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호
남강
진주성, 촉석루, 의암, 그리고 남강
옛 진주성과 남강
진양호 호안가에 있는 작곡가 이재호 노래비
이재호(李在鎬)
1919년∼1960년. 대중가요작곡가. 본명 이삼동(李三童). 경상남도 진주 출신. 일본고등음악학교 본과(바이올린)2학년을 수료하고 지병인 폐결핵이 악화되어 고향에서 휴양중 태평(太平)레코드사에 관계하는 친구의 소개로 가요작곡을 하게 되었다. 재래적인 한국가요의 서정성과 서양음악(반주음악)을 접목하여 재치있게 만들어냈고, 다작하는 정열을 과시하면서 유행가요를 많이 작곡하였다.
1938년 〈나그네설움〉으로 가수 백년설(白年雪)을 출세시켰으며, 같은해 〈불효자는 웁니다〉·〈꽃마차〉를 신인가수 진방남(秦芳男)이 취입하여 인기가수가 되었다. 1940년 〈복지만리〉·〈대지의 항구〉를 백년설이 취입하여 당대 최고인기가수로 각광을 받게 하였다. 이 곡들은 당시 우리 농민들을 만주이민으로 내모는 목적영화의 주제가이기도 하였다.
1942년 〈황하다방 黃河茶房〉·〈갈매기 쌍쌍〉으로 백난아(白蘭兒)를 출세시켰다. 1943년 이후 전시체제하의 물자결핍현상으로 레코드제작이 부진해지자, 태평레코드사의 전국 순회공연무대에서 연주단을 지휘하였다.
1945년 광복을 전후하여 고향인 진주고등학교 음악교사로 봉직하였고, 1946년 부산에서 〈귀국선〉·〈아네모네 탄식〉을 발표하였으며, 6·25동란중 부산방송국(HLKB) 전속악단장으로 취임하였다. 1952년 〈홍콩아가씨〉(琴糸響 노래), 1953년 〈경상도아가씨〉(朴載弘 노래) 등을 발표하였고, 환도 직후 1954년 〈무영탑 사랑〉(李寅權 노래)·〈물레방아 도는 내력〉(박재홍 노래)·〈단장의 미아리고개〉(李海燕 노래) 등을 발표, 작품들의 완숙기에 도달하였다.
1956년 지병이 재발하여 마산요양원에서 휴양하면서 〈산장의 여인〉을 작곡하여 권혜경(權惠卿)에게, 〈울어라 기타줄〉을 영화녹음기사였던 손인호(孫仁鎬)에게 취입시켰다. 1957년 국민가요(공보처 제정)〈고향에 찾아와도〉를 발표하였고, 인기가수 남인수(南仁樹)에게 〈무정열차〉·〈산유화〉 등을 취입곡으로 주었다. 4·19 직후 〈피묻은 책가방〉이라는 노래를 마지막으로 미발표곡들을 남긴 채 타계하였다. [참고문헌] 歌謠半世紀(韓國文化放送株式會社編, 省音社, 1975) 歌謠60年史(黃文平, 全曲社, 1983
이재호 작사.작곡/ 최갑석 노래 / 남강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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