 같다”고 答狀했습니다.

昭顯世子는 歸國할 때 宣敎師를 데려오려 했으나 中國에도 宣敎師가 不足했기에 李邦詔, 張三畏 等의 宦官과 宮女 等 中國人 信者들을 代身 데리고 歸國했습니다. 世子가 아담 샬을 만났던 1644年은 日本이 美國의 페리 提督에 依해 强制 開國하기 211年 前입니다. 그가 卽位해 鎖國의 나라 朝鮮을 改革과 開放으로 이끌었다면 以後 日本과 朝鮮의 歷史는 뒤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昭顯世子의 東宮日記가 처음 完譯되었다는 消食은, 그의 삶과 더불어 鎖國으로 亡한 歷史에 對한 省察 代身 다시 鎖國의 목소리가 높은 우리 社會의 現住所를 되돌아보게 하는 契機가 됩니다.

作成者 黃圭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